알려진 제품에 대하여 냉정한 시선을 드러냄이 부담스러울 때가 있습니다. 예약 판매로 구매해 복잡 미묘한 감정에 빠지게 했고 결국 글로 적지 못한체 두어달 흘러보내게 한 한성 CHL8도 제게 있어서는 그런 제품입니다. 냉정하게 바라보자니 한없이 차가운 시선을 거둘 수 없고 이해해보려니 도대체가 받아들이기 힘들고... 고민하다 가능한 간단명료하게 훑어보기로 하고 그를 정리했습니다.


1.  외부 - 검증된 하우징과 괜찮은 키캡, 그러나 부족한 마감의 아쉬움

한성의 CHL 시리즈(무접점), ABKO의 K520(기계식) 등으로 국내에 보급된 중국 Noopoo/Plum의 무나사 하우징을 사용하고 있어 전반적인 외형 품질은 적절한 수준을 달성하고 있습니다. 고급스럽지 않으나 가격을 고려하면 수긍되는 재질, 기본적인 1단 틸트 지원, 컴팩트한 크기 임에도 펑션 열과 컨트롤 열 간격의 적절한 유지 등을 장점으로 하지만 AS 소요 감소를 위한 정책인지 분리형으로 구성될 수 있는 케이블을 일체형으로 유지하는 고집은 계속되고 있으며 다수 소비자들의 불호에도 불구하고 '우리 회사 알아줘!'라는 외침인 FN키의 별 표식 마킹 또한 변함없이 유지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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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얀색 하우징과 LED 따위 취급하지 않는 투톤 키캡 구성은 다분히 고지식해 보이지만 그 고지식함을 멋으로 받아들이는데 어색함이 없는 어지러운 세상이다 보니 꽤나 괜찮게 다가옵니다. 다만 유통사의 광고 사진보다는 좀더 밟고 선명한 색상으로 리얼포스 화이트의 질감을 기대하기는 무리이며 멋지게 마무리해 놓고 컨트롤열의 배색을 전통적인 투톤 배열과는 다르게 처리한 아쉬움이 있습니다.키캡은 두꺼운 PBT로 인상적이지만 잘리다만 조각이 붙어있다던가 키캡이 이염되어 있다던가 스페이스가 휘어 있다던가 등 마감은 아쉬움이 있습니다. 가장 우스꽝스러운 점은 Caps Lock, Scroll Lock 등의 인디케이팅 LED를 위한 배려가 없다는 점입니다. 별도의 LED로 배치하기 어려웠다면 최소한 키캡에서 투명창을 지원해야 할 텐데 그냥 동일한 키캡입니다. 이런 작은 차이가 제품의 가치를 낮추게 되는데 역시 대량 생산에 어울리지 않는 것은 가볍게 무시하나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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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소 날카로워 비난에 가까운 지적질에도 불구하고 외부에 대한 평점은 최소 '괜찮음'이라 해야할 것입니다. 이 정도 가격에 있어 이 만큼이나 키보드 중독자들 취향을 저격하는 구성은 보기 힘들기 때문입니다. '현란한 LED 따위 남에게나 줘버리라지!'



2. 타이핑 - 전작의 장점을 모조리 치워버린 실수의 연속

- 심각한 서걱임

사용자들이 통상 제기하는 첫번째 문제는 서걱거림입니다. 키의 모서리쪽에 힘을 주며 살짝 눌렀을 때의 느낌은 칠판에 분필로 장난치는 느낌까지 떠올리게 합니다. 이 느낌을 좋아하는 이들도 있을 수 있으니 이해해보려 해도 무접점 키보드를 대하게 될 때 큰 기대치 중 하나인 일명 '도각거림'을 방해하는 수준이고 보니 '정상이다'라고 하기에는 무리가 있습니다. '도각'이 아닌 '쓸림'이 느껴져 머리가 아파오지요. 동일 하우징에 키캡만 ABS인 55g의 CHL5가 보여주었던 '서걱거리지만 찰지니 괜찮네~' 수준하고는 천양지차인데 어차피 고만고만한 키보드에 더 좋은 키캡을 탑재하고도 왜 이 모양인지 도통 모를 일입니다. 키캡을 벗기고 테스트하거나 키캡을 교체하면 약간의 변화를 보여주지만 근본적인 문제는 해결되지 않습니다. 역시 초기 출시작과 안정화된 이후의 대량 생산은 차이가 나는 것일까요?


- 짜증을 유발하는 스프링 울림

서걱거림 만큼이나 짜증을 유발하는 것은 스프링 울림입니다. 통상 키보드에 있어 울림이라고 하면 스테빌라이저의 일명 '텅~'일텐데 이 부분은 의외로 얌전해 통상 기준 아쉬움에 해당하는 부분은 스페이스바의 회피 불가능한 찰랑 거림 정도에 불과하지만 엉뚱하게도 스위치의 스프링 울림은 꽤나 거슬립니다. 전체가 다 이 모양이면 차라리 '나쁜 제품'이라고 뒤돌아서면 그만이지만 매우 많은 키들이 스프링 울림을 가지지만 전체는 또 아닙니다. 따라서 이것은 QC에 실패하고 있다는 증명으로 이해될 수 있습니다.


-  의문의 키압 '50g? 전혀~'

나프의 무접점은 폄하할 필요도 없으며 폄하되어서도 안되는 독자적인 영역을 구축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존중 받음이 마땅하고 토프레와는 다른 방향의 가치로 이해되어야 합니다. 하지만 무접점 키보드에 있어서 토프레가 가지는 표준으로써의 의미를 왜곡시키는 것은 또 다른 문제입니다. 키보드는 50g를 키압으로 제시하지만 이 것은 아무리 타이핑해봐도 토프레 45g 보다 낮은 키압으로 체감 됩니다. 초기작인 CHL5 55g의 체감 키압이 45g보다 조금 높은 수준이었던 것을 보면 나프 50g의 키압은 토프레에 대응하자면 35~40g 정도가 될 것으로 짐작되며 타이핑 감각도 이러한 가늠을 수긍하게 합니다. 따라서 토프레 감각으로 대하면 꽤나 당혹스러운 기분을 맛보게 됩니다. 

 댓글에서 질문해주신 내용에 대한 답변이 추가적인 참고가 된다 판단하여 본문으로 옮겨옵니다  : 동전을 이용한 측정치 자체는 100원 동전 기준 8개 부터 8개+@ 정도로 키캡 무게 더해 스펙 대비 몇 g 정도 가벼운 수준이지만 실제 타이핑 느낌은 리얼포스 30g에 근접해 40g 정도로 밖에 느껴지지 않습니다. 익숙함 때문인지 싶어 주위 수배해 3년, 3개월, 1주 등 구입 시기가 다른 여러 리얼포스 차등들과 타이핑을 비교해 보았을때 리얼포스 차등의 45g 부분보다는 30g 부분에 가까웠습니다. 짐작하건데 이러한 스펙과 감각의 괴리는 러버돔 재질, 스프링의 차이, 슬라이더 구조 등의 여러 요인으로 발생하는 것이 아닐까 예상합니다.

- 한성 CHL8 타이핑 테스트 동영상 -

결과적으로 외형에 대한 긍정적인 평가에도 불구하고 정작 키보드의 본질인 타이핑에 있어서는 '가벼운 키압의 무접점' 이상의 가치를 찾기 힘들며 '부족하다' 라는 평을 내릴 수 밖에 없습니다. 



3.  결론

꽤나 공들여 사용자 취향을 저격한 기획, 심지어 'Happy Typist'라는 거나한 이름을 붙여놓고 이 정도 수준으로 마무리한 한성에게 큰 아쉬움을 느끼게 됩니다. 이 정도의 섬세한 기획과 접근이라면 수입해 팔기만 할 것이 아니라 다양한 변수를 고려해 많은 테스트를 수반했어야만 합니다. 특히 케이블 재질의 의문스러움(갈라지며 벗겨지는)과 높은 전력 소모 등의 이슈에도 불구하고 초기 출시작인 CHL5가 선전했었기에 그의 후광을 이어가기 최적이었다는 지점에서 아쉬움은 정점을 찍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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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통가 약 90,000원에 무접점이라니 대단해보이지만 이런 내재된 면면을 따지고 보면 이 제품에 후한 점수를 주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개인적인 감상은 저렴한 것이 아님은 물론 오히려 가격에 비해 부족하다는 인상까지 느낄 정도입니다. 직설하여 더도 덜도 필요없이 CHL5에서 LED 기능 빼고 이 가격에 팔았다고 해도 지금과 같은 총체적 혼란에 빠지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냉혹한 시선이 한성에 대한 일관된 비난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기획은 충분히 가치 있었으며 사용자의 요구를 제대로 관통했으니 차기작은 조금 더 차분히 접근해주기를 기대합니다. 생각해보면 제품을 기획한 당사자가 가장 큰 아쉬움을 느끼고 있을테니까요.

규정에 따른 점수는 가격의 장점과 하우징의 적절함에도 불구하고 타이핑에 있어서의 부족함으로 65점을 책정해봅니다.


'뛰어난 기획에도 불구하고 전작의 우수성을 이어가지 못하는 큰 아쉬움'


*여담 -  '윤활하면 좋아져요~', '값을 생각해야~' 등의 물아일체 경지에 올라 자신이 키보드가 되고 키보드가 자신이 되는 광경을 보곤 합니다. 이 제품은 커스텀 키보드가 아닌 대량 생산 공산품이고 그에 맞는 기본 가치를 제시해야할 의무가 있습니다. 더욱이 본 제품은 고가 키보드와 비교해서 부족한 것이 아닌 제품 가격 그대로, 즉 자체로 부족함을 느끼게 합니다. 부디 논점이 엉뚱하게 흐르지 않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