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rry 1800 POS

## 간략제원

키보드 이름 :  Cherry 1800 pos
사이즈 : 가로 40.3Cm X 세로 17.9Cm X 높이 5.8Cm  (높이 조절 다리를 폈을 때/ 펴지 않았을 때 4.5Cm)
스위치 : 체리 백색 넌클릭
무게 : 약 1,150g (알미늄 보강판 포함)
연결방식 : AT
키탑 인쇄방식 : 이색사출성형
제조 : Cherry
생산지 : Germany
Article Number : G80-1800HEU
FCC ID : GDD5YOG80-1800


## Happy


많은 것들은 그릇 안에 있다. 마음이 가난하면 한 숟갈의 밥을 떠도 바닥난 밑바닥을 보게 되듯 허기지고 공허해지겠지. 마음이 풍요로운 이는 한 숟갈의 밥을 뜨면 세 숟갈의 밥이 더 채워지니 한 숟갈은 아름다움에 대한 진정한 찬사요, 한 숟갈은 공유하는 시간에 대한 즐거움이요, 한 숟갈은 추억이라는 과거에 대한 즐거운 회상 이리라. 친구, 마음이 풍요로운 자여. 그대의 그릇이 언제나 넘쳐남을 바라보며 나 또한 행복함을 부인치 않는다. 흩어져가는 기억과 상념들을 부여잡기 위해 악몽을 꾸고 구차스런 변명을 일삼고 뒤돌아서서 욕지거리를 내뱉던 그 어느 시간에라도 난 그걸로 족했다. 친구라 부르는 이, 그대가 행복해 보이기에.
바람은 차갑고 마음은 얼어붙었다. 겨울은 멀리에 있는 듯 가까이에 있고 바람코지에는 공허함만이 휘돌아 모이고 그리고 종내 떠나지를 못한다. 채울 것이 없는 것들이 모여 일진광풍의 허무를 선사하니 우린 비틀거리고 위태로워 보인다. 쓰러지지 않기 위해 잡아야 하는 것은 바로 행복이라는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다고 생각되던 두 글자 인가. 친구, 그대가 그 이상향의 이름을 붙잡고 있다고 생각된다면 영원히 놓지 않기를 그대들의 행복을 위해 빈 바람 밭에 내일의 씨앗을 뿌리는 형벌이 부여된다 하더라도 언제라도 달갑게 받아들일 수 있는 그대의 친구인 내가 영원토록 축수하리니, 친구여 행복하게나.  -97년 [생각산실 빨간얼굴] 글중에서-


## Conspiracy Theory

-Situation No.1-




귄터 부장 - 야심만만한 사나이. 실무능력은 터무니없이 부족하다. 그러나 권위적이며 어떤 발생한 일에 대해 유동적으로 잘 대처하는 편
프리들리히 대리 - 아래에서 치받히고, 위에서 내리눌림을 당하는 전형적인 우유부단형 인간
디트리히 금형설계 사원 -  실력은 있으나, 좀 덤벙대고 낙천적인 편


어느 늦은 봄날이었을까.. 아니면 이른 가을이었을지도 모르지..
오늘도 출근하여 나른한 오후를 즐기고 있던 귄터 부장. 어제 악커만 이사에게 건네받은 사장 결재받은 체리 키보드 금형설계도면을 생산부서로 내려보내기 위해 마시던 커피를 내려놓고 주섬주섬 옷을 챙겨있고 있는데..
이때 프리들리히 대리 뛰어들어온다.

"크크크.. 큰일 났습니다. 부부부..부장님.."
"어허 프리들리히 대리 자넨 노크도 할 줄 모르나? 그리고 말좀 더듬지 말라고 내가 몇 번을 얘기했나.. 쯪쯪.. 저런 것도 대리라고 짜르지도 못하고 있으니.."
"죄죄죄.. 죄송합니다.. 헌데..."
"헌데 뭐? 나 지금 생산부 부장 만나러 가야하니까 빨리 용건만 얘기하게"
"가가가.. 가시면 아아아.. 안됩니다."
"왜? 체리 키보드 보강판 장착에 따른 하우징 금형설계 결재 받았으니 어서 생산부 넘겨줘서 새로운 금형 만들라고 해야하는데"
"그... 그게 말이죠.. 그 설계도면에 이상이 있습니다"
"뭐라고? 뭐가 이상이 있는데?"
연신 식은땀을 흘리던 프리들리히 대리는 침을 한번 꿀꺽 삼킨다.
"그게 디트리히.. 이 망할놈이 글쎄 도면설계를 하라고 했더니.. 하긴 한 모양인데 결재 올릴 때 전에 멤브레인 하우징 도면을 출력해서 결재를 올렸다지 뭡니까.."
"뭐야!! 자네 지금 그걸 말이라고 하고 있나? 악커만 이사에게 나 모가지 당하는 꼴 보고 싶어? 주택융자 받은 것도 아직 20년은 상환해야 하고 내 금쪽같은 자식들 학교도 마쳐야하는데, 내가 이 두 인간 때문에 거리로 나앉아야 한단 말이야? 엉? 그리고 그런 도면이 올라왔으면 자네가 결재 올릴 때 검토해서 다시 제대로 된 도면으로 올렸어야 할 것 아닌가. 자넨 비싼 월급받아가며 뭐하는 인간인가? 그저 올라오는 서류에 싸인만 해서 넘겨주만 끝인가?"
그러는 당신은 뭐하는 인간이요? 나와서 직원들 닥달만 하는 식충이 같은 존재면서... 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나왔지만 프리들리히 대리는 그저 죽을죄를 지었다는 표정뿐이다.
"아.. 어떡하지.. 다시 결재를 올리면 악커만이 내 모가지를 자르려고 벼르고 있는판인데 당장 해고통지서를 받아들게 될거고.. 아! 그렇지. 이봐 프르들리히 내가 자주 가는 8번가의 포인트 하우스 있지? 거기 전화해서 내가 지금 간다고 그래"


장소를 이동하여 여기는 8번가에 있는 박수무당 잉고 마이어가 운영하는 포인트 하우스 내부

"오랜만이요. 귄터 부장. 그래 오늘은 무슨 일로 오셨소?"
축 늘어진 볼살이 영락없는 불독을 연상케하는 마이어 박수는 귄터 부장에게 사정설명을 듣고서 언제나처럼 복채부터 챙겨든다.
"그럼 내가 오랜 고객인 당신을 위해 이 난관을 해결해나갈 비책을 점쳐주지"
현란한 손놀림으로 타로카드를 휘날리던 마이어는 한참을 카드를 가지고 온갖 퍼포먼스를 연출하더니 비지땀을 흘리며 한장의 카드를 꺼내든다.
"그래 마이어. 무슨 점괘가..?"
"허어. 보채지 마시오. 그래서 무슨 괘가 보이겠소"
카드 한장을 가지고 위, 아래. 좌, 우로 뒤집어 보던 마이어 박수는 한참을 머리를 굴리더니 이렇게 얘기한다.
"또각이라는 두 글자가 보이오"
"잉? 왠 또각? 난 해결책을 얻을 점괘를 보고 싶은거지.. 그게 대체 뭐란 말이요. 마이어 당신의 신기도 이제 다 사라진 모양이군요"
"흐흐흐 내가 누차 얘기하지만 보채지 마시오. 금형설계는 그대로 진행을 하시구려. 물론 재결재를 받아야 하겠지만 그건 당신의 잔머리로 해결을 하시고"
"아니.. 그런 무책임한 말이 어딨소. 내게 받아간 복채가 그동안 얼마인데.. 그리고, 그렇게 그냥 키보드를 출시했다가 나중에 고객들의 원성을 뭘로 해결하라고"
"당장은 위험부담이 있겠지만 자재를 하나 줄이면 가격이 줄어들게 아니오. 고객들이야 가격이 저렴해지면 그냥 마냥 좋아하는 사람들이니 원성은 금방 사그라들것이고.. 무엇보다 십몇년 후면 동양의 한 장인이 분연히 떨쳐일어나 당신네 키보드에 보강판을 장착해줄 날이 올 것이오. 귄터 부장 당신이 그때까지 살지 아직 복채를 받지 않아서 모르겠지만 그때가 되면 사람들은 당신네 키보드에 보강판이 없는것을 다행으로 여길지도 모를것이오. 가지고 노는 재미가 반감될 것이니까..흐흐흐"

사무실에서 귄터 부장은 재결재를 위한 기안문을 작성중이다.
슬쩍 보여지는 악커만 이사에게 부연설명하는 메모의 내용은 이렇다.
<악커만 이사님. 기존 기계식 키보드 금형설계 결재안보다 새로이 훌륭한 아이디어가 있어서 새로운 기안을 추진합니다. 보강판을 장착하기로 한 기존의 계획에서 보강판을 제거함으로써 키보드의 무게가 가벼워져 휴대성이 높아짐으로 인해 고객들의 찬사가 이어질 것이며, 당연히 제작단가가 낮아져 이 또한 우리회사의 위상이 더 높아질 것으로 판단됩니다.
또한 기존의 금형을 그대로 사용함으로써 금형설계에 들어가는 막대한 비용을 사용하지 않아도 됨으로 이사님에 대한 사장님의 업무 신뢰도가 더욱 높아질 것으로 생각되기에 새로운 기안문을 이렇게 올립니다. 이 생각은 전적으로 저 귄터의 머리에서 나온 것으로 이사님의 회사내 입지를 더욱 굳건히 하는데 도움이 되고자 하는 저의 작은 바램이오니 재결재를 승인해주시기 바랍니다.>

어쨌거나 기안문에 첨부되어 있는 금형의 설계도면은 지난 결재나 이번 결재나 같은 것이다. 재미를 보는 것은 잔머리 굴려 이사의 점수를 따는 귄터와, 제작비를 줄여 사장의 신임과 회사내 입지를 굳거히 하는 악커만, 두둑한 복채를 챙기는 마이어.
현재의 우리는 덕분에 보강판을 돈주고 사게 됐다는 이 음모이론은 당연히 전혀 현실성이 없다.


-Situation No.2-



며칠전의 위기일발 사태를 잔머리로 해결한 우리의 귄터 부장께서는 오늘도 오후의 망중한을 즐기고계신다.
그러다 문득.. 악커만 이사에게 확실히 신임을 얻을 수 있는 아이디어가 뭐 없을까... 하는 생각이 들자 갑자기 부산스러워진다.
옷을 챙겨입고 사무실을 나서는 부장에게 어디 가냐고 묻는 비서 로즈마리양에게 귄터부장은 사우나에 다녀오겠다고 둘러대고는 서둘러 어딘가로 향한다.
도착한 곳은 아니나 다를까.. 8번가의 포인트 하우스다.

"귄터 부장.. 오늘은 예약도 없이 어쩐일이오?"
"음.. 그게.. 주택부금도 계속 내야하고 애들 학교도 마쳐야 하는데 말이죠. 요즘 감원이다 뭐다 말이 많아서.. 뭔가 확실히 해둘 비책같은 것이 있지 않을까하고..허허. 뭐 좋은 비책이 있을까요?"
하지만 박수무당 잉고 마이어는 그저 침묵이다
"아니.. 마이어 왜 아무말이 없소?"
그러자 아무말 없이 손을 내미는 마이어. 복채를 달라는 소리다. 쓴웃음을 지으며 귄터는 지갑을 열고 두둑한 복채를 건넨다. 하여 예의 그 요란한 타로카드 퍼포먼스를 한바탕 끝내고 땀을 연신 훔치며 마이어가 꺼낸 말은...
"뀨뀨요"
"헉.. 아니 전에는 또각이라더니, 이번에는 뀨뀨라고 하고 당신 지금 나하고 장난치는 거요?"
"흐흐.. 들어보시오. 귄터 부장. 전에 가지고 왔던 회사 서류중에 당신이 맏고 있는 키보드 사업부에서 멤브레인 키보드의 키캡을 변경한다고 본 거 같은데?"
"그렇지요. 우리 회사를 제외하면 거의 없는데.. 다른 회사들은 기계식 키보드에 들어가는 키캡과 저가의 멤브레인 키보드의 키캡이 대부분 다르거든요. 러버돔을 쓰면서 그에 맞는 키캡을 따로 만들지요. 우리 회사도 키캡을 그래서 저렴한 형태로 변경하려고하고 있소"
"바로 그거요. 이번 점괘에 나온 것은 바로 키캡을 그대로 유지하라는 것이오. 그것이 당신의 주택부금과 아이들 교육을 책임질 이번 복채의 댓가요"
"아니.. 마이어.. 좀 확실한 대답을 해주던가... 특히나 이번 점괘의 방안은 제작비를 계속 상승시키는 것이고 가뜩이나 어려운 형편에 확실한 해고의 지름길이 아닌가요?"
"언제나 위기를 반전시키는 것은 사람의 몫이요. 점괘나 운이라는 것은 심리적인 것일뿐. 영업에 지장있는 발언이지만 워낙 복채를 많이 주는 당신이니까 내 특별히 해주는 얘기요..흐흐. 먼 훗날 한 장인이 있어 이번에도 또 분연히 떨쳐 일어나 당신네가 고가정책으로 만들어낸 키캡을 소비해줄 날이 올 것이오. 그때 당신네 키보드의 위상은 더 높아질 것이오. 내가 해줄 수 있는 얘긴 여기까지"

사무실에 돌아온 귄터부장은 어두컴컴한 사무실에 앉아 머리를 감싸고 자신의 뇌를 석유곤로CPU만큼의 빠른 속도로 회전시키고 있다.  바꿔말하면 잔머리 굴리는 중이다.
한참을 석유심지를 태우던 귄터의 입가에서 회심의 미소가 피어오른다.
'귀가얇은 악커만을 이용하자. 사장에게 점수딸 수 있는 기회라고 하면 지가 안하고 버텨..흐흐. 만약 잘못되어 사장이 열받아도 악커만이 브리핑을 할테니 악영향은 망할 이사가 고스란히 떠안겠지..크흐흐'

며칠 후 부장이상 임원진 회의장. 악커만 이사가 연단에 나가서 브리핑 중이다.

"그러므로 기존의 이색사출 성형의 키캡을 멤브레인 키보드에 그래도 적용해야 한다는 제 주장의 논지는 이렇습니다.
이전에 기계식 키보드의 보강판을 빼버림으로 제작비용의 절감을 가져왔던바 보이지 않는 원성이 조금은 있는편인데, 여기에 키캡의 변화와 제작품질의 저품질 제품으로의 채택을 하게되면 멤브레인 내부구조를 변경해야하며 이는 막대한 제작비 상승으로 이어질 것입니다. 물론 이는 일시적 단가상승이긴 하지만 이렇게 계속해서 품질저하를 통한 제작비 낮추기를 진행할경우 명품 키보드로 이미지메이킹된 저희 체리 키보드의 명성을 빠르게 추락시키는 지름길이 될 것이며, 우리의 체리 키보드는 1~2년 판매하고 말 키보드가 아닌 것은 여러분도 잘 아실겁니다. 조금의 비용낮추기를 통해 단기간 이익이 있을지 모르지만 빠르게 빠져나가는 고객층으로 인해 저가의 쓸모없는 키보드를 생산하는 회사로 고객들의 뇌리에 각인되고 말것입니다.
한번 실추된 이미지를 원상 복구하는데는 수십년의 세월이 걸릴지 모릅니다.
하여 멤브레인의 키캡을 저품질 제품으로 바꾸자는 기존의 회사내 의견을 기계식 키보드에 들어가는 것과 같은 형태의 키캡을 고수하자는 저의 의견을 받아들여주시기 바랍니다. 이는 우리 회사의 키보드사업부의 장기간 롱런과 명품브랜드의 이미지, 그 어느 하나를 놓치지 않는 두마리 토끼잡기를 성공하는 것과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먼 훗날 키캡조차도 고품질의 제품으로 남아있는 저희 회사 키보드를 사랑하는 고객층이 생길지 그 누가 알겠습니까"

전혀 감동스럽지 않은 브리핑에 박수를 치는 사장이하 임원진들.. 그중에서도 가장 열심히 박수를 치고 있는 것은 귄터부장이다.
그는 알았을까.. 그가 아깝디 아까운 복채를 지불하고 얻은 점괘로 인해 악커만 이사의 신임을 확실히 얻어내고 이사는 사장에게 칭찬받는 브리핑을 할 수 있었던 '키캡 동일화'라는 잔머리하나가 오늘날 한 장인으로 인해 체리 멤브레인 키보드의 품귀현상을 만들어낸 것과, 그로인해 이땅의 수많은 키보드 사용자의 지갑을 바닥내 버린것을...

이 이론은 여전히 전혀 현실성 없다.  진짜라고 믿는 사람은 없겠지. - End -



## My First Cherry



아직까지도 접해보고픈 키보드에 대한 갈증은 여전한 듯 합니다. 하지만 가진걸 즐기기 위해서라도 이제 더 이상의 키보드 영입은 멈춰야죠.
그러나.. 당장이라도 구입할 수 있는 (총알만 된다면) 하나의 키보드와, 등장할지 안할지 아직 미지수인 하나의 키보드, 그리고 손에 들어오기 거의 불가능해 보이는 하나의 키보드.
이 석대의 키보드에 대한 관심은 장터를 여전히 기웃거리게 만드는 가장 큰 원인입니다.

오늘의 사용기에 등장하는 키보드는 다들 잘 아시는 pos용으로 제작된 Cherry 1800 HEU. 흔히들 말하는 1800 pos입니다.
아침부터 일어나 쓸데없는 긴 얘기를 적다 보니 진이 빠져버려서 무슨 말을 해야하나... 커피한잔을 마시면서 모로 누워 눈을 감고 잠시 생각을 해봅니다.
얼마되지 않았기에 이곳에서의 생활에 '추억'이라는 단어를 대입시키는 것이 어리석은 일인줄 알지만 이 키보드에 대한 여러가지 지난 시간들이 떠오르는것을 막을 수는 없군요.



단단함만이 최우선인줄 알았던 기존의 관념에 연질의 하우징이 주는 부드러움의 황홀한 매력. 체리 키보드에 대한 기존의 선입견을 말끔히 씻어버린 이 즐거운 느낌은 1800 pos를 얘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인 것 같습니다. 진정 이것은 '부드러움은 강함을 이긴다'라는 말을 몸으로, 머리로 채득하게 되는 과정에 다름아닌 시간이었던 거 같습니다.
저의 첫번째 체리 키보드인 1800 pos에 대한 기억의 가장 첫 번째이자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부드러운 하우징이 주는 매력입니다.
처음 키보드를 받아들고 타이핑을 했을 때 키보드의 몸체에 얹어진 손이 반응하는 느낌이 어찌나 좋던지.. 강한것만이 능사가 아니구나 하는 생각을 했었죠.
아쉽게도 이후에 만나게 되는 체리제조의 키보드에서 이런 즐거운 기분을 느껴보지 못하게 된것은 아쉽기만 합니다. 어찌보면 크게 차이가 나지 않는 연질의 하우징일텐데도 묘하게 1800 pos에서 더욱 그런 느낌이 드는 것은 '가장 처음 만나는 것의 중요성' 때문이 아닐까도 생각해봅니다.
이후에 보강판을 구입하게 되고, 인두기를 장만한 후 두번째의 스위치 적출에서 여전히 손가락도 다치고, 인두에 데이기도 하고..^^; 하우징을 깍는 과정에서의 힘겨움등.. 손재주가 부족한 저에게 이 지난한 과정에 대한 기억들이 가장 확연하게 남아있을 수 밖에 없는 이유가 아닐지 싶습니다.
Kris님이 주신 메탈스티커를 붙였다가 요령부족으로 제대로 붙이지 못하고 떼버리기도 하고, 극성이 있다는 LED 를 바꿔끼는 과정에서의 손떨림도 기억에 남습니다..ㅎㅎ
스위치를 모두 뽑아내고 부러질 것만 같은 기판에 경악을 금치 못하기도 했고, 스페이스바의 철컹거림을 잡아야한다는 강박관념에 테이프 감기만 시도하다가 지쳐서 포기해버리기도하고..
기억은 점점 추억이 되어갑니다만 키보드에 대한 즐거운 느낌은 여전히 '...ing' 입니다.

현재 사용기를 쓰기 위해 1800 pos를 메인으로 계속 사용해보면서 좋아하던 백축 넌클릭의 느낌도 좋지만, 사람들이 매력을 많이 느낀다는 백축에 가벼운 키압의 스프링을 적용해보면 어떨까 하는 궁금증이 생겼습니다. 사실 이전에 백축에 청축 스프링 적용을 해보지 않은 것은 아니었지만 부탁을 받고했던 것이고, 워낙 추운 방에서 없는 시간에 빨리해서 넘겨드리고 싶어서 아무 감흥이 없었던 거 같습니다. 모임에서 쳐보는 키감이라는 것은 이것저것 섞여서 제대로 된 느낌을 간직하고 돌아올 수 없기도 하구요.
하여, 다시한번 스위치를 전부 추출해내고 슬라이더와 접점부를 윤활하고, 스프링은 또각또각님의 2차 공제품 스프링을 사용했습니다. 이전의 안좋은 경험상 슬라이더가 안 올라오면 어쩌나 걱정을 많이 했는데 슬라이더 모두 이상없이 잘 올라와주었구요. 스페이스바에는 또각님의 고무링을 장착했으며, digipen님의 스테빌 적용키캡들의 키감향상팁을 처음으로 적용하여 보았습니다.
결과는 순정상태에서 매우 낮은 키압을 보여주고 있는 흑축 키보드 한대를 제외하고 지금까지 체리 스위치 키감면에서 가장 만족스러운 느낌을 받았습니다.
흔히 저는 갈축을 정의할 때 영화의 제목이기도 한데요. <욕망의 모호한 대상>이라고 정의합니다. 스위치 특성상 주는 느낌의 다양함과 각기 다름에서 오는 모호함 때문에 갈축을 정의할 때 많은 이들이 욕망하는 스위치지만 그 특성을 제대로 정의하기에는 모호하다라고 생각하기에 그렇게 부릅니다.
하지만 백축에 낮은 키압의 스프링은 이제 '욕망의 확연한 대상'이 되어버렸습니다.
절도있는 구분감과, 원래 강한 키압에 반응하기 위해 만들어진 백축의 슬라이더에 낮은 스프링을 적용하는데서 오는 한템포 느린 반응속도지만 그 정돈된 느낌이 주는 차분함. 그리고 서걱임 없이 반응하는 상/하 운동의 맑은느낌... 알프스 오렌지 이후에 이렇게 만족스런 넌클릭을 만나보는 것은 진정 처음인 거 같습니다.



편집키쪽의 키캡들을 11800의 레이저 키캡으로 색칠해서 꽂아봤는데.. 원했던 색상은 밝은 오렌지색이었지만 카인테리어 가게에서 스프레이 살 때 원하는 색이 없어서 째즈 오렌지 라는 색을 골라왔습니다. 색이 좀 강렬해서 튀긴 하지만 나름 예뻐보일 때도 있네요..ㅎㅎ
칠이 마른후 손가락으로 열심히 문질러보고 손톱으로 긁어보아도 색이 벗겨지지는 않네요. 문자열이 아니어서 자주 누르지 않기에 이 상태로 써도 특별히 벗겨질 염려는 하지 않아도 좋을 듯 합니다. 다만 이색사출의 키캡과 키감이 차이를 보이구요. 번들거림에 취약한 문제가 있지만 역시 이색사출 키캡의 키감은 확실히 좋구나.. 그런 생각을 다시금 해봅니다.
1800 pos.. 비록 편집키등의 키캡이 달라서 3000등의 키캡을 적용하고자 해도 요철이 심한 키캡의 높낮이로 인해 적용하기도 난감하고.. 그렇기에 외면받고 찬밥신세의 1800이지만 제게는 가장 사랑스러운 체리 키보드임에 분명합니다.


## Love Letter

위의 쓸데없는 얘기들은 말 그대로 쓸데없는 이야기일 뿐입니다..^^
다만 개조의 재미가 만만치 않은 체리 키보드는 왜 이렇게 만들어졌을까.. 그런 생각을 좀 했었습니다. 스위치는 보강판 장착을 위해 설계됐음에도 보강판은 왜 넣지 않았을까.. 키캡은 멤브레인과 기계식을 어떻게 동일한 키캡을 적용하게 됐을까.. 뭐 그런 쓸데없는 생각을요..ㅎㅎ
과정이야 어떻게 됐든 결과는 현재를 반영하고 있고, 그 반영된 결과로 인해 멤브레인조차도 기계식보다 고가의 몸값을 자랑하고 있습니다. 체리의 만들어진 것 하나로 울궈먹기 (컨트롤러등을 멤브와 동일한 형태와 모양새로, 하우징도 마찬가지고) 정책으로 인한 상술의 피해자(?)가 되버린 듯도 하고, 키캡과 하우징 컨트롤러등을 동일한 것으로 씀으로 인해서 체리 키보드의 유저가 더 많이 늘어날 수 있었던 원인이기에 고맙기도 하고.. 여러감정들이 복합적으로 교차합니다.

얼마전에 한 회원님의 사용기로 인해 잠시 논란이 있었던 적이 있었죠. 사용기에 대한 문제점과 키감에 대한 주관적/객관적 얘기도 오고가고... 나름 유익한 공간이 됐었다고 생각합니다.
특히나 그중에 보석처럼 빛나는 리플이 있었습니다.
한퓨터님의 사용기는 그 사용기를 쓰는 회원의 사랑이야기와도 같은 것이라는 리플글에 감동을 했었습니다.
누가 돈 주고 사용기 쓰라고 한다한들 그게 쉽게 써지겠습니까.. 그것은 한퓨터님의 말씀처럼 진정 자신이 가지고 있는 키보드에 대한 애정과 사랑이 있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그렇기에 사용기는 회원분들에게보내는 사용기 작성 주체의 연애편지라고 생각해도 좋지 않을까요...
그 사랑의 연서戀書를 받아서 읽는 우리들은 얼마나 행복한 사람들입니까..^^
서두에 아주 예전에 썼던 글을 옮겨적었습니다만 사용기를 쓰는 일 또한 내일의 사용자를 위한 씨앗을 뿌리는 형벌에 다름아니라고 생각해본다면, 그 사용기를 쓰는 형벌을 받아들이는 이는 무척 행복할 것임이 분명합니다. 그 행복 바이러스가 내포된 러브레터를 받는 일.. 그것이 어찌 행복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오늘 저의 연애편지가 여러분께 제대로 수신이 되어 모두 모두 행복해졌으면 하는 작은 바램으로 오늘 사용기를 마칠까합니다.
부족한 사용기를 읽어주신 모든 분께 감사함을 전합니다.
담에 또 뵙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