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haime.egloos.com/1139589/왕초보의 사용기라서 매니아 분들 보시기에 굉장히 미흡한 글이 되겠지만....
이곳 키보드 매니아에서 정보를 얻어 구입하게 된 녀석이어서,
이런 사용기라도 혹시 보탬이 되면 좋겠다 싶어 용기를 내어 올려봅니다.
제 블로그에 올렸던 것이라 원래는 키보드 매니아가 아닌 저와 같은 초보 일반인들 대상의 글입니다.
어색한 점도 있겠지만 부디 양해 부탁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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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작년에 컴퓨터를 하나 사야겠다고 생각했을 때, 성능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어차피 게임이나 전문 그래픽 디자이너를 할 것도 아니고, 평범하게 문서 작성하고 웹서핑 하는 정도인 일반 유저로서, 중요한 건 책상을 얼마나 적게 차지하느냐였거든요.
그래서 이 녀석을 골랐습니다.


이것은 제가 2년째 쓰고 있는 컴퓨터, 후지쯔 L2010입니다. 노트북 계열이긴 하지만 4kg라는 무지막지한 무게로 인하여 어디 들고 다니는 건 불가능하고, 애초에 컨셉도 데탑-노트북의 중간을 지향하고 나온 듯 합니다.



모니터에 본체가 붙어있는 형태이며 키보드도 저렇게 접어올릴 수 있기 때문에 책상 위든 밑이든 공간을 적게 차지한다는 점에서 매우 매혹적인 컴퓨터였습니다. 키보드와 마우스가 무선이기 때문에 원래는 책상 위에 전원 선 외엔 아무 것도 선이 없게 됩니다. 깔끔함에 있어서도 탁월했습니다. 저게 나온 후 루온과 G5가 나왔지만 루온은 저 후지쯔보다 디자인이 구렸고 G5는 맥이라서 어차피 그림의 떡이므로, 저는 이 컴을 지금도 무척 좋아합니다.



기본으로 딸려나온 무선 마우스 역시 컨셉이나 디자인은 좋아합니다. 여자 손에 아담하게 잘 들어가는 크기이고, 무엇보다도 가운데가 휠이 아니라 씽크패드의 트랙포인트처럼 막대라는 것이 마음에 들었습니다. 휠을 오래 굴리다보면 가운뎃손가락이 아픈데 이건 막대를 원하는 방향으로 계속 밀고 있으면 되거든요.


하지만 문제는... 사람은 그림만으로 살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책상 위에 선이 하나도 없다는(전원선은 책상 앞에서 보면 안 보입니다) 그 깔끔함을 지키고자 저기에 적응하려 무던히 애써봤지만,

저 무선 키보드는 뷁이오 저 무선 마우스는 쒯이었습니다.

사실 맨 처음의 고려 대상이었던 IBM의 빨콩 달린 울트라나브 키보드가 대상에서 제외된 결정적인 이유가 그것이 기본적으로 노트북 키보드를 따왔다는 점 때문이었습니다. 키 깊이가 얕다는 것이 참으로 손가락을 피곤하게 만들더군요 =_= 이 무선 키보드는 두들기면 두들길수록 자판 칠 의욕을 잃게 만드는 실로 놀라운 키보드였습니다. 치다보면 그냥 싫어져요.;;
마우스 역시 오십보 백보였는데, 뭐랄까 참 무겁고 뻑뻑합니다. 아무리 막대휠이 매력적이어도 도저히 참지 못하고 키보드보다 먼저 백기를 던지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결국 마우스는 마소 유선 광마우스, 키보드는 1만원대 삼성 키보드(얻은 것)를 사용하며 오늘에 이르렀는데...


어차피 전문적으로 키보드 두드리는 직업이 아니므로 삼성 키보드에 별 불만은 없었습니다. 아니 뭐 어쨌거나 저 뷁스러운 후지쯔 노트북 무선 키보드보다는 훨씬 나으니까. 하지만 불만은 역시 공간이었습니다. 일반적인 키보드는 책상 위에 늘 올려놓고 있기에는 사이즈가 부담스럽고, 다른 일 할 때마다 딴데 치우는 것도 번거롭고요.



물론 온종일 키보드치는 직업이라면 크기가 항공모함만하더라도 이른바 인체공학 키보드를 사용해야 했겠죠(경험담). 하지만 그런 것도 아니고 오른쪽의 숫자키를 많이 쓰는 것도 아니니 한번 미니키보드를 알아보면 어떨까 하고 생각하게 된 것은 사실은 꽤 오래됐습니다. 하지만 그래봐야 마우스 패드만큼의 공간은 여전히 필요하니 공간이 줄어봐야 얼마나 줄어들겠느냐 라는 의문과, <깔끔한 책상 위>에 대한 미련을 완전히 버리지 못하고 저 뷁쒯 콤비에 어떻게든 적응해볼 수 없을까... 라고 생각해서 질질 끌다가 결국 오늘에 이른 것이죠.


그러다 마침내, 결심을 하고 알아보게 된 것은 며칠 전에 문득 "키보드에 빨콩이 달려있으면 마우스 - 마우스 패드 공간 - 도 필요없잖아?" 라는 생각이 번개처럼 머리를 스친 덕이었습니다.
그래서 스스로의 깨달음에 대견해하며 신나게 알아보았으나...


이놈은 좌우폭은 좋은데 상하폭이 길고 (덕분에 엄청 커보임;)

이놈은 상하폭은 좋은데 좌우폭이 미니키보드보다 길고.


게다가 그래봐야 어차피 마우스를 완전히 없앨 수는 없다고 하더군요. 그렇다면 차라리 미니키보드 중에 작고 편한 걸 골라보자 하고 알아본 것이 HHKB(Happy Hacking Keyboard) 시리즈였습니다.

여러 종류의 미니 키보드 중에서 이것을 고른 것은, 보통 미니키보드는 보드 크기를 줄이다보니 키도 작아지고 촘촘해져버리는데 비해 이것은 보드 크기가 제일 작은데도 불구하고 키캡의 크기와 간격은 일반키만큼 크다는 점이었습니다. 키보드가 작은 것도 좋지만 타이핑할 때 편하려면 키가 너무 좁아도 곤란하니까요.

대신 이건 작은 보드에 큰 키캡을 우겨넣다보니 키의 숫자가 제일 적어서(60키) F1~F12의 펑션키는 고사하고 home End PgUp PgDn, 심지어 pro 버전의 경우엔 화살표조차도 따로 없다는 점이 단점이었습니다. Lite버전은 화살표는 따로 있더군요.


△ Happy Hacking Keyboard Lite2 (국내가 88000원)


그래서 처음엔 라이트 버전에 마음이 기울었으나, 라이트 버전(정확하게는 Lite2 모델)은 결코 저렴하지 않은 가격에 비해 키감이 별로라는 평이 많아서 좀 그랬고, 게다가 때마침 일본 옥션에 pro 매물이 좋은 가격에 떴기에, 그냥 낚아채고 말았습니다. 물론 '좋은 가격'이라고 해도 16만5천원이었지만; 그게 국내 판매가가 32만원이라는 걸 생각하면 왠지 이득본 기분이 들잖아요? -ㅁ-;;


그래서 오셨습니다. 박스가 우그러진 것은 중고이니 그러련 합시다.

내용물입니다.


크기비교를 해볼까요.


얼핏 보면 얹혀있는지 모르겠죠? ^_^;

내렸습니다. 그야말로 일반 키보드에서 해당부분만 썰어서 들어낸 듯한 크기로군요.

이번에는 원래의 무선키보드와 비교해봅니다.

작군요.


하지만 뭐니뭐니해도 궁극의 비교는...


정확하게 A4 절반입니다.

그에 더불어 이런 장점도 있습니다.

키보드와 선이 붙어있는 일반 키보드와 달리 이녀석은 키보드와 선이 분리됩니다.


이게 무슨 장점이냐고 하실지 모르겠지만, 저처럼 책상 위에 키보드를 올려놓고 쓰는 사람의 경우에는 상당한 장점이 됩니다. 책상에서 키보드를 잠시 치워야 할 경우, 컴퓨터 본체에서 선을 뽑아서 치우고 도로 끼워야 하는 것과 저렇게 키보드 몸체만 달랑 치웠다가 다시 꽂을 수 있다는 것, 어느 것이 더 편할지는 말할 필요가 없겠지요. 컴 본체가 책상 밑에 있는 사람의 경우엔 더욱 그렇겠고요.

그리고 디카 속 사진을 컴에 옮길 때도 저 선을 같이 쓸 수 있어서 좋습니다. 키보드에서 뽑아서 디카에 꽂으면 되거든요. 생각해보니 이게 더 큰 장점이네요. 선 하나로 키보드와 디카며 기타 USB 장비를 다 쓸 수 있으니 어디 이동할 때도 편하겠고요.


전경입니다.


조금 가까이에서 찍었습니다. 아깐 손목 받침대를 키보드 하나가 다 차지하고 있었는데, 이제는 같은 너비에 마우스까지 들어가네요.


자, 그럼 이제 크기 얘기는 실컷 했으니 사용감 얘기를 해봅시다. 사실 진짜로 중요한 건 그거니까요. 지금 제가 본체에 딸려 나온 무선 키보드가 크기가 커서 쒯했던 게 절대 아니거든요; 순전히 사용감이 엿같아서 저 돈을 처들여 새로 장만해온 건데, 과연 그 돈바른 값을 하는가가 실로 중요하지 않을 수 없겠지요. 그래서 그 감상은....


이걸 30만원 주고 샀다면 어땠을지는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이걸 16만5천원 주고 산 것은, 만족스럽네요.


물론 이것의 정가가 16만5천원이었다면 또 느낌이 약간 달랐을지 모르겠지만, (아무래도 지금은 워낙 정가대비 싼 값에 사서 만족감이 더 큰 것도 있으니 -ㅁ-;) 그래도 가능한한 객관적으로 판단하려고 해봤을 때, 이게 19만9800원까지라면 정가가 그랬건 내가 산 가격이 그랬건 간에 만족했을 것 같습니다. (왜 199,800원이냐면... 39800원과 40000원의 차이를 생각해봅시다; 20만원과 19만9천8백원은 아무리 눈가리고 아웅이라도 느낌이 다르다구요;;)

비교해볼만한 키보드가 여태 쓰던 삼성DT35 밖에 없어서 모르겠지만, 그건 그냥 장난감 용수철을 탕탕 퉁긴다는 느낌이라면 이 HHKB pro는 뭐랄까 키보드 건반을 두드리는 느낌이네요. 그것도 무거운 것 말고 적당히 가벼우면서 사각거리는 명품 건반이랄까.

체리나 리얼포스 같은 다른 명품 키보드를 써본적이 없는 까닭에 이 '사각' 하는 느낌이 과연 좋은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아무튼 지금 타이핑하고 있는 이 순간에도 느낌이 꽤 경쾌하니 좋습니다. 꽤 깊이있게 눌려서 내가 지금 키보드 누르고 있다는 실감도 나고. (노트북은 얕아서 싫었다니까요;) 키보드 타격음도 좀 희한해요. 너무 크지도 작지도 않고, 약간 둔탁하면서도 귀여운. 꽤 묘한 소리네요. 뭐랄까, 호두 두개를 맞굴리는 소리랄까?


다만... 다른 건 그럭저럭 다 괜찮은데 방향키가 따로 없다는게 좀 불편하긴 합니다. 방향키를 쓰려면 fn + 다른 키의 조합으로 써야 하거든요. 익숙해지면 괜찮을지 모르겠지만 이건 익숙해져도 아쉬울 것 같습니다. 다른 키는, 가령 남들이 HHK 키배열의 난점으로 많이 지목하는 백스페이스와 Del키의 문제 같은 건 키맵핑으로 해결을 봐서 다 괜찮거든요.

그래서 지금 방향키가 따로 있는 HHKB lite2를 한번 써볼까 하는 생각이 들고 있습니다. 키감이 9만원값을 못한다는 얘기가 많지만, 그럼 중고로 싸게 구해보면 될게 아니냐 싶고요. 어차피 1만원짜리 삼성 키보드도 별 불만없이 여태 잘 써왔으니까.

다만, 내 손에 지금 들어온 이 HHKB pro를 내보내는 건 참 쉽지만, 다시 내가 산 가격에 도로 구하는 건 불가능하다는 게 문제라면 문제입니다. 지금 산 건 일본 옥션에서 15000엔에 즉구해서 가져온 건데, 그 다음에 즉구 없이 끝까지 경매가 진행된 다른 두개의 키보드는 모두 18000엔에 끝났습니다 -_-; 정상적인 옥션이었다면 최소 3만원이 더 뛴다는 얘기죠. (정말 운이 좋았지;;)
국내 중고 장터에서도 18만원에 매물 나온 걸 두번 봤는데 다 1시간도 안 되어 거래가 쫑나더라고요;
그러니 설령 Lite2가 마음에 든들 pro를 과연 방출할 수 있겠느냐는 문제가 대두되는데, 아무래도 그건 어려워보이니... 그럼 그냥 죽이되든 밥이되든 이 방향키 조합(Fn+다른 키)에 익숙해지도록 노력하는 게 현실적일 듯 합니다.

...그래도 한번 Lite2를 써보고 싶긴 하네요. 과연 Pro와 키감이 어떻게 다른지 궁금하긴 궁금하거든요.


자 그럼 마지막으로 HHKB의 키배열을 살펴보죠.


기본은 이렇습니다.

fn키와의 조합.


이공계 종사자에게 최적의 키 배열이라던데 나는 유닉스도 뭣도 사용하지 않으므로 그 진가는 알 수 없고;;
~ 자리에 esc가 있는 바람에, 사온 첫날 ~누르려다 esc를 눌러서 열심히 쓰던 답글을 날려먹은 적이 두번 있습니다;;

그리고 많이들 불편하다고 하고 실제로 제가 써봐도 불편한 것이 del키와 bs키의 문제였는데, 이 키보드는 기본적으로 둘중 하나를 그냥 누르면 다른 하나는 Fn과 조합해서 눌러야 하게 되어 있더라고요. del을 그냥 누르면 bs는 Fn조합으로 사용해야 한다든가 아니면 그 반대던가. 근데 del과 bs모두 자주 쓰는 키이기 때문에 꽤 불편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아래처럼 매핑했습니다.


한/영, 한자, del과 bs, ~ 키는 레지스트리를 조작해서 일반키보드처럼 지정하고,
사라진 esc는 autohotkey라는 프로그램을 이용하여 [ alt + ` ]의 조합으로 기능하도록.
사실 제일 바랬던 건 왼쪽Fn + ` 였는데 그렇게 지정하는 방법을 도저히 찾지 못해서 일단은 alt와 조합시켜놨습니다.

다만 저 조합은 윈도 IME 일본어 모드에서 전각일어-반각영어 변환키이기 때문에, 한글 모드에선 Esc로 기능하지만 일어모드에서는 일-영 변환으로 작동하더군요. (즉 일어모드에선 Esc가 없어짐)
그래서 ctrl과도 조합시켜봤지만 그것보단 alt가 편해서, 어차피 일어모드에서 Esc 쓸일도 거의 없으므로 그냥 저 조합으로 놔두기로 했습니다.
하지만 좀더 써봐서 저것도 귀찮다 싶으면 왼쪽Fn을 Esc로 바꾸는 것도 고려중입니다. 위치가 통상의 Esc와 많이 달라지긴 하지만 대신 키를 하나만 눌러도 되니까요. (그나저나 정말, Fn + ` 를 Esc로 만드는 방법이 어디 없으려나....)


.......쓰다보니 꽤 긴 글이 되었군요. (사진이 많아서 그런 것도 있지만)

단 이틀 써본 허접 감상기라서 도움이 될지 뽐뿌가 될지 재뿌리기가 될지는 잘 알 수 없지만,
방향키를 제외하고는 전반적으로 상당히 만족스러운 편입니다.
전체 크기는 작아도 키캡 크기와 간격은 일반 키보드만해서 손에 부담이 없으며
예상대로 오른손 동선이 현저히 짧아졌고
키를 두드리는 느낌도 상당히 경쾌하면서도 부드럽게 사각거려 좋습니다.
제가 한 것처럼 일반 키보드에 가깝게 배열을 조정하면 적응시간도 별로 안 걸리고요.

그리고 방향키도, Lite2의 경우 따로 있다고 해도 그게 오른쪽 아래구석에 붙어있는 까닭에 그걸 치려면 오른손의 동선이 조금이나마 늘어나게 되거든요. 이 pro의 배열이 Fn키와 조합해야 해서 번거롭긴 해도 대신 손목 받침대에서 양손목 위치가 움직일 일이 거의 없다는 것은 장점으로 볼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실은 마우스 잡으러 오른손 움직이는 것도 귀찮아지고 있습니다-_-; 여기에 빨콩이 달려있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꼬;;;;)

한마디로 말해서, 키보드 하나에 들인 돈치고는 (저로서는) 상당히 쎘음에도 불구하고,

돈 아깝다는 생각은 들지 않네요.

이것의 정가가 18만원 정도로 책정됐다면 다른 사람들에게도 쉽게 권할 수 있었을 것 같습니다. 아쉽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