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를 어디서 부터 해야할까요?

항상 글을 쓸 때면 고민이 많이 됩니다.

우연찮게 베스트 글에 등록된 모델 M 리뷰에서도 과거의 이야기를 언급한 바 있지만,

저의 키보드 선택과 평가의 기준은 항상 과거에 매여 있는 듯한 느낌이 듭니다.

이번에 운좋게 뉴스란의 댓글 이벤트 당첨으로 받게 된 FC900R 더블샷 또한 과거와의 접접을 찾을 수 있는 제품이었습니다.

때는 바야흐로 199X (북두의 권 아닙니다)...

당시 중학생이었던 저는 컴퓨터라곤 8086XT만 갖고 있었고

최신 컴퓨터가 정말로 갖고 싶었었는데..

어쩌다 보니 뉴텍의 펜티엄 150MHz 컴퓨터를 구매하게 되었었습니다.

당시 딸려왔던 키보드가 세진의 키보드였는데, 저는 원래 모든 키보드의 키캡이 그런 줄 알았습니다.

바로 이렇게요.

'아, 키캡에 글자를 새기려면 플라스틱을 겹쳐서 찍어야 되는구나!'

뭐 그때 당시에는 몰랐지만 사실 딸려온 키보드가 상당히 고급스러운 놈이었던 셈이죠.

(이때는 8086XT의 키보드도 뭔지 몰랐습니다)

멤브레인 키보드인데도 불구하고 후타바 스위치랑 동일한 타입의 플린저를 갖고 있고,

위 사진과 같은 두꺼운 이색사출형 키캡을 가지고 있던 키보드였으니까요.

좌우지간,

이래저래 시간들이 지나고 국내 업체로는 아론, 해외 고급(?) 메이커로는 체리, 필코가 기계식 키보드를 조금씩 내놓으면서

그 저변을 넓혀가긴 했었지만..

어떤 키보드던 간에 만져보면 어딘가 불만족 스러웠던 느낌을 받았던 것은 

아마도 세진 키보드의 바보스러울 만큼 충실했던 만듦새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멤브레인 키보드에 플린저 + 두꺼운 이색사출 키캡 + 보강판은 요즘에도 찾아볼 수 없는 구성이죠.

오늘의 이야기로 돌아와서 사실 그다지 튀는 부분은 없지만 FC900R 의 매력이라고 할만한 점은

도저히 10만원대 초반의 키보드라고는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기본기가 탄탄하다는 데 있지 않나 싶습니다.

그것도 특히 위에 언급했던 '키캡' 부분에서 말이죠.

▲ 이중 사출, 두꺼운 키캡이 900R의 최대 장점

체리 MX 스위치를 사용한 기계식 키보드라는 웬만한 기계식 키보드의 공통점을 제외하고 본다면

- 이중사출 두꺼운 키캡

- 흡음재

- DIP 스위치를 통한 커스텀

요 정도가 900R의 주요 장점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고,

시중에 나와있는 키보드 중에 비슷한 가격대가 아니라 더 높은 가격대에서도

이보다 더 괜찮은 옵션을 가진 기계식 키보드는 얼마 없어 보입니다.

▲ 군더더기 없는 깔끔한 디자인

풀 사이즈 키보드에서 레이아웃은 그다지 차별성을 두기는 힘든 부분이고, 이 부분에서 역시 900R 또한 타 키보드와는 비슷합니다.

다만 이것은 단점이라기 보다는 원래 미니/컴팩트 레이아웃이 아닌 이상 

제조사가 바꾸고 자시고 할 여지가 거의 없기 때문에 발생하는 현상이니 단점이라고 보기는 어려울 듯 싶습니다.

오히려 FN 키와 조합하여 사용할 수 있는 멀티미디어 기능들이 있는데도 따로 표기를 해 주지 않은 부분을 단점이라고 해야겠지요.

(900R은 Fn 키와 기능키의 조합으로 여러 기능들을 추가로 제어할 수 있습니다)

▲ 약간은 번잡해 보이는 LED 인디케이터 부분

전체적인 디자인은 위에 말해다시피 딱히 꼬집을 부분은 없습니다만

키패드 상단의 LED 인디케이터에 새겨진 텍스트와 아이콘은 자칫 번잡해 보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전혀 다른 메이커지만 토프레 처럼 '회사명 - 모델명' 정도만 마킹했어도 됐을 것 같은 느낌.

▲ DIP 스위치

어떤 분들에게는 전혀 필요 없을지도 모르지만

캡스락 위치의 컨트롤을 선호하는 제 입장에서 DIP 스위치 조작을 통한 CapsLock < > Ctrl 스왑 기능은 정말 반갑습니다.

이얏호!

▲ 다리를 만든다고 끝이 아니에요. 마무리가 중요하죠.

키보드의 다리 또한 지나치기 쉬운 부분이지만 충실하게 고무로 마감되어 미끄럼을 효율적으로 방지해 주고 있습니다.

기껏 다리 만들어 놓고 고무로 처리 안해서 미끄러지는 키보드들도 많으니까요.

▲ 진풍 키보드 이색사출 키캡 / 마제스터치 키캡 / FC900R 키캡

키캡의 이 키보드의 최고 특징이라고 했는데,

여러가지 키보드를 접하기 시작한 이래로 '이색사출 키캡' 이라고 하면 웬지 제일 왼쪽의 키캡같이

플라스틱이 아까운듯 정말 딱 글자에만 쓰일 수 있을 정도로 사출한 얇은 키캡을 더 많이 봐왔었던 것 같습니다.

뭐 저녀석은 오래된 키보드기는 합니다만..

아무튼 사진에서 보시다시피 키캡의 두께는 많이 두꺼운 편입니다.

▲ FC750R 키캡과 FC900R 키캡의 비교

두께야 750R의 키캡과 동일하게 보이고, 차이는 높이인 듯 싶습니다.

아직 긴 시간을 타건해 본 것이 아니라 뭐라 말은 못하겠지만, 역시 키캡은 높으면 높은대로의 매력이 있고

낮으면 낮은대로의 매력이 있는 것 같습니다.

▲ 추가 구성품들 (사진에서는 키캡 리무버가 빠져 있습니다)

추가 구성품들은 적당합니다.

Ctrl 스왑을 위한 여분의 키캡과 PS2 젠더, 케이블, 키캡 리무버가 동봉 되어 있습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PS2 컨버터를 사용할 경우 

키보드를 말아먹거나 인식이 안되는 경우도 있는 걸 생각해보면 좋은 구성품인 것 같습니다.

개인적으로 FC750R이 레오폴드 완제품의 제 2기를 알리는 제품이었다면,

FC900R은 기계식 키보드가 나아가야 할 기본적인 완성도 부분을 다시 정의해 준 느낌이 듭니다.

별다른 단점을 찾아볼 수 없으면서 기본적인 완성도가 뛰어나고, 가격 또한 매우 합리적인 수준입니다.

불과 몇년 전만 해도 주변인들에게 레오폴드 기계식 키보드를 거의 추천하지 않았었는데,

이제는 레오폴드 기계식 키보드만 추천해도 별로 문제가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면서 글을 이만 줄이고자 합니다.

마지막으로 타건 영상을 첨부합니다. (본 모델은 흑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