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키보드, 레거시 키보드 들의 풍미는 물론 최고의 향을 즐기는 듯한 느낌을 주지만 간혹 품위 따위 쌈 싸먹은 '쌈마이' 감성은 B급을 찾게 합니다. 이번에 소개해드릴 키보드는 바로 그 감성의 발로로 선택한 Dareu/Reachace의 DK87 흑축 키보드입니다. 169위안에 판매하다 지금은 심지어 149위안으로 판매하는 온라인 상점까지 생길 정도로 저렴한 키보드 맛을 느껴보겠습니다.



1. 제품 소개


중국의 게이밍 기어 브랜드인 Dareu/Reachace( http://www.reachace.com )의 DK87 흑축 제품입니다. 게이밍 기어 하면 연상되는 좋은 말로 사이버, 나쁜 말로 싸보이는 외관과는 다른 매우 베이직한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Dareu/Reachace 제품들이 대체로 중국 하면 연상되는 과장과는 거리가 있지만 이 녀석은 더욱 유난한 노멀함을 추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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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핏보면 '레인보우 LED'와 '비키'로 상징되는 시장을 휩쓸고 있는 지루한 모습과 달리 제법 고급스럽게 보일 정도입니다. 물론 이 모습만으로 25,000원을 초과한 가치를 전해줄 것이라 단정하는 것은 금물입니다. 탐험은 이제 시작되었고 가격은 항상 진리이니까요.



2. 패키징


타오바오를 통해 구입하였고 배송대행을 이용해 4일만에 도착했습니다(22일만에 보여주는 국내 ㅎ 기업과는 너무 틀린...). 국제 배송 탓인지 박스가 좀 손상되기는 했지만 그럭저력 빠짐 없이 형체 잘 갖추어 왔습니다. 측면에는 마치 여러 스위치 종류가 있는 듯 하지만 실제로 판매되는 것은 오직 흑축 뿐이며 하우징만 블랙, 화이트, 블랙 전체 LED, 화이트 전체 LED 들 중에 고를 수 있을 뿐입니다(LED 버전은 스위치 상부 클리어로 차이가 있으나 역시 흑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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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부 구성은 매우 심플합니다. 저가 제품이기 때문인지 별도 키캡 사은품은 없고 키캡 리무버는 패키징과 무관하게 사은품으로 박스 표면에 테이프로 감사 인사 쪽지와 함께 부착되어 보내지더군요. 기본 구성이 아니라는 것이지요. 따라서 기본 구성품은 간단한 브로셔 형태의 매뉴얼이라기 보다는 제품 소개에 가까운 종이 한장 들어있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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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외형


앞서 서술하였다시피 통상의 중국형 화려함과는 담을 쌓은 매우 노멀한 모습을 보여줍니다. 오렌지색 보강판과 키캡 각인 정도가 소심한 멋이랄까요? 키캡 각인 역시 유행중인 억지스러운 투과형 이중사출과는 거리를 두고 있어 클래식한 멋을 중시하는 이들에게 어필하기에 매우 적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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컴팩트한 느낌을 살리기 위해 베젤을 최소화하고 있으며 커서키 위쪽에 깔끔하게 제조사 로고를 인쇄하고 있습니다. 하우징의 재질은 ABS 이며 상판은 무광이지만 측면은 하이그로시로 마감되어 있습니다. 아쉽게도 케이블은 일체형인데다 라우팅을 지원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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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디케이팅 LED는 스위치에 일체화되어 있으며 키캡이 투과형이 아니기에 바닥에 깔리는 느낌으로 표출됩니다. 등을 켠 실내에서는 다소 불분명하게 보이지만 큰 문제가 될 정도는 아닙니다. 키캡은 OEM 프로파일로 가격에 어울리지 않게 이중사출이나 흔한 타이하오(TH)식의 이중사출과는 차이를 보입니다. 키캡의 단점이자 장점은 한손으로 가볍게 뽑힐 정도로 쉽게 뽑힌다는 것입니다. 실은 이것은 키캡만의 문제라기 보다는 스위치의 키캡 접합부 자체가 체리 및 타 클론 스위치들에 비해 얇은 것에 더욱 큰 원인이 있습니다. 다만 이 때문에 상대적으로 더욱 큰 유격이나 흔들림이 느껴지지는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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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태빌라이저는 마제 타입으로 RK 식 하우징의 열 뻗치게 하는 낮은 타입이 아닌 코스타 식의 충분한 기동 공간을 가지기에 쉽게 분리되는 키캡 및 스위치 특징과 맞물려 손쉽게 다룰 수 있습니다. 스태빌라이저의 키캡측 고정부를 보면 형식은 동일하나 부품 형태가 기존의 코스타/마제 타입 및 그 클로닝들과는 약간 다른 형태를 취하고 있는 것이 특징입니다. 스태빌라이저에 별도의 윤활은 되어 있지 않습니다. 여기서 주목할 부분은 스위치가 익히 알려진 클로닝 브랜드가 아니라 Dareu 고유의 자사 스위치인 D 스위치를 사용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물론 이것이 Dareu가 스위치를 생산한다는 의미는 아니며 그 정체는 후에 서술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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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이블 라우팅 지원도 없고 1단 높이 조절만 지원하는 등 후면부는 매우 심플합니다. 상단이 하단으로 씌어지는 구조로 약간의 유격이 있습니다만 큰 흠이 될 정도는 아니며 높이 조절 레버를 포함한 하단의 미끄럼 방지 패드는 꼼꼼하게 처리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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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격에 어울리지 않게 나름 게이밍 기어 전문 브랜드의 자존심인지 뜬금없이 꽤나 정성들인 USB 케이블을 선보이고 있습니다.  레오폴드 등의 메인스트림 브랜드도 고만고만한 느낌인데 비하여 강한 인상을 남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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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편적인 높이와 구성의 한성 GO187(비키가 아닌 최초 출시형 KeyCool OEM 제품)과 비교해보면 DK87의 컴팩트함과 낮은 높이가 여실히 들어납니다. 최상단열과 펑션열 사이의 간격도 줄어든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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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내부


역대 가장 손쉬운 분해를 지원하는 키보드라 해도 손색 없습니다. 분해 쉽다는 체리 키보드 쌈싸먹는 수준으로 누구나 드라이버 하나면 힘들이지 않고 분해할 수 있어 펑션열과 최하단열의 키캡을 분리하고 나사를 풀면 하단이 그냥 떨어집니다. 우측 상부에 클립이 있으나 딱히 물고 있다기 보다는 바로 떨어지지 않도록 고정하는 수준이라 분해의 방해 요소는 아닙니다. 별도의 흠음재 등은 구성되어 있지 않으나 허접한 느낌은 없습니다. 솔직히 하우징만 보면 메인스트림 제품과 차이를 느끼기 힘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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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판은 검은색이며 기능상의 영향은 없으나 제조시 스프레이 자국등이 남아있어 깔끔한 느낌은 부족합니다. 보강판과 PCB를 상판 하우징과 분리하기 위해서는 구석 4곳의 나사를 풀어줘야 하나 스위치 교체 등의 정비에 있어서 굳이 상부 하우징 분리는 불필요하니 실질적으로는 의미 없습니다. USB 케이블과는 컨넥터로 연결되어 있으며 컴팩트한 크기 때문에 분리형 개조 등은 포기하는 것이 마음 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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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조사가 자사 고유 D 브랜도라고 자랑하던 스위치 정체는 TTC 입니다. 중국에서는 카이후아(카일), TTC 등의 클론 스위치 브랜드에서 키보드 제조사 요구에 따라 마킹을 달리한 스위치를 OEM 공급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DK87을 비롯한 Dareu/Reachace도 동일한 선상에 있습니다. 현재의 게이트론 유행전 수리 및 커스텀용으로 반짝 주목받던 TTC를 이런 제품에서 만나다니 신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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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마감 품질


하우징 유격과 키압 균일성은 납득할 만한 수준이나 1개 스위치의 미묘한 거슬림이 신경 쓰였습니다. 서걱거림 보다는 쓸림에 가운 걸림을 모서리 클릭시 느끼게 하는데 키보드 사용에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 수준이며 중국발 저가 제품의 일반적 수준을 기준할 때 문제라고 하기 어려우나 분명 아쉬움은 아쉬움입니다. 결국 삶을 관통하는 저조한 구매운이 작용한 것으로 자포자기 해버리고 스페이스바와 해당 스위치를 교체했습니다. 스패이스 바에는 전혀 영향이 없는 미묘한 문제이니까요.



6. 사용 소감과 타이핑 테스트


사용 소감을 적기 전에 고백부터 해야 겠습니다. 솔직히 본인은(!) '리알못'입니다. 아카이브 적축, 필코 마제스터치 적축 등을 타이핑해보고 '이건 내가 다룰 수 있는 물건이 아니야! 지옥의 것이다!!' 라며 거부해왔고 꽤나 많은 수의 키보드 구입에도 불구하고 리니어는 오직 카일 적축 하나 뿐이기 때문입니다. 거부의 원인은 다름아닌 오타 때문이었습니다. 파워 타이핑을 즐기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리얼포스와 갈축을 메인으로, 청축을 즐거움으로 소화하던 제게 있어 리니어는 곧 오타와의 싸움이었고 지워지지 않는 기억으로 각인되어 있었습니다. 따라서 DK87을 사용함에 있어서의 핵심은 익히 들어왔던 키압과 오타와의 신경전이었습니다.


- 타이핑 테스트 영상으로 부족한 글 솜씨를 보충해 봅니다. -


그러나 결과는 우려와 달리 매우 놀랄 정도로 만족스러웠습니다. 오타의 빈도는 적축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아니 갈축이나 청축과 다름 없을 수준이고 키압도 바닥을 강하게 타이핑하기 전에 손가락을 들어올리게 하는데 최적입니다. 키보드 전면부 높이 역시 팜레스트보다 살짝 아래로 내려가 매우 편안한 높이를 제공합니다. 다만 이것이 기준인 체리 흑축과 비교할 때 어떤 수준인지는 앞서 고백하였듯이 리알못이기에 판단 불가능하며 심지어 이 제품의 장점인지 흑축의 장점인지도 구별할 수 없습니다. 그러니 이 평가의 핵심은 '이 키보드 써보니 괜찮아' 정도가 적절하며 굳이 조금더 첨언하면 리니어를 멀리하던 청축과 갈축 중독자가 대하는 리니어로는 꽤나 맛나더라 정도가 될 것입니다. 기계식 키보드 품질 평가의 일반 기준중 하나인 스프링 소리, 스태빌라이저 소음 등에 있어서는 딱히 유난한 장단점을 찾기 어려울 정도로 평범했고 이런 류의 저가 키보드에서 흔히 발견되는 백스페이스의 통울림도 크게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지금까지 사진 때문에 길기만 하지 내용은 별볼일 없는 25,000원짜리 대륙의 기계식 키보드 DK87 흑측을 소개해드렸습니다. 분명 단점도 있으며 가격을 초월해 메인스트림 제품과 비교할 만한 제품은 아닙니다. 그러나 한국에 출시된 저가형 키보드를 몇 종 다루어본 경험과 비교할 때는 외형과 타이핑 모두에서 DK87의 승리입니다. 번잡하지 않은 클래식한 외형도 마음에 들고 비록 클론 축이지만 흑축에 크게 감동하는 계기였습니다. 한국의 수입 업체들은 아무래도 게이머들을 신경써야 하니 한동안 계속 지루한 'LED + 비키 + 청축'의 식상함으로 승부하겠지만 다만 1~2개의 유통사라도 이런 키보드를 수입해주기를 바래 봅니다. 같은 가격이라면 LED 없고 클래식한 외형에 청축외의 다른 축을 선택할 사용자들도 많으니까요.


규정에 의한 평점은... 가격 100점, 제품 외적 품질 80점, 타이핑 만족도 90점 등으로 90점을 부여합니다.



'꽤나 괜찮은 리알못의 흑축 느낌, 이런 베이직한 키보드도 수입 판매 좀 해주었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