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용기를 처음 씁니다. 전문적이지도 않을 겁니다. 신변잡기적인 글의 성격이 강합니다.
바쁘신 분들은 맨 아래 요약만 보셔도 됩니다. 사진은 다음에 올려보겠습니다.

컴퓨터를 처음 만진 건 1981년이었습니다. 중학교 1학년 때입니다.
당시 퍼스널컴퓨터 도입 초기라서 여러군데 전시장이 있었습니다.
국립과학관과 여의도 장기신용은행이 저의 주무대였습니다.
거기 친구들이랑 몰려다니면서 베이직가지고 놀았습니다. 외부저장장치로 카셋트 테이프를 썼죠.
그때 이후 집안 형편으로 컴퓨터를 살 형편(당시 8비트 컴퓨터 30만원 수준)도 안되었고,
산다고 해도 구체적으로 활용할 만한 방안도 없었으며, 곧 이어지는 입시 준비....
그 다음에 제가 컴퓨터를 사게 된 건 제대 말년인 94년 초 애플 LC475 였습니다.
장교로 근무하던 저는 모은 돈으로 드림 컴퓨터인 애플을 구한 겁니다. MIDI 취미를 위해서...
제대 후 직장에 들어간 저는 당연히 회사에서 주는 키보드를 썼죠.
삼성에 입사했으니 당연히 삼성키보드와 컴퓨터...
당시에는 키보드에 대한 별 생각이 없었습니다.

입사 후 다음해인 95년 어느 날 마이크로소프트에서 내츄럴 키보드가 발매된 걸
우연히 알게 되었습니다. 당시 가격이 정확하지는 않지만 8만원대인가 15만원인가...
지금 생각해도 키보드에 투자하기에는 거금이라고 생각합니다.
마침 외사촌 동생이 용산 컴퓨터 상가에 취직을 해서 매상 올려주는 셈치고(얼마 안 되겠지만)
이걸 사게 되었습니다.

첨에는 적응하기 어려울 줄 알았습니다. 약 하루만에 적응되더군요.
별로 편하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보다는 빨리 적응하는게 관건이었으니깐...
당시로는 첨단 인체공학이었고, 베이지색 본체 우측 위에 'Microsoft'라는 로고가
남들에게도 자랑거리가 되었습니다.
이 키보드 뒷면에는 형식승인을 정보통신부가 아닌 '체신부'에서 했습니다.
당시에는 정통부가 없었죠.

이후 모델은 사용해보지 않았으나 LG의 내츄럴키보드를 사용해봤는데 별루였습니다.
무슨 미세한 차이보다는 디자인이 산뜻하지 못한 기분이어서 그랬을 겁니다.
내츄럴 키보드가 편하다는 것은 내츄럴 키보드를 쓸 때는 잘 모릅니다.
그러나 다른 키보드를 30분 이상 사용해보면 바로 알 수 있습니다.
꺽이는 손목에 무리가 오기 시작합니다. 사실 지금도 손목이 불편해지고 있습니다.
오랫만에 키보드 오래치고 있거든요.

기타를 취미로 치는 저는 늘 나의 내츄럴 키보드에 대해서 남들이 이야기할 때
'뮤지션의 생명은 손목이야. 손목을 위한 선택이지.' 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멤브레인이니 기계식이니 그런 방식은 여기와서 알게 되었고,
솔직히 아직도 잘 모릅니다.
적어도 저에게는 키터치의 느낌은 익숙해지면 되는 문제지만
손목꺽임은 부담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디자인과 손목의 편안함, 그리고 초기모델을 오랫동안 사용한다는 자부심으로
95년부터 몇주전까지 사용했습니다. (제 아반테 자동차도 같은 시기에 사서 지금까지 탑니다.)
신정 연휴 때 시간이 남아서 오랫만에 키를 빼서 세척하였습니다.

"뚜시궁"
오른쪽 Shift 키의 안쪽 지지대(?)가 부러졌습니다.
예전에 다른 쪽이 부러진 적이 있습니다만 이번에는 작동이 힘들 정도의 중상이었습니다.
키를 빼는 동작에서의 힘조절 문제가 아니고 워낙 오래되어서 플라스틱이 삮은 것 같습니다.
망연자실....

며칠을 후회하며 지냈습니다. 오래 사용했으니깐 본전은 뽑았다며 스스로 위로하며
이곳 키보드 매니아에서 대체용 키보드에 대한 정보를 찾아보았습니다.
그러다가 떠오른 생각...중고를 구해서 키만 교체해보자...
'사고팔고' 게시판을 검색하니 초기 모델은 거의 없더군요.
그래서 구매 게시를 했는데 며칠동안 반응이 없었습니다.
어느날 저녁 sunnyfan 이라는 분이 제게 쪽지를 주셨습니다.
본가에 있을 것이라고...확인 후 알려주신다는...
다시 확인 후 알려주신다는 시간은 기약없이 지나는 것 같았습니다.
여기 저기 사용기와 게시판에서 이 기종에 대한 언급을 하신 분께 판매의향을 여쭤보았습니다.
구하지는 못하였으나 답변을 주신 '겜돌이','에헴'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급기야 ebay를 뒤지기 시작했습니다. 어차피 쉬프트키는 한글키랑 상관없으니깐...
소장용 비닐도 안 뜯은 새것을 올린 미국인이 있더군요. 오랫만에 보는 포장상자 디자인...
며칠을 고민했습니다. 너무 비싸서...배송료만 5만원 이상...
차라리 눈여겨보던 해피해킹 프로가 올바른 선택일 수 있다고 생각해보았습니다.

며칠 후 다시 ebay를 찾은 저는 이미 구매 버튼을 누른 후에야 정신이 들었습니다.
아마 지금 뱅기 타고 한국에 오고 있을 겁니다.
그리고 며칠 후 sunnyfan님께 키보드 찾았으니 착불로 보내주신다고 연락이 왔습니다.
물론 무료로 그냥 주신답니다.

그리고 오늘 택배로 키보드가 왔습니다. 착불도 아니고 선불로 보내주셨습니다.
보내주신 키보드는 미국제품이더군요, 제 것은 멕시코제품인데...
키 인쇄방식도 미제는 전사방식이고, 멕제는 레이저 각인 같은 것이구요.
보내주신 키보드는 선탠이 많이 되어 제것보다 더 짙은 색이지만
쉬프트를 교체하여 끼워보니 람보나 어깨에 난 영광의 상처로 보입니다.
한 10년 더 쓰면 이 상처들이 늘어나기도 하겠죠.
미국에서 오는 새 키보드는 그냥 소장하렵니다. 뭔가 집착하는 것도 즐기면 재미있거든요.

하여간 제 키보드를 살려주신 sunnyfan님께 감사드립니다.
저도 이곳에서 뭔가를 도와드릴 일이 생겼으면 좋겠습니다.

두서없는 긴글이었습니다. 전문적인 사용기라기 보다는 너무 기쁘고 감사해서 함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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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용기 요약
1. 장점 : 손목에 편하다. 군더더기 없는 디자인
2. 단점 : 12년 정도 쓰면 플라스틱이 삮는 것 같다.
          넓어서 책상을 많이 차지함.
3. 이후모델 비교(며칠 공부하면서 남의 글을 봤습니다.)
  - 초기형 : 방향키가 일반과 같은 디자인 'ㅗ ' 모양
  - 엘리트 : 방향키가 다이아몬드형 배치 (많이 불편하다고 함)
  - 프로   : 이런 저런 기능키 배치로 디자인이 확 무너짐
4. 터치감 : 초기형 이후 모델은 시장 선점 후 가격을 낮추기 위해 싼 재료를 썼는지
            키감이 안 좋다는 평가(저는 써보지 않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