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rry mx-5000


## 간략제원

키보드 이름 :  Cherry MX-5000 (일명: 오징어, 또는 가오리 -> 바다생물로 추정됨)
사이즈 : 가로 38.1Cm X 세로 25.7Cm X 높이 7.9Cm  (높이 조절 다리를 최대로 폈을 때/ 펴지 않았을 때 5Cm)
스위치 : 체리 갈색 넌클릭
무게 : 약 1,235g
연결방식 : AT
키탑 인쇄방식 : 이색사출성형
제조 : Cherry
생산지 : Germany
Part Number : G80-5000HAMIT
FCC ID : GDDG80-5000



## 사람에게는 얼마만큼의 키보드가 필요한가?


여기는 지도상에 나와있지 않은 입에서 입으로 전해져오는 어느 이상한 마을.
K씨는 아는 사람을 통해 이 마을에 백만원을 현금으로 지급하면 해가 뜨는 시간부터 해가지는 때까지 자신의 두발로 걸어서 다닐 수 있는 곳에서 주워서 출발점으로 가지고 돌아온 키보드를 모두 가지고 갈 수 있다는 얘기를 듣고 긴가민가 며칠을 고민하다가 그동안 이렇게 저렇게 가족 몰래 모은 돈 백만원을 지불하고 하루라는 시간안에 자신이 원하는 키보드를 가져보기로 결심했다.
드디어 기다리던 그날이 왔고...
촌장이하 마을 사람들이 모인 곳에서 K씨는 촌장에게 주의사항을 듣고있다.
"잠시 후면 해가 뜰텐데 그때부터 해가 저기 보이는 언덕 너머로 모두 사라지기 전에 이 마을과 평원, 능선등에 여기저기 흩어져있는  키보드를 자신의 두 발로 걸어서, 그리고 자신의 두팔에 들고올 수 있는 만큼 가지고 돌아오면 그 키보드는 모두 당신의 것이요. 다만 시간약속은 금과도 같은것! 시간을 지키지 못할 시에는 가지고 온 키보드를 모두 회수할 것이며 스스로의 몸이 아닌 다른 도구를 이용하여 키보드를 가지고 온다면 그 또한 하나의 키보드도 가지고 갈 수 없을 것이요. 내 말 이해했나요?"
속으로 생각하길 명기라 불리우는 녀석들 서너대만 들고 올 수 있어도 본전은 빠지는데.. 라는 생각을 하던  K씨는 화들짝 놀라면서 대답을한다.
그리고 잠시 후 해가 동쪽에 보이는 야트막한 구릉지대 위로 살큼 떠오르기 무섭게 K씨의 발걸음은 바쁘다.
한 30분쯤 걸었을까.. 이정표가 하나 보였다.
{왼쪽으로 가면 IBM F 5170 NIB, 오른쪽으로 가면 NMB클릭 신동품}
5170중고를 하나 가지고 있던 K씨는 말로만 듣던 NMB클릭을 가질 수 있다는 기쁨에 오른쪽 언덕으로 발길을 향했고, 얼마 후 언덕위 한 돌무덤위에서 NMB클릭을 발견한다.
묵직한 키보드 하나를 옆구리에 끼고 언덕을 내려가던 K씨는 또 이정표를 만나게 되는데..
{왼쪽으로 가면 Old Dell 신동품, 오른쪽으로 가면 확장1 신품}
확장1은 써봤으니 올드 델로 가자..
그렇게 꽃이피고 풀이 만발한 구릉지대와 험난한 가시밭길, 늪지대를 건너며 이정표를 따라 갖고싶던 키보드를 온몸을 이용하여 끼고지고 힘겹게 걷고 뛰던 K씨의 눈에 서쪽하늘에 붉게 물들어가는 노을이 보였다.
'이런 빨리 출발점으로 돌아가지 않으면 지금까지의 고생이 모두 물거품이되겠구나'
지치고 피곤한 몸을 이끌며 출발했던 마을의 광장으로 걸음을 재촉하던 K씨에게 하나의 이정표가 보인다.
{왼쪽으로 가면 MX-5000 NIB, 오른쪽으로 가면 Leading Edge 2214 중고품}
갑자기 심장박동이 상승함을 느끼는 K씨는 심각한 갈등에 시달린다. 그렇게 갖고싶던 두 대의 키보드가 어째서 이런 양갈래 갈림길에 놓여있단말인가. 그리고 어째서 해는 저물어 가는데 돌아가는 이 길에 이정표가 세워져 있단 말인가...
인간의 운명이란 참으로 얄궂기 한이 없어라..
결국 K씨는 왼쪽길을 택하고 만다. 그 길이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도 모른채 말이다.
5000이 놓여있다는 그 길을 향해 지친 걸음을 재촉하던 K씨의 앞에 5000 신품 박스가 보인다. 허나 그 박스는 높디높은 느티나무 위에 걸려있다.
지금이라도 출발점으로 돌아가면 그동안 손에 건진 모든 키보드를 가지고 집으로 돌아갈 수 있는데.. 태초에 조물주가 있어 인간의 욕심이란 쇠심줄보다 질기게 만들어놓은 것을...
가지고 온 키보드를 바닥에 내려놓고 K씨는 느티나무를 오르기 시작한다. 해는 점점 기울어 그 타오르는 빨간빛이 절반정도만이 지평선에 걸려있는데...
결국 5000 박스신품을 손에 넣은 K씨는, 그러나 나무에서 떨어지고 만다. 다리를 접질려 제대로 걸을 수 조차 없는 K씨는 들고온 키보드와 나무에서 떨어지며 그래도 꼭 안고 떨어진 5000 모두를 들고 몇 걸음 내딛어보지만 결국 주저앉고만다.
오호통재嗚呼痛哉라... 이 어찌 비참하고 서글픈 광경이 아니겠는가.
피같은 눈물을 흘리며 K씨는 5000 NIB 하나만을 가슴에 끌어안고 미친듯이 출발점을 향해 달린다. 달린다라고 자신은 생각하지만 거의 기어가는 수준인 것을..
터질듯한 심장을 움켜잡고 촌장이하 마을 사람이 모여있는 출발점에 태양의 붉은빛이 실납처럼 가늘게 남아있는 시간의 끝자락에 헐떡이는 숨을 내쉬며 K씨는 도착하였나니, 마을 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K씨는 촌장에게 말을한다.
"약속한 시간내에 왔습니다. 최소한 들고온 이 키보드는 가져갈 수 있는거죠?"
"물론입니다. 시간내에 왔으니 당신이 들고온 MX-5000은 당신의 것입니다. 이제 집으로 돌아가셔도 됩니다"
그러나...
몇 걸음 내딛지 못하고 K씨는 땅에 쓰러져 숨을 거두고 만다.
쓰러진 K씨의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촌장은 마을의 젊은이들에게 K씨를 묻어주라고 지시한다.
수레에 실려 도착한 어느 곳에는 수천개의 무덤이 보인다. 그 황량하고 쓸쓸한 풍경앞에서 촌장은 생각한다.
'사람에게는 도대체 얼마만큼의 키보드가 필요한 것일까?'


[오리지널 체리 스티커]




## 사람은 키보드의 무엇으로 사는가

먼 옛날 천사 미하일은 옥황상제의 명과 천계의 율법을 어긴 죄로 지상연수겸 날개를 떼인채 지상으로 추락했었다.
알몸으로 지상으로 추락한 미하일을 거둔 것은 키보드 수리공인 세몬이라.
세몬의 집에서 지내면서 미하일은 세몬에게 키보드를 수리하는 방법을 배운다. 아무것도 모르는 백지같은 미하일이었지만 손재주가 어찌나 좋던지 얼마 안 가서 세몬은 그저 미하일이 거둬들이는 수리비로 먹고 살아도 될 지경이었다.
그러던 어느날 미하일은 세몬에게 자신은 사실 천사며, 벌을 받아 지상으로 내려왔고 이제 다시 옥황상제의 부름을 받아 천상으로 올라가게 됐노라고 고백을 한다.
아는 사람은 다 알고 있겠지만 사실 미하일에게 부여된 옥황상제의 임무는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그것을 알아오라는 것이었는데...
옥황상제 앞으로 불려간 천사 미하일은 옥황상제에게 질문을 받게 된다.
"그래 너는 사람들과 살아가면서 내가 알아오라고 한 것을 알아왔느냐?"
사실 옥황상제가 미하일에게 듣고자 했던 답은 사람안에 있는 것은 '사랑'이며, 사람이 알지 못하는 것은 자신에게 당장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모르는 것이며,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지는 사람안에 깃들인 신의 고귀함과 그것들이 어우러진 공동체안에서의 돌봄의 의식.. 바꿔말하면 서로를 사랑하는 그 모든것들로 살아간다는.. 그런 대답이었다.
이 대답은 옥황상제만 생각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세상 모든 사람이 알고 있는 대답이기도 하였다.
허나 미하일은 골똘히 생각을 하고 있다. 그러면서 그는 뭔가를 기억하며 흐뭇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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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이! 미하일! 이리 좀 와보게. 키보드 작업의뢰가 들어왔는데 내 실력이야 뻔한 것이고, 내 실력으로는 감당할 수가 없는 작업이기에 거절할까 하다가 자네라면 할 수 있을거 같아서 일단 받아서 가지고 왔네"
여전히 말이 없이 작업해야 하는 키보드를 쳐다보는 미하일을 보며 세몬은 어떤 작업을 해야하는지 설명해주고 있다.
"이것은 지금까지 자네가 접해보지 못한 그런 키보드일세. 체리의 MX-5000이라고.. 옆 마을에 계신 어떤 어르신께서 이탈리아에서 구해오셨는데 보시다시피 배열이 유럽어 배열이라 쓰기가 좀 난감한 모양이더군"
"그래서요? 어떻게 해달라는거죠?"
"오호.. 자네가 말을 다 하는구먼..허허. 그래 지금부터 그걸 얘기해줌세. 다행히도 얼마전에 다른 마을의 장인 한분이 고생끝에 3번째의 기판제작으로 유럽어배열 5000을 영문배열로 바꿀 수 있도록 기판을 제작하셨다네. 여기 보이는 까만색 기판이 바로 그것일세. 그러니까 해야할 작업이라면 쉽게 말해서 기존의 기판을 들어내고 새로운 기판을 얹어주는 작업인 셈이지."
"말은 쉽네요"
"이런 자네가 그런 농담을 다..하하. 그렇게 말을하니 내가 좀 미안해지는구만. 여하튼 할수있겠거든 작업을 해보고 못하겠거든 다시 돌려줘야하니 일단 연구를 좀 해보게나"
사장과 종업원의 관계처럼 되어버린 세몬과 미하일. 세몬은 황마담이 있는 거북다방으로 마실을 나가고 미하일은 납연기가 배여있는 작업실에서 5000이라 불리우는 이상하게 생긴 키보드를 쳐다보고 있다.
그리고는 밤새 5000을 만지작거리던 미하일은 아침을 맞이하고.. 세몬은 아침늦게야 작업실로 들어선다.
"미하일!! 어제 갖다준 키보드는 어떻게 됐는가?"
"여기...."
"오 벌써 완성했는가? 자네 대단하구만.. 벌써 완성을 하다니.. 아니!! 그런데 이게 뭔가.. 헉 키보드가 두 동강이 나다니.. 미하일, 못하겠거든 아예 손대지 말라고 그렇게 일렀거늘 이게 뭔가?"
거기에는 두동강으로 분리가 되어버린 5000이 놓여있었으니.. 미하일은 기판이 두조각으로 분리가 되길래 키보드도 두 개로 분리를 해야하는건줄 알았다나 뭐라나..
"미하일! 난 이제 파산이라구 파산!!"
흐느끼는 세몬의 머리위로 천사 미하일의 얼굴이 겹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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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황상제님, 알아오라고 한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지에 대해서 알아왔습니다"
"그래, 그럼 이제 말해보거라"
미하일은 기억을 접고 옥황상제에게 보고를 한다.
"사람은 말입니다. 첫째는 키감으로 살아가기 시작합니다. 그러다가 둘째 시기를 맞이하여 개조의 재미로 살아가게 됩니다. 결국 셋째, 사람은 부품공유의 즐거움으로 살아가게됩니다. 나눔의 의식을 통한 진정한 즐거움을 알아가는 것이죠. 그것이 사랑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섭씨 22도의 선선한 기온을 항시 유지중인 천국에서 왠일인지 옥황상제께서는 식은땀을 흘리고 있다.
결론은 통하였으나 이것은 도대체 사람은 무엇으로 살아가는지에 대한 수업을 하고 온 것이 아니라 사람은 키보드의 무엇으로 살아가는가에 대한 수업을 하고 온 것이었으니 옥황상제께서는 비싼 연수비를 지불하고서 천사하나 교육 잘못 시킨셈이었으니 황당할 수 밖에..
휘청거리던 옥황상제께서는 미하일을 퇴청시키는데.. 옆구리에 왠 박스하나를 끼고있는게 보인다.
"잠깐 미하일. 자네 옆구리의 박스는 무엇인가?"
"이것은.. 지상세계에서 살던 시절의 기념품으로 제가 들고온 것입니다만..."
"그래? 그럼 그 박스를 열어보거라"
잠시 주춤거리던 미하일은 박스를 열어보이고.. 거기에는..
영문배열로 개조된 5000이가 가지런한 모습으로 담겨있었다.

다음날..

천계의 저잣거리에 있는 한 선술집에서 박천사와 김천사가 막걸리를 마시고 있다.
"어이! 김천사.. 자네 어제 러시아 담당이던 미하일이 연수에서 돌아오자마자 자격박탈을 당하고 하옥된 이유를 알고 있는가? 자네 어제 그 자리에 있지 않았나?"
"크흐흐.. 그건 말이지.. 원래 걔가 철딱서니가 좀 없었잖아. 지상에서 옥황상제께서 알아오라고 한 과제는 제대로 수행하지도 않고 키보드라나 뭐라나.. 사람들이 컴퓨터란 것에 연결해서 쓰는 한낮 물건에 혹해서는 내려가 살던 세몬이라는 사람몰래 망가진 키보드를 두고 자신이 멀쩡한 키보드를 챙겨가지고 돌아왔던 모양이야"
"그래서?"
"뭐가 그래서는 그래서야.. 잠시 미하일의 머릿속을 들여다보신 옥황상제께옵소서 사전정황을 파악하시고는 진노하셔서 바로 미하일을 하옥시켜버린 거지."
고개를 끄덕이는 박천사에게 김천사는 막걸리를 한사발 따라주며 말을 건네본다.
"그런데 말이지.. 다음 천사들 지상연수 때 우리는 한국담당이니까 난 근영이네집으로 보내달라고 해볼까? 하하하"
"그런가? 난 그럼 수정이네로 보내달라고 해야겠네 그려..하하하"
술기운으로 불콰해진 낯짝들을 하고서 천사들이란 작자들이 하는 수작이라니..
그나저나 사람들도 반하는 MX-5000이라는 키보드는 천사의 마음마저도 움직였나봅니다. 금지시된 것을 접하고 스스로의 소속된 정체성을 버리는 것이 나약한 인간뿐인줄 알았는데 천사들도 그러했나봅니다.


[두 조각의 키보드 상부덮개]



살다보면 절대로 내 손에 쥐어질 것 같지 않던 키보드가 어느날 손에 잡힐 때가 있는 것 같습니다.
체리의  MX-5000이라는 키보드는 키보드계의 최고 몸값을 자랑하는 자태만큼이나 희소성으로 인해 (물론 지금은 너무 많은 분들이 가지고 계신 거 같아서 희소성 운운하기는 좀 그렇습니다만) 저같은 변두리 초보의 손에 당도할 수 있을 것이라고는 사실 꿈에도 생각지 못했던 것이 사실이었습니다.
그렇지만 사람의 운명이란 (천사 미하일이 사람이 알지 못하는 것은 자신의 앞날이라고 했던 것처럼 저역시 한치 앞을 알지 못하는 그런 존재인지라) 알 수 없는 것이라 이렇게 5000을 타이핑하고 있을 날이 올 줄은 진정 몰랐더랬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인가 도착한 하나의 쪽지는 제게도 5000을 가져볼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품게 했습니다. "유럽어 배열의 5000 신품을 들여올 계획인데 부엉군 하나  입수해보시겠소?" 라는 쪽지를 본 순간 가슴이 정말로 콩닥콩닥 거리는 것을 느낄 수가 있었죠. 그것은 저와는 전혀 연계됨이 없는 키보드라고 생각하고 있었기에 "5000은 관심이 없어" 라고 얘기하고 다녔는데 막상 목전에 이 키보드가 와있다고 생각하니 그 순간부터 정말 이 키보드가 갖고 싶다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유럽어 배열은 역시나 난감한 문제.. 키보드를 입수해 주시겠다고 한 고마운 회원분에게 참 낯짝도 두껍지요...
전 기판에 구멍을 뚫어주실 수 없겠냐고 부탁을 하고 말았지 뭡니까...
그렇게해서 뀨뀨님이 기판을 제작해 주실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러면 컨트롤러 연결등의 세밀한 작업은 제가 잘 못하니 기판이 나오면 대신 해주실 수 있겠냐는 귀찮은 부탁을 흔쾌히 수락해주신 덕에 키보드가 들어오고, 기판이 나오고, 영문배열 변경 작업을 해서 제 손에 오는데까지 5개월여의 시간이 걸린 듯 합니다.
기실 사람의 마음이란 무언가를 손에 넣은 것보다 그것을 손에 넣고 싶어하는 마음을 지니고 있을 때가 훨씬 즐겁고 행복한 것임을 모두들 잘 아시리라 생각합니다.
기다림의 시간동안 기판이 중도하차되는 듯 하여 속을 태우기도 했었고, 이게 정말 나한테까지 와도 되는 물건인가 의심도 자꾸 가져보게 됐던 거 같습니다.
그 번뇌의 시간동안에도 마음을 가득 채운 것은 기다림의 즐거움.. 그것이었던 거 같습니다.




사설이 너무 길었네요.
어줍잖은 사용기 쓰기에 미친척 5000을 등장시킨 것은 제가 회원이 된 이후로 쓸만한(?) 5000의 사용기나 사진등이 올라오지 않았다는 것과 과거의 사용기에서도 내부의 모습등을 자세히 보여준 사용기가 없는 듯 하여 비록 사진이나마 5000을 접해보지 못한 유저분들이 구경을 하실 수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모두들 아는 내용이겠지만 아직 5000에 대해서 자세히 모르는 유저를 위해 용기를 내어 사용기를 적어보게 됐습니다.
원래의 유럽배열 5000은 커다란 꺽쇠 Enter키에 정체불명의 기호들이 난무하는 키캡의 향연으로 정리해볼 수 있죠..^^;;
사실 우리가 영문배열을 선호하는 것은 영문배열의 키보드를 계속해서 써옴으로 인한 익숙함 때문이고.. 일본에서 영문배열은 만들지 않고 JIS배열 키보드만 나오는 것에 속상한 것은 그네들이 그네들의 배열에 익숙해있기 때문인 것을 우리가 간과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구요.
하여 익숙함을 위하여 유럽배열 5000은 영문배열로 거듭나야만 하는 필연의 이유를 태생적으로 안고 한국땅으로 입국한 듯 합니다.
유럽어 배열 MX-5000을 영문으로 변경하기 위해서는 당연지사 영문키캡이 필요합니다. 일단 모양새만 갖추기 위해서는 \, Enter, 왼쪽 Shift 키캡이 필요하지만 실질적으로 자판의 모양새까지 맞춰주려면 많은 수의 키캡을 바꿔줘야 하기 때문에 영문 키캡 한벌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시는게 속편할 듯 하네요.
유럽배열 키보드의 영문배열 키캡으로 변경시 자주 사용되는 구형 3000의 키캡은 문자열쪽을 제외하면 5000의 경우 대부분 심각한 문제를 일으킵니다.
그중에서도 편집키의 난감함이 가장 큰 문제로 대두되는데요. 높낮이가 일정치가 않기 때문에 실제 사용시 무척 난감해짐을 경험하게 됩니다. 또, control 키와 Alt 키의 경우 3000의 키캡을 가져올 경우 높이가 5000의 것보다 높아서 이질적으로 보이게 되더군요.
유럽배열 5000의 영문화에 가장 적합한 키캡은 그런면에서 보자면 1800의 것인데.. 1800의 키캡은 그 자체로 구하기 쉽지 않은 것이라 문자열쪽의 키캡들은 3000의 것을 활용했고, 편집키의 경우는 그냥 사용하거나 도색해서 사용하려고 했는데 다행히도 아크릴 키캡을 구하게 되어 들쭉날쭉한 모양새로 남는 비참한 운명을 벗어나게 되었습니다.. ^^




5000의  가장 큰 특징이라 하면 역시나 좌우로 각도가 조절되는 모양새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라고 할 수 있는데요. 5000은 단지 좌우로 벌어지는 것에 머물지 않고, 높낮이 조절다리를 취사선택하여 키보드의 좌우측에 기울기를 줄 수 있어서 편안한 타이핑을 가능하게 해줍니다. 최대 기울기를 주고 어느 정도 각도를 벌려놓았을 때 몸이 키보드에 의탁하는 자세가 되어 굉장히 편안한 타이핑을 할 수가 있더군요. 이런 편안함에 대한 중독성으로 인해 많은 분들이 5000을 그렇게 갖고 싶어하는 구나.. 하는 이유를 알 것도 같았습니다.
그 외 상단부에서의 특징은 익히들 보셨겠지만 키보드의 왼쪽 부분이 5000은 두가지 버전이 있죠. 하나는 펑션키로 할당되는 키를 가지고 있는 5000과 두 개의 스위치는 더미로 막아두고 윈키등을 장착한 5000과..



실제 쓰임새는 윈키있는 5000이 더 좋겠다고 생각하지만 역시나 윈키있음의 보기 싫음과 더미로 막힌 두 개의 스위치 자리는 정말 흉물스럽다라고 평소에도 생각을 했었죠. 그래서 사실 편집키등의 아크릴키캡은 구할 수 있을거라고 생각도 못해서 왼쪽의 5개 키나 NOVA님처럼 무각 아크릴키캡으로 덮어주고 싶다고 생각을해서 아크릴 키캡을 구하다가 얼떨결에 편집키와 펑션키등의 아크릴키캡까지 구하게 되버려서 어쩐지 NOVA님 따라하는듯한 모양새가 되버렸는데요. 삥 둘러서 아크릴키캡으로 덮어주었습니다.(^^;;) 방향키는 회색 무각 아크릴키캡과 바뀌어서 오는통에 그냥 일반 방향키를 쓰고 있습니다.
윈키있는 5000에서 가장 이색적인 것은 윈키등의 세 개 키에 흑축이 적용되어있다는 것과, 그 키압이 상상을 초월한다는 것이라고 할 수 있겠는데요. 처음에는 왜 이렇게 강한 키압의 스위치를 만들어두었을까 하는 생각을 했지만 실제 사용해보니 무한동시입력이 지원되는 키보드에서 열심히 게임을 하다가 윈키를 눌러서 게임에서 빠져나와버리는 난감함을 막기 위해서 그렇게 만든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됐습니다. 물론 5000이 나올 당시에는 5000이 게임용키보드(?)가 되버릴 거라고는 생각을 못했겠지만요..ㅎㅎ
실제로 타이핑중에 실수로 윈키부분에 손가락이 가더라도 키압이 강해서 윈키가 눌러지거나 하지 않습니다. 의도적으로 내가 윈키를 눌러야지하는 생각으로 눌러주지 않으면 눌리지 않는 정도의 강한키압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 외 더미키에는 일반 갈축을 두 개 심었는데요. 위의 더미키에 심은 스위치는 매핑등을 하지 않았슴에도 BackSpace키로 작동을 하는 신기함을 보여주네요.. 밑의 더미키도 뭔가 작동을 하지 않을까 생각해보는데 위의 더미키는 다이오드가 있는 스위치를 넣었는데 아래 더미키는 일반 스위치를 넣었는데 다이오드가 없어서일까 싶은 생각도 들구요.





스페이스바에 대해서도 잠시 얘기를 하고 가죠..^^
스페이스바는 5000에서 가장 신기한(?) 키캡을 가지고 있더군요. 그냥 정상적인 모양새로 있을때는 그저 보통 스페이스바였는데 키보드를 좌우로 각도를 주었을 때 스페이스바를 좌/우로 당겨서 길이를 늘려줄 수 있게 만들어두었습니다. 사실 좀 허접한 느낌을 주는 키보드가 아닐 수 없는 5000임에도 이런 세심한 신경씀에는 박수를 보내지 않을 수 없더군요. 사용자가 벌어진 키보드의 스페이스바를 누를 때 빈공간을 누르지 않게하기 위해 이렇게 만들어둔 듯 합니다.
그 외 스페이스바의 내부를 들여다보면 체리의 MX스위치 탑재 키보드에서는 익히 볼 수 없는 모양새를 하고 있습니다. 키캡을 빼내고 다시 꽂을 때 철심을 걸쇠에 걸어주어서 꽂는 방식.. 멤브레인 체리의 스테빌적용키캡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모양새였죠.



이제 그럼 키보드 상부와 바닥면을 볼까요..^^
키보드 상단부..는 아니고 바닥면으로 꺽이는 부분..을 보면 케이블이 나와있구요. 그 옆에 PS/2 단자가 하나 있습니다. 5700등의 키패드를 연결하는 연결단자랍니다. PS/2  마우스를 꽂아서 쓸 수 없을까 하고 문의를 했었는데 작동하지 않는다는군요..^^;; 예전 어떤 5000글의 리플에서 이 단자에 키보드를 연결해서 쓰고 5000을 허브로 쓰는 분이 있다고하던데.. 참으로 난감하지 않을 수 없는 5000의 실사용 예가 아닐 수 없다고 생각했었습니다.
바닥면에는 키보드를 분해할 수 있는 미니 나사가 장착되어있는 두 개의 구멍과 익숙하게 봐온 체리 키보드의 상/하부 연결방식(프라스틱 걸쇠로 위아래를 끼워맞추는식) 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실제 분해시 두 개의 나사를 풀고 이 걸림부분을 밀어내면 쉽게 키보드가 분리가 됩니다.






그리고, 바닥면에는 모두 여섯곳의 높이조절을 할 수 있는 장치가 되어있는데요. 중앙부 네 곳은 이단 높이조절이 가능하게 되어있구요. 이 여섯개의 높이조절 다리를 적절하게 조절하여 자신에게 맞는 높이와 대각선 기울기등을 주어서 타이핑할 수가 있게 되어있습니다. 저 같은 경우는 중앙부 높은 다리 네곳을 모두 펴면 대각선 기울기가 가장 크게 되는데 이 때 편안하게 손을 얹고서 타이핑할 수 있어서 굉장히 맘에 들더라구요. 5000을 구하시게 되면 회원분들도 이렇게 저렇게 조절을 해서 타이핑 각을 찾는 즐거움을 누리시길 바랍니다..







이제 내부를 잠깐 보고가죠.
체리 키보드의 내부야 뭐 특별히 볼 게 있겠습니까.. 그렇지만 5000은 적어도 한 군데 정도는 봐 줄만 곳이 있습니다..^^
그곳은 바로 분리가 되는 좌/우를 연결하는 튜브를 보는 일이죠. 현대의 어떤 전자기기든지 좌와 우가 분리가되는 유선의 기기에서 외부에서 연결부분을 짐작케하는 것을 드러내는 것은 보기가 좀 그렇죠. 하지만 5000은 이 튜브를 공공연하게 밖으로 드러내고 있고, 그 모양새를 안에서 볼라치면 작은 튜브 하나가 5000의 좌/우를 연결하는 배선을 통과하게 해주고 있슴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좀 조악하구나.. 그런 느낌을 받게 되기도 하지만 이런 것이 빈티지를 접하는 즐거움은 아닐까.. 그런 생각도 하게 됩니다.
키보드의 내부에는 5000의 무한동시입력을 처리해주는 컨트롤러부가 우측 기판밑면에 감춰져있구요. 이곳에서 튜브를 따라 연결된 배선으로 좌측면의 기판도 작동하는 연결모습을 보실 수 있습니다.
기판은 뀨뀨님이 특별히(?) 자신의 아이디를 넣어서 만들어주신 것을 볼 수 있는 [뀨뀨] 타이틀이 중앙에 자리잡고 있고, 기판의 하단면에는 두번의 실패를 거쳐 태어났음을 알리는 세번째 기판 표식인 [3rd] 표시가 보입니다.


이렇게 5000의 내/외부를 두서없이 둘러봤는데요.
5000의 명성에 걸맞는 무언가를 발견하는 기쁨도 있었고, 이것이 과연 5000의 실체란 말인가.. 하는 실망도 분명 같이 존재하고 있었습니다.
특별히 아쉬웠던 점은 손목 받침대를 일체형으로 만들었다는 것을 꼽을 수 있는데요. 최소한 분리가 되게끔 만들어주거나 아니면 손목 받침대가 없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손목 받침대를 잘라버린다면 대각선 높이조절이 불가능하게 되고, 좌/우로 벌어지는 것에 만족해야하니 그럴수도 없군요..^^
손목 받침대 없이 대각선 높이조절이 가능하다면 무척 심플한 모양새의 키보드가 되어 좀 더 즐거운 사용이 가능할 거 같다는 아쉬움을 남기며 5000의 외관탐색... 그 허접한 이야기를 마무리합니다.



## 바보 이반의 나라에서

한때는 '바보 이반'이라고 불리우던 이반황제가 다스리는 어느 땅 위에서..
한 과객이 길을 가다 이반의 나라에 들어선다.
배고픔과 갈증에 괴로워하던 이 과객에게 이반의 성이 보인다.
터벅터벅.. 간신히 성에 도착한 과객은 밥이라도 한끼 얻어먹을 수 있을까 싶어서 식당을 찾아보지만 식당은 하나도 찾아볼 수가 없고.. 식사시간인데도 사람들도 도통 보이질 않았다.
그렇게 길을 헤매다 과객은 사람들의 무리를 발견할 수 있었는데, 그들은 공동배급의 식당에서 밥을 먹고 있었다.
"저.. 저기.. 죄송하지만 이곳에서 밥 한끼 먹을 수 있을까요?"
이제 헛것이 보이기 시작하는 과객은 식사를 마치고 나오던 한 사람을 붙들고 밥을 구걸해보는데..
"당신 키보드는 가지고 있소?"
뜬금없이 성 안의 사람은 과객에게 밥을 먹을 수 있는지를 얘기해주기는커녕 되려 키보드가 있는지를 묻는다.
"왠 키보드요? 밥을 먹으려면 뭔가를 줘야 하는가요? 바꿔 먹을만한 건 별로 없는데.."
그러면서 어깨에 걸머진 배낭을 내려놓으려는 과객에게 성 안 사람은 정색을 하고 말을 해준다.
"그것이 아니구요. 이 곳은 이반 황제가 다스리는 땅으로써 모두가 같이 타이핑해서 먹고 사는 그런 곳입니다. 여기서 식사를 하려면 키보드가 있어야하는데, 그 이유는 열심히 타이핑해서 키캡이 반들반들해지다 못해 코팅이라도 된 듯한 키캡의 키보드와 지문이 다 닳아없어질정도로 된 손가락을 확인하고서야 식사를 준답니다"
그러고보니 식사를 하고 나오는 사람들의 손에는 저마다 키보드가 하나씩 들려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럼.. 난 키보드가 없는데 밥을 먹을 수 없다는 말인가요?"
"그렇소. 이곳의 법은 의외로 엄격해서 열심히 타이핑하지 않는 자는 먹지도 말라는 이반 황제의 엄격한 령이 지배하는 곳이거든요"
쓰러질 듯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는 과객.. 그의 눈에 식사시간인데 키보드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밭에서 일을 하고 있는 한무리의 사람들이 눈에 들어온다.
"그러면.. 저기 밥도 못먹고 밭에서 일하고 있는 사람들은 뭔가요? 키보드도 가지고 있는 거 같은데.."
"저들은 키보드를 가지고 있고, 열심히 타이핑을 하지만.. '키감'이란게 뭔지 모르는 사람들이요. 그래서 황제의 벌을 받아 밥도 못 먹고 밭에서 일을 하고 있는것이요"
울 것 같은 표정의 과객은 또 한 무리의 사람들을 본다. 그들은 밭에서 일하는 사람들과는 비교도 안되게 험한 일을 하고 있는 모습이었다. 헤진 옷을 입고, 몸에는 상처 투성이로 돌을 짊어지고 가는 사람들..
"그럼 저기 저 험한 일을 하고 있는 사람들은 뭔가요?"
"그들은 중증 죄인들로 키감이 무엇인지 잘 알면서도 타이핑을 해서 같이 먹고 살 생각은 안하고 게으름만 피우는 자들로, 그들의 키보드는 언제나 키캡이 막 나온것처럼 뽀송뽀송하다오. 그래서 그에 대한 형벌로 저들은 저런 험한 일을 하고 있는것이요"
아사 직전의 과객은 이제 밥 먹기는 다 틀렸구나 하고 그 자리에 누워버리는데 식당 옆 건물이 눈에 들어온다.
그 건물에는 창문마다 쇠창살이 쳐져있고 사람들의 힘없는 팔들만이 창살 사이로 걸쳐져있다.
"저기.. 저 건물에 시체처럼 팔만 내놓고 있는 사람들은 그럼.. 뭡니까?"
"아! 그들은.. 한때는 이 성의 발전에 크게 이바지한 사람들로 이반 황제가 하사한 MX-5000을 수여받은 인물들이죠."
"MX-5000? 그게 뭔지는 모르겠지만 뭔가 대단한 것인가본데.. 어째서 저들은 밥도 못먹고 저러고 있답니까? 이 성의 중요한 사람들이라면서요.."
성 안의 사람은 한숨을 쉬면서 대답을 해준다
"그들은.. 참 훌륭한 사람들이었는데.. 황제가 하사한 5000을 잘 관리하지 못하여 불시점검때 선탠만땅으로 만들어 놓은 것이 탄로나 잡혀온 것이라오. 이제 저들은 영영 햇빛을 보지 못할 것이오. 그들의 키보드가 누렇게 되어버린 대신에 아마 햇볕을 보지 못하는 저들이 하얗게 되어서 실려나올것이오. 안타까운일이죠."
듣는 둥 마는 둥.. 바닥에 누워버린 과객은 이제 숨이 경각에 달했다.
그 살풍경한 시간 위로 식사를 마친 이들이 집에서 일터에서 타이핑하는 소리만 남아 쓸쓸하게 떠돌고 있다.
철컹철컹, 찰칵찰칵, 도각도각, 푸슉푸슉, 딸깍딸깍, 차각차각....






살아가며.. '키감'이란 단어는 점점 낯선 이국의 언어처럼 느껴집니다. 익숙하게 알아왔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실상 잘 못 알고 있거나, 아주 얄팍하게 알고 있었던 것을 자세히 알고 있었던 것으로 착각하며 살아왔듯이, 키감이란 정체불명의 낯선 단어는 늘 의식의 언저리에서 영혼을 지배하고 있습니다.
키감에 대해 피동적으로 끌려가지 않고, 능동적으로 키감을 내 의식안에서 자유롭게 정의하고 객관화 시킬 수 있을것이라는 허황된 생각만이 남아있는 긴 시간뒤의 현재에서.. 지금은 어디로 가야할지 길을 잃고 어리둥절한 어린아이마냥 새로운 키보드를 대하는 일이 두렵다는 생각도듭니다.
체리.. 기껏해야 네 종류의 스위치에서 스프링을 교체해보는 정도의 변수를 가지고 있고, 최근에 테이핑 튜닝이라는 또 하나의 변수가 늘어나긴 했지만... 그래봐야 거기서 거기지라고 생각했던 것이 참 어리석음을 또 한번 깨닫는 시간에 다름아닌 과정.. MX-5000을 타이핑하면서 느끼는 새로움은 '표준'이라는 단어는 '키감'과 동시대에 양존할 수 없는 불구대천의 원수와도 같은 것이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만듭니다.
체리갈축.. 일문판 마제스터치로부터, wyse갈축, 11800, 8000, 컴팩1800, 맥미니 갈축, 구형 3000 갈축, 생각나지 않지만 두어종류의 키보드에서도 만져본 거 같기도 합니다. 모두 제각각의 느낌이 있겠지만 어느정도는 갈축의 느낌은 이런 것이구나라고, 표현할 수는 없지만 머릿속에서는 정리가 되고 있다고 생각했었는데 5000의 갈축을 타이핑하며 그 모든것이 헝클어져 버렸습니다. 우물안 개구리가 따로 없구나 싶은 생각도 들었구요.
체리 5000의 갈축.. 5000을 접해보기 전까지는 그저 활자화된 언어의 정의를 통해 5000의 갈축은 최고의 스위치로 만들어졌다라는 표현이 제가 아는 전부였습니다. 컴팩 1800과 같은 스위치라고도 들었지만 그 느낌은 사뭇 다르더군요. 지금까지 모든 키보드에는 보강판이 있었고, 없다면 보강판을 구입해서 넣어주었기 때문에 보강판의 영향으로 키감이 다르게 느껴지는 것인지 모르겠으나 체리 키보드의 첫번째 보강판 없는 키보드로 5000을 타이핑하면서 '내가 지금 이것저것 쳐보던 체리 갈색 스위치를 타이핑하고 있는 것이 맞나?' 싶은 생각이 들더군요. 그것은 마치 애플의 llgs를 타이핑하고 있는듯 도각거리는 느낌이 체리인지 알프스인지.. 모호함의 영역으로 손과 의식을 이끌어감을 경험하고 있습니다.
너무 호들갑떠는 거 아니냐고 질문하신다면... 인정합니다. 호들갑떠는게 맞습니다. ^^
뀨뀨님의 단단한 기판이 어우러진 영문개조 5000의 키감은 부드럽거나 포근한 느낌의 갈축과는 좀 거리가 있습니다. 절제되고 절도있는 강렬한 도각거림의 유혹은 쉽게 손을 키보드에서 떼지 못하게 만드는힘을 지니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키감은 지존이라고해도 토를 달지 않겠지만.. 5000의 타이핑시에는 어느 정도 약점도 존재합니다.  그것은 키보드의 각을 주고 높이를 세워서 타이핑할 때 중심부의 출렁임. 손목받침대를 탈부착할 수 없다는 것과 함께 5000의 최대 약점으로 꼽히는 중심부의 출렁임. 휘청거리는 오리지널 체리 기판의 경우는 그 정도가 더 심할테지만 그나마 기판이 단단하기에 조금은 덜한 거 같기도 합니다. 약점을 최소화하기 위해 기판과 하우징 사이를 메우고, 전에는 키감 향상을 위해 적용해보던 테이핑 튜닝을 이번에는 좀 더 단단한 타이핑이 되었으면 하는 바램에서 테이핑 튜닝을 거쳤습니다. 또각또각님이 보내주신 또뀨세이버에 들어가는 스위치 튜닝 테이프의 초기 버전을 적용해보고, 스테빌라이저가 적용된 키들의 푸석푸석함을 해결하고자 digipen님의 스테빌 튜닝팁을 적용하고... (개인적인 문제지만 인체공학 키보드를 그동안 의도적으로 접하지 않았던 것은 희한하게 영문 'B'는 왼손 검지로 타이핑하면서 영문 B에 해당하는 키의 한글 'ㅠ'자는 오른손 검지로 타이핑하는 습관을 지니고 있었기에 이것을 바꾸기가 심히 어려웠더랬습니다. -사이가 벌어지게 되면 'ㅠ'자는 반드시 왼손 검지로 타이핑해야하므로- 5000을 타이핑하면서 의도적으로 'ㅠ' 받침을 왼손 검지로 타이핑하려니 가끔 타이핑시 버벅거리게 되는데.. 필요에 의해서지만 많이 고쳐진듯합니다.)
다시 서두로 돌아오면... '키감'은 원래 존재하는 것인가? 아니면 만들어가는 것인가? 하는 원론적 의문이 남아있게됨을 발견합니다. 무엇을 위해 키감이 향상되기를 바라는가, 키감이란 정말로 누구나 인정할 수 있는 향상이란 것이 있는 것인가, 아니면 원래 거기서 거기인것에 자신만의 의미부여를 통한 자기합리화의 다른이름을 '향상됨'이라고 착각하고 있는 것인가..
물론 해답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과정은 결과에 동일하지만은 않은 것이 세상사 진리이고 보면 과정의 난제와 즐거움을 동시에 즐길 수 있다면 그것이 '키감'과 '향상됨'의 추상적 가치에 가장 근접한 답안지가 아닐까 조심스레 생각해봅니다.



## 왕후의 키보드, 걸인의 컴퓨터




작은 타이틀은 아마 학교 다닐 때 국어 시간에 한번씩은 읽어봤을 수필 [가난한 날의 행복]에 나오는 저 유명한 문구인 '왕후의 밥, 걸인의 찬' 에서 가져와봤습니다.
제가 쓰고 있는 컴퓨터는 중고 저사양 펜3에 17인치 누렇게 뜬 배불뚝이 모니터랍니다. 아마 평면도 아니고 지금 배불뚝이를 집에서 쓰고 계신 분은 그렇게 많을 거라고는 생각지 않는데요..^^
이 컴퓨터는 컴퓨터도 없이 키보드만 구입해서 쳐보다가 아는분이 컴퓨터를 새로 산다기에 삼겹살에 소주한잔 대접하고 얻어온 컴퓨터 일명 3만원짜리 컴퓨터랍니다.
문득 책상위에서 이 줏어온 듯한 컴퓨터와 MX-5000이 공존하는 풍경을 누워서 바라보노라니 저 위의 유명한 문구가 떠오르더군요.
내 키보드는 모두가 꿈꾸는 그런 키보드인데 어찌 컴퓨터는 저렇게 어울리지 않는고.. 이거야말로 왕후의 키보드요, 걸인의 컴퓨터라고 불리우기 딱 좋지 않은가.. 그런 생각이 들어서 혼자 웃고 있답니다. 하지만 뭐 아무려면 어떻습니까.. 영화보는데 지장없고, 만화책 보는데 지장없기에, 그리고 가장 중요한 키감을 만끽할 수 있게 해주는 가장 중요한 키보드의 동반자이기에 저의 '걸인'은 사실 키보드의 친구인셈이죠..^^
음..
사용기랍시고 주절주절 쓰고 있지만 점점 더 저는 사용기같은 걸 쓸만한 그런 사람이 아니구나라는 자각을하고 있습니다. 사용기는 언제나 과거의 유물이 아니고 새로이 이곳을 찾는 이들을 위한 현재진행형의 글이라고 생각하기에 좀 더 정보를 담아야한다고 생각하고, 객관적인 이야기를 전달해야 한다는 생각을 늘 하지만 실상은 언제나 그렇지 못합니다. 그것이 사용기라는 것을 쓰는데 있어서 가장 큰 부담감인 듯 합니다. 과거 사용기에서 고수분들의 저 훌륭한 사용기를 보면서 언제쯤 저런 사용기를 써볼 수 있을까 생각해왔지만 이제 몇 번 남지 않은 사용기를 쓰면서 모든 이들의 기억에 회자될만큼의 훌륭한 사용기를 쓰기에는 애초에 내가 너무 얄팍하구나 하는 깨달음을 얻은 듯 합니다.
오늘 사용기에 부가된 이야기들은 저의 유년시절을 가장 크게 지배했던 톨스토이의 작품들에서 그 내용을 가져왔습니다. 무덤에 싸서 저승에 가져갈 수 있는 키보드가 하나도 없음은 당연지사인데 왜 키보드를 소유하고픈 욕망의 노예로 나는 살아가는가.. 나는 왜 키보드를 좋아하는가, 나는 키보드의 무엇으로 살아가는가.. 바보 이반의 이상향의 땅에서 공존하고 공생하는 법을 왜 배우지 못하고 나만의 영역에서 안주하고픈 욕구에 시달리는가.
훌륭한 작품은 유년시절로부터 중년을 향해 달리우는 지금의 나이안에 보이지 않는 영향을 행사하고 있지만 실천하며 살아야하는 의미는 제 것이 되지 못하고 있는 듯 합니다. 그렇기에 이렇게 먼 길을 돌아서 저 자신의 얄팍함을 깨닫게 되는 것인가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마지막으로.. 왕후의 키보드..
체리 MX-5000이라고 불리우는 이 키보드는 최소한 이곳에서만큼은 어떤 상징적 가치로 존재한다는 생각을합니다.
때론 모든 걸 털어서라도 하나쯤 장만해두고 싶은 그런 가치, 궁극적으로 도달하고픈 마지막 키보드로서의 가치, 실사용하기에는 아까워서 그저 보관밖에 할 수 없는 감상용으로서의 가치, 실은 갖고 싶지만 가격대와 구입의 비용이성으로 인해 5000은 관심없다라고 말해야만 하는 서글픔으로써의 가치, 희소성에 대한 소장욕구로서의 가치...
그런 가치라고 하는 것의 상대성은 모두의 마음안에서 언제나 꺼지지 않는 불빛으로 남아 키보드매니아라는 커다란 배가 흔들리는 바다 위에서 길을 잃지 않고 마음안의 어느 이상향의 지점으로 키를 잡아갈 수 있는 원동력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비록 갖고 싶은 키보드가 구해지지 않더라도, 갖고 싶은 부품이 구해지지 않더라도 내 마음이 반짝반짝 빛을 내며 이곳에 존재하는 한 5000의 상징적 존재가치는 점점 더 현실적 가치로 다가올 시간안에, 내 책상위의 내 손 아래서 그 상징은 현실이 되리라고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저의 책상 위에서 지금 여기에 존재하듯이 말이죠.
그럼 다음에 또 어설픈 사용기로 만나뵐 날이 있겠죠..^^



## 감사함을 전하며..



아크릴 키캡을 분양해주신 이치고님.. 덕분에 제 5000이가 멋진 모습이 되었습니다. 왼쪽 5개만을 구하기도 힘들었는데, 이렇게 많은 키캡을 구할 수 있어서 정말 다행이란 생각이듭니다. 고맙습니다.
스위치 튜닝용 테이프를 보내주신 또각또각님.. 종이 테이프 붙이기가 너무 힘들어서 두 개 정도의 키보드만 하고 이제 포기해야지 싶었는데 테이프를 보내주셔서 어디다 쓰나 고민했는데 5000이 생겨서 다행히 즐겁게 사용했습니다. 너무 감사드립니다.
영문 5000 기판을 제작해주신 뀨뀨님.. 두번의 실패를 통해서 계속 추진하기 버거우셨을텐데 끝까지 만들어주신다는 약속을 지켜주신 모습에 보이지 않는 박수를 보냈습니다. 언제나 뀨뀨님의 기판으로 저를 포함한 다수의 회원분들의 행복한 경험을 하고 있슴을 잊지마시길. 고맙습니다.
그리고, 5000 신품을 공수해주시고 귀찮은 작업을 떠맡아서 키보드를 완성해주신 이환진님.. 긴 말이 무슨 필요가 있겠습니까..언제나 무한한 감사함을 마음속으로 간직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