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CR-POS Saver

## 기억

자신의 손끝에서 세상이 시작될 수도 있고, 세상이 끝날 수도 있다.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되는 그 무언가는 무거운 납덩이 되어 상념을 짓누르고
짓눌린 상념은 진실과 왜곡이라는 두개의 사생아를 낳는다.
두 아이는
감추어진 그늘의 진실이라는 슬픔속에서, 벌거벗기워진 주목의 왜곡이라는 고통속에서 자라난다.
하나의 이야기를 한다는 것은 때론 그러함일 수도 있겠다.
마음안의 진실된 생각을 전달하지 못함으로 인한 슬픔을 갖음과 동시에
그릇된 전달의 왜곡으로 인한 고통을 종양처럼 키워가는 것에 다름아닐 수도 있으리라.
그러나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짓눌린 상념이 비틀려 세상에 나올지라도 그 생각이 그 마음이 나 이외의 타인에게 전달되어 파생되는
미묘한 마음안의 파장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그것이 옳든 그르든, 그것이 세상의 시작이든 끝이든...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사람이, 모든 사람이 자신의 손끝을 주목하는 그 순간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잠언처럼 마음안에 퍼지는 내 생각이 세상에 태어나는 그 아픔의 시간을 기억해야 하리라.



## 원론적인 것들에 대하여

어느날 문득 밤하늘을 봅니다. 별빛이 예쁜, 그러면서 서늘한 기운을 품고있는 그 예쁜 밤하늘을 보면서 생각을 합니다.
저를 이 자그마한 입력기기에 붙잡혀 있게 하는 것이 무엇인가하고..
물론 대답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저 자신이 대답을 하지 못하는데 세상 그 무엇이, 그 어떤 사람이 제게 답을 해주겠습니까.
시간이 답을 해줄까요?

최근에 저 자신이 감당하기 힘든 수량의 키보드를 만들어봤습니다. 계획부터 완성까지 대부분 수작업으로 이뤄지는 시간들은
몸에 물리적인 상처를 내기도 하고, 지치고 포기하고 싶게 만들기도 했습니다.
그 안에서 저라는 나약한 인간을 붙잡아주는 것은 어떤 원론적인 것에 대한 해답을 아직 찾지 못했기에, 길 위에 서서 어느 방향으로 가야할지
낯설어하는 방랑자의 여윈 마음이기에 아직은 주저앉을 수 없다는 마음이었던 것 같습니다. 또는..
진정으로 완성도 있는 무언가를 만들 실력이 되지 않음에도 오기를 부렸던 것은 믿어주는 사람들, 기다리는 사람들에 대한 의무와 어설픈 헌신의 마음때문이기도 했을 것입니다.
하나의 키보드를 받을 그 누군가를 먼저 정하고 그 사람을 위해서 키보드를 만드는 시간은 어쩌면 수고스럽지만 기쁜 일이기도 하지요.

만든 것들 중에 반 정도는 주인을 찾아갔고, 반 정도는 어떤 소재를 사용하기위해 수량을 맞추느라 범용으로 사용할 수 없는 이런 저런 이상한 것들을 저라도 쓰려고 만들어야 했고, 아직 조립과정을 거치지 못하고 있습니다.
오늘 올려보는 이 키보드도 어떤 분을 염두에 두고 만들어졌지만 예전에 사용기를 많이 작성할 때 메인보드에서 인식치 않아 쓰지 못했던 사용기를 쓰고 보내드릴까 하는 마음에서 아직 보내지 못했습니다. 전부터 허접한 키보드 하나 보내드리고 싶었는데 계속 받기를 거부하셔서.. 이 키보드도 절대 받으려 하시지 않을 것 같기는 합니다만..


그다지 의미없는 사설을 한참 늘어놨네요.
불쑥 들어가보자면..
NCR-POS 라는 명칭이 있긴 하지만 이곳에선 NMB 넌클릭으로 더 잘 알려져 있는 키보드입니다.


<보강판은 특이하게 상단부에 홈이 파여있다. 상부 하우징을 겸하고 있는 슬라이더가 상/하 운동을 할 때 하부 하우징과 걸리는 부분이 있는데 이 부분이 지나다닐 수 있도록 하는 홈>

<하나의 스위치는 네개의 다리로 되어있고, 위/아래 두개의 다리가 하나의 접점부를 구성한다>

<3번키에 '£  파운드' 표시가 추가되어있다>


풀 사이즈의 범용 101키 키보드와 크게 다르지 않은 외관 때문에 POS용으로 만들어진 것이 맞는지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텐키쪽을 잘라내기 전에 남겨둔 사진이 없지만 펑션키가 F13~F16키까지 할당이 되어있음과 숫자라인의 3번키에 '#'과 함께 외국환 표시가 할당되어 있는 점 정도가 이 키보드가 POS용으로 나온 것임을 짐작케 합니다.
일전에는 보드에서 인식을 하지 않아서 사용기를 쓰지 못했지만 예쁘고 깔끔한 외관 덕분에 가끔 꺼내서 쳐보곤 했던 꽤 함께한 시간이 긴 키보드라고 할 수 있겠네요.
스위치는 NMB의 넌클릭 스위치가 채택되어 있으며, 아마 지금까지 보고된 것으로는 NMB의 넌클릭 스위치가 채택된 키보드는 이것밖에 없는 듯 한데 살다보면 TG3같은 물건이 등장하기도 하는 것처럼 또 어떤 키보드가 NMB의 넌클릭 스위치를 달고서 세상에 등장하기를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상상을 하면 기분이 좋아집니다.



<일반 스위치와 스테빌라이저가 있는 스위치는 모양새가 다른데 스테빌라이저를 걸 수 있는 부분이 스위치 하부에 있는 것이 차이점>


NMB 스위치의 구조나 작동기는 다른 분들의 사용기에서 이미 많이들 보셨을테니 생략해도 좋겠지요. 다만 다른점이라면 스위치 슬라이더 (상부 하우징 겸용으로 쓰이는) 가 회색이라는 것 정도가 차이를 보이는 부분입니다. 넌클릭이긴 하지만 스페이스바는 연두색의 리니어 스위치가 채택되어 있는 점도 차이점으로 들 수 있겠네요.
키캡의 인쇄는 승화인쇄이며, 스페이스바도 일반 키캡과 같은 재질로 보입니다. 폰트는 굵어서 가독성이 좋지만, 좀 많이 굵어보임과 폰트가 퍼져보인다는 (제 생각에는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만) 이유로 그다지 인기가 없었던 듯 합니다.
어쩌면 인기없음의 가장 큰 이유는 아무래도 키감이겠죠. 물론 그렇지 않은 것들도 있지만 전반적으로 NMB 스위치들이 키압이 높은 편이며, 넌클릭으로 나온 이 스위치는 달그락 거리는 느낌이 강하고, 짜그락 거리는 쇳소리가 동반됩니다. 그로인해 타이핑시의 소음도가 큰 편이며, 단기 타이핑에서 타이핑의 즐거음을 가져올 수 있지만 장기적인 타이핑을 하기에는 조금 적합치 않은 것이 아닐까 조심스레 생각해 보게 되는군요.





<위에서 부터 스테빌라이저가 있는 키캡의 내부안쪽 모습과 (사이드의 긴 바 형태가 스테빌을 누르는 구조), 스페이스바의 내부 철심이 장착된 보강판 뒷면 구조, 스페이스바의 안쪽에서 철심을 거는 구조물>


스테빌라이저는 'Crtl' 키에도 적용이 되어있고, 특히 NMB 제조의 키보드들에서 감탄을 금할 수 없는 부분은 바로 스페이스바의 스테빌라이저부분입니다. 사실 뜯어보면 어떻게 이렇게 스페이스바를 타이핑할 때 안정적이고 리드미컬하게 작동하게 하는지 감탄할 수 있는 그런 부분을 찾지는 못햇지만 체리나 알프스에서 가장 배웠으면 하는 부분이 바로 NMB의 스페이스바라고 생각합니다.
반면에 일반적인 'Shift' 나 'Enter' 등에서 스테빌은 그다지 안정적이지 못합니다. 특히 우측 'Shift' 키의 스테빌은 키캡이 가장 장축임에도 불구하고 다른 키들의 스테빌과 같은 길이의 것을 사용함으로 인해 정중앙을 누르지 않으면 좌/우가 들썩거리는 스테빌 부재不在 현상을 보이기도 합니다.





간략하게 NCR-POS 키보드의 이런 저런 곳들을 살펴봤는데요.
사실 사용기를 너무 오랜만에 써서 그런지 무슨 말을, 어떤 말을 언제 어디서 해야할지 잘 모르겠습니다. ^^;
이 키보드와 NMB스위치의 인상에 대한 기억들은 우습게도, 칼국수와 영화 <프레데터>가 항상 제일 먼저 떠오릅니다. 그것은 흔히 볼 수 없는 얇고 납작하게 만들어진 이 키보드의 케이블이 마치 칼국수 밀때 면발같다는 느낌 때문에 전 언제나 '칼국수 케이블'이라 부르며, NMB스위치는 키캡을 뽑았을 때 슬라이더의 모습이 마치 영화 <프레데터>에서 나오는 외계생명체의 얼굴모습과 입 모습등이 연상되어 NMB스위치 키보드들을 전 항상 (속으로만 하는 말이지만) '프레데터 키보드'라고 부른답니다..ㅎㅎ (어쩌면 <스타워즈>에 나오는 병사들 마스크 같기도합니다)
NMB스위치는 스위치의 구조적 간결성과 내구성 문제등으로 그다지 인기가 없지만 전 스페이스바의 탁월한 느낌과 클릭 스위치의 듬직한 클릭음 때문에 특별히 좋아하는  키보드 라인으로 꼽으며, 클릭 계열에선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스위치이기도 합니다.
아쉽게도 이 키보드가 하나 더 있었더라면 가지고 있는 NMB RT 8255C+ 의 스위치를 뽑아서 이식하여 세이버를 하나 더 만들고 싶은 마음을 가져봅니다. NMB계열의 가장 큰 단점은 '-자 Enter'가 없다는 것이고 그 단점을 보완해줄 수 있는 키보드가 바로 NCR-POS 키보드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글의 서두에 원론적인 것들에 대한 질문을 남겨두었네요.
답은 없거나 또는 자신안에 갇혀있음이겠죠. 키보드와 사람에 대한 어떠한 원론적인 가치에 대한 해답을 발견할 키워드는 분명 존재할 것이라 생각해봅니다.
그것들은 아마도 '생각 -활자 - 관계' 로 이어지는 사람과 사람의 추상적이고 정의할 수 없는 비물리적인 어떠한 영역일 듯 합니다.
겨울이 가기전에 '나'를 둘러싼 그 영역을 찾아보는 것도 좋겠지요.
세상이 눈으로 덮여 길조차 보이지 않기 전에 말이죠.

  

## 허무를 노래하다



오늘 이야기들의 분위기가 아무래도 좀 가라앉는 기분이 드네요.
진눈깨비가 얕게 흩날리는 날씨 탓도 있을 것이고, 얼마전 모임에서 듣게된 사람 사이의 이야기들이 마음속에 남아 약간의 우울함과 허무한 기분을 만들고 있나봅니다.
<<기억>> 이라는 소제목의 글에서 모임때 얻은 인상의 단초를 붙잡아 사람 사이의 관계와 그 시간들 속에서 파생되는 생각과, 그 생각이 내것이 아닌 모두의 것이 되었을 때 벌어지는 일들을 적어봤습니다.
벌어지는 일들은 분명 진실과 왜곡이라는 양면을 지니고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어느 것이 진실인지는 이해 당사자를 제외하면 세상 그 누구도 모릅니다. 다만 '진실일 것이다' 라는 정도의 어떤 것만이 남아서 기억이 되고 역사가 되는 것은 아닐지 싶네요.
내가 오해받는다고 진실이 사라지진 않지만 아무도 그 마음을 모를 때 진심으로 슬프고 허무해집니다. 변명으로 들릴까 초조하여 입을 다물면 화병이 생기고, 입을 열면 사람과 사람 사이는 언제나 그렇듯 진흙탕이 되고 맙니다.
입을 열어야할지 닫고 살아야할지... 사람의 삶이 얼마나 많은 선택과 버림속에서 이루어지는지를 생각해본다면 삶은 언제나 딜레마의 연속이고, 그 깨달음은 허무로 귀착되는 듯 합니다.

문득 우리가 속해있는 이 곳에서 진정한 승자는 누구일까 생각해봅니다.
개조의 장인으로 명성을 떨치는 사람, 좋은 일을 많이하는 사람, 명기라 불리우는 키보드를 많이 소장하는 사람, 누구보다 빨리 자신의 원하는 것을 발견하고 정착하는 사람..
이 안에서 진정한 승자를 저는 이 글귀에서 발견한 듯 합니다.
<<대학大學>>  일장에 있는 말로 '정한 뒤에 능히 고요하고, 고요한 뒤에 능히 편안하고, 편안한 뒤에 능히 생각하고, 생각한 뒤에 능히 얻는다.' 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곳에서의 지난 시간을 돌이켜 생각해보면 전 언제나 패자였던 것 같습니다. 한번도 이거다라고 정하지 못했으며, 그렇기에 고요하지도 편안하지도 않았고, 생각하여 얻어 본적도 없는 듯 합니다.

저는 시도 때도 없이 허무를 노래하지만 진정한 승자라면 아마도 '허무함' 그 자체를 부정하거나 알지도 못할 거 같습니다.
진정한 승자라면 진실도, 왜곡도 그저 한낮 미풍에 쓸려버리는 먼지와도 같은 것임을 알 것이기에 말입니다.

2007년 12월 14일 금요일 오후에...



## 감사함을 전하며..



이제 키보드와 작별하신 건지.. 뵐 수가 없네요. 오래전 이 키보드를 만나게 해주셔서 고마웠었는데 다시 돌아오셨음 좋겠네요. 멋진 키보드와의 만남이 늘 즐겁고, 그 즐거움에 대한 기억의 페이지 한장을 간직하게 해주신 우기님께 감사함을 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