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델 M의 매력

어찌 보면, 화려한 빈티지 키보드의 세계에서 모델 M은 최고라고 내세울만한 것이 별로 없는 키보드입니다.   만듦새와 단단함에 있어서는 이전 모델인 IBM의 정전용량방식의 키보드 5170, 5150, EMR2(1984-1987)에 밀리고, 다양하고 섬세한 키감을 생각한다면, Alps 스위치를 사용한 키보드,  클릭 음을 고려하면, 체리나 NMB, 그리고 디자인은 Apple의 키보드를 먼저 떠올리게 됩니다.  굳이 다른 키보드와 비교해서 모델 M이 자랑할 수 있는 부분은 기판 자체를 구부려서 자연스런 곡면 위에 스위치를 배열하는 스텝 스컬쳐 1 방식을 사용한 점과 텐키리스를 선호하는 마니아들에게 높은 평가를 받는 우주지킴이, space saver 모델의 레이아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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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90131

최고라고 일컬을 수는 없지만, 남성적이며 우직한 디자인과 오랜 세월을 당당히 버텨내는 탄탄한 내구성, 투캉거리며 존재감을 확실히 알려주는 버클링 스위치 고유의 매력은 다른 빈티지 키보드에서는 느낄 수 없는 모델 M의 자랑이며, 아마도 짧은 키보드의 역사 속에서 가장 오랜 시간(1986-현재)동안, 가장 많은 사람들에게 애용되고 있는 키보드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한동안 IBM의 정전용량방식의 키보드에 빠져있을 때, 모델 M 1390120과 스페이스 세이버는 단지 키감 비교용으로 소장하고 있었습니다.  대다수의 사용자들이 5170, 5150같은 키보드와 모델 M을 즉석에서 비교 타이핑하면, 모델 M을 선택하는 경우는 드물 것입니다.  현대적인 레이아웃을 제외하고,  5150, 5170의 다시는 접하기 힘든 엄청난 만듦새와 완성도, 청명한 클릭 음은 모델 M을 압도합니다.  하지만, 수 십 종의 키보드를 사용해 보면서 느낀 점은 완성도가 뛰어난 제품이 항상 사용하기 편안한 키보드는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오래 사용하다 보면, 모델 M은 5150, 5170의 금속성 클릭 음과 단단한 탄소판에서 손끝에 전달되는 부담을 주지 않고, 상대적으로 부드럽게 통통거리는 느낌으로 다가옵니다.  

화려하고 자극적이지는 않지만, 편안하고 넉넉하게 오랜 시간 즐길 수 있는...    
모델 M은 애플의 확장1 키보드처럼, 이것저것 경험하고 다시 만나도 언제나 감동을 느끼게 해주는, 큰형님처럼 넉넉한 키보드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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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90120, 오리지날 플라스틱 덮게

초기 모델 M에 대한 몇 가지 의문점

최근 몇 달 전에 방출했던 1390120과 스페이스 세이버 신동 품을 다시 구하고, 함께 키보드를 즐기는 안 선배님에게 1390131을 구해 키감 비교를 하던 중에 성시훈님에게 1390120과 1390131의 비교에 관한 쪽지를 받게 되었습니다.  성시훈님은 두 키보드의 차이가 단지 LED 파트의 유무뿐 아니라, 키감에도 차이를 보이는 것 같다는 의견을 주셨습니다.  여러 차례 서로 쪽지를 주고받고 확인한 점은 131이 120보다 통 울림도 적고, 키감이 부드러우며, 바닥 치는 맛이 조금 더 단단한 것 같다는 사실이었습니다.  하지만, 120의 경우, 신동품 수준이었고, 131은 오랜 사용으로 키캡의 표면이 반질반질한 상태였기 때문에 이러한 차이의 원인이 내부 구조의 문제인지, 아니면 신구품의 차이인지는 확인할 수 없었습니다.  

1. 메탈로고 1390131과 1390120의 차이

IBM 모델 M의 생산 연대는 구체적으로는 파트 넘버로 구별할 수 있으며, 크게는 로고의 종류로 대략적인 시기 구별을 할 수 있습니다.  

IBM 5150, 5170: 1984-1986
IBM EMR2: 1987
IBM Model M, 메탈로고: 1986-1988
IBM Model M, 화이트 라벨: 1987-1992
IBM Model M, 블루 라벨: 1989-1997
IBM Model M, Space Saver: 1987-1998

모델 M 1390131과 1390120은 키보드의 오른편 상단에 5150이나 5170과 같은 메탈로고로 구별할 수 있으며, 120은 131과는 달리, LED 파트가 없습니다.  두 키보드는 모델 M 중에서 가장 오래된 모델로, 후기 모델 M에 비하여 키압이 부드럽고, 통 울림도 적으며, 상대적으로 구하기 어려워서 가장 높은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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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90131,1390120 LED 파트 유무

키감 비교를 위해 사용한 키보드는 다음 3종입니다.

IBM Model M 1390131, 1986,11,17산 (안 선배님으로부터)
IBM Model M 1390120, 1986,10,30산
IBM Model M 1390131, 1988,07,19산 (성 시훈님으로부터)

위의 3종의 키보드는 모두 A급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양호한 상태였지만, 키캡 표면의 마모 상태는 상당한 차이가 있었습니다.  제가 가지고 있는 1390120은 전용 플라스틱 덮게까지 온전한 신동품 상태로 사용 흔적을 발견하기 힘들었고, 다음은 성시훈님의 131이 표면 상태가 양호했으며, 안 선배님의 131은 오랜 사용으로 키캡 표면이 반질반질한 상태였습니다.  세 키보드의 키 압과 통 울림은 키 캡의 마모 상태에 따라, 구별할 수 있을 정도로 차이를 보였습니다.  당연히 사용 흔적이 많은 안 선배님의 131 가장 부드럽고, 통 울림이 적었으며,  신동품 120이 키압이 높고 통 울림도 큰 편이었습니다.  

120과 131의 정확한 차이를 확인하기 위해서는 기판을 분해해야 하지만, 재조립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현재로서는 비교사용으로 추측할 수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성시훈님은 신구품의 키 압및 통 울림 차이 이외에 멤브레인 시트 혹은 구조적 차이의 가능성에 대한 견해를 주셨습니다.  키보드를 버릴 작정을 하고 기판을 분해해보면, 정확한 차이를 확인 할 수 있겠지만, 같은 131의 사용 흔적에 따른 키감 차이로 미루어 짐작해보면, 사용한 상태에 따라 약간의 키감및 통 울림의 차이가 존재한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세 키보드의 스프링을 모두 추출하여 비교해 본 결과 같은 종류를 사용한 것으로 보이며, 상태에 따라 약간의 탄성 차이를 보여주었습니다.  
120의 경우, 이번이 두 번째 구입한 키보드인데, 131에 비하여 모두 상태가 월등이 좋았습니다.  추측컨대, 실용성을 중시하는 미국인들에게 LED 파트의 부재로 상대적으로 홀대 받았던 것 같습니다.   미국 이베이에서 120은 종종 접할 수 있으나, 131은 상당히 구하기 어렵고, 가격도 120 보다 비싸게 낙찰되는 것 같습니다.  

결론적으로, 확실하진 않지만, 120과 131은 LED 파트의 유무 이외에는 차이점이 없어 보이며, 모델 M도 사용량에 따라 상당한 키감 차이가 존재할 수 있다는 점을 확인했습니다.

2. 메탈로고 모델 M과 스페이스 세이버 1391472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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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이스 세이버 1391472은 1991, 4, 17일 산으로 이중 키캡을 사용한 모델입니다.  아시다시피, 스페이스 세이버의 경우도 상당히 다양한 파트 넘버로 여러 종류가 출시되었으며, 91년 1391472는 최초의 파트 넘버로 알고 있습니다.  

메탈로고 키보드와 스페이스 세이버의 스프링은 구별할 수 있을 정도로 차이가 있습니다.  스페이스 세이버의 스프링이 구경도 약간 크고 강도도 강하게 느껴집니다.  따라서, 키압은 스페이스 세이버가 조금 더 무거운 편입니다.  그렇지만, 스페이스 세이버에서는 통 울림을 거의 느낄 수 없습니다.  클릭음의 확연한 차이는 상당히 다른 느낌을 갖게 합니다.  이는 마치 같은 스위치를 사용했지만, 다른 키감을 보여주는 애플의 확장1과 스탠다드 키보드의 차이와 흡사한 것 같습니다.  확장1의 부드러운 통 울림이 주는 것처럼, 131과 120이 조금더 편안한 느낌이고, 스페이스 세이버는 단아하고 깔끔한 키감을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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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이스 세이버 키캡

3. 5150과 모델 M

5150은 레이아웃의 결정적인 한계는 있지만, 컴팩트한 사이즈와 부드러운 키압, 단단한 만듦새로 개인적으로 5170보다 더 높이 평가하는 키보드입니다.  메탈로고 모델 M과 스페이스 세이버의 스프링이 구별할 수 있을 정도로 강도가 강한 편입니다.  두 종의 키보드는 스프링의 강도 보다는 탄소판의 유무에 따른 바닥을 치는 느낌이 확연이 구별됩니다.  스위치를 누르면, 5150은 스프링의 굴절과 함께 철판을 치는 시원한 느낌이 손끝에 전달됩니다.  모델 M은 바닥을 치는 시원한 맛도 없고, 클릭음도 5150 만큼 청명하지 않지만, 통통거리는 소리가 상대적으로 작고 덜 거슬리며, 손끝에 느껴지는 피로감도 덜 한 편입니다.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모델 M이 오랜 사용에는 더 편하게 느껴지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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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IBM 모델 M은 확실히 체리나 알프스 스위치를 사용한 어떤 키보드보다 무겁고 소란스러운 키보드입니다.  여전히 쉽게 접할 수 있고, 가볍고 섬세한 현대식 키보드에 적응하면, 쉽게 손이 가지 않는 키보드입니다.  저 역시 많은 마니아들처럼 시간이 지나면서 가벼운 키보드를 선호하게 되었습니다.  대충 한 바퀴를 돌았다고 생각하고, 다시 찾은 모델 M은 여전히 잔잔한 감동으로 다가옵니다.

오랜 시간을 변하지 않고 묵묵히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듬직한 큰 형님처럼...

빼어나게 잘나진 않았지만, 편안하게 감싸 안을 수 있는,

모델 M은 그런 향기를 불러일으키는 키보드라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