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이 글을 쓰기 위해 가입 정보를 살펴보았더니 2004년에 처음 가입하였네요.

그동안 수많은 키보드를 사고 팔면서 만져보았지만, 이상하게도 스스로 납땜을 하거나 개조를 하는 일은 없었습니다.

아마도 너무 실력이 좋으신 분들이 곁에 계시다보니, 굳이 실력이 떨어지는 자신이 그런 일들을 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었던 것 같습니다.

일주일에 몇번씩 다른 회원님들을 만나면서  그 자리에서 '뭐뭐가 키감이 좀 이상하다 손좀 봐주세요~' 하면 바로 가져가서 '이제 한번 봐라~ 어떠냐~'하는 식이었기 때문이었지요.

암튼 그런 전차로 한창 불타오르고 있을 때도 저는 납냄새를 한번도 맡아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학업도 바쁘고 국가에 대한 의무도 있고 하여 키보드가 자연 멀어지게 되었습니다.

그동안 많은 키보드를 제치고 골라놓은 키보드가 한대 있기에 큰 아쉬움 없이도 컴퓨터를 할 수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늘상 마음속에 걸리는 키보드가 하나 있었으니, 바로 개조에 실패한 체리 3000 101배열 개조 백축이었습니다.

체리 3000 101배열 흑축을 이색사출로 몇 대 구하여서 이런저런 실험들을 해 보았는데, 그 중 한대가 이것이었습니다.

스위치에 대한 개조를 행하였는데, 개조 내역은 구형 슬라이더와 상부하우징, 스프링을 신형 하부하우징과 합치는 것이었습니다.

추가적으로 알루미늄 보강판으로 보강을 하였었지요.

체리스위치의 품질은 상,하부하우징과도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봅니다.

하우징의 강도에 따라서 스위치의 안정성과 키감이 크게 좌우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심지어 좋은 체리 스위치는 분해도 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사진 051.jpg

<버리는 백축, 옮겨타는 흑축, 적출한 점퍼핀, 클립으로 대충만든 스위치 분해 툴>

 

 

 

아무튼 이 키보드의 키감은 도저히 이루 말할 수 없이 참혹해서 도무지 만질 수 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그 후로 5년간 벽장에 쳐박혀 있었지요.

하지만 늘상 좋은 스위치를 구해서 다시 쓰고 싶다는 생각은 늘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왠지 느낌이 좋은 키보드가 한 대 올라오더군요.

게다가 판매하시는 분이 너무 흔쾌히 분양해주셔서 기분도 좋았습니다.

만져보고 괜찮으면 내가 한번 직접 작업을 해보자~라는 마음을 먹고 컴퓨터에 연결했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역시나 매우 기분좋은 순정 구형 흑축이 들어있더군요.

단단한 키감은 말할 것도 없고, 흑축의 고질적인 단점인 키압으로 인한 뻑뻑함도 찾아볼 수 없는 매우 좋은 스위치였습니다.

시간을 내서 바로 뽑기 시작했습니다.

그래도 예전에 들었던 것들이 있어서 준비물을 준비하는 데는 어려움이 없었습니다.

순정 체리 기판의 동박이 어이없을 정도로 약하다는 것도 익히 들어 알고 있었기 때문에 흡착심지를 이용해서 납 제거를 하기로 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옮겨 심을 흑축을 모두 적출하고 체리 기판을 보는 순간, 아연실색하였습니다.

원래 키보드는 보강판용이라 발이 2개 달려있지만, 순정체리는 발이 4개 달려있는 기판용 스위치였던 것이지요.

이 어이없는 사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한참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물론 어차피 쓰지도 않을 백축을 해체, 점퍼 핀을 뽑아서 흑축에 넣으면 간단한 일입니다.

하지만, 앞서 말했듯이 스위치를 여는 걸 극도로 싫어하는지라 썩 내키지가 않더군요.

게다가 101개를 모두 그렇게 하자니 거기에 드는 시간도 상당할 것임이 분명했습니다.

그런데 체리 기판을 찬찬히 보다보니 모든 스위치의 점퍼핀이 납땜이 되야하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옳다쿠나, 필요한 것만 몇 개 해체해서 만들면 되겠구나~

보강판이 있기에 스위치의 안정은 문제 될 것 없고 어차피 팔 생각도 없으니 이정도로 타협하고 작업을 하였습니다.

이미 체결되어 있는 보강판을 들어내고 싶지 않았기에 스위치의 제거와 장착은 가로로 한줄 정도씩 작업하였습니다.

 

  사진 044.jpg

<알루미늄 보강판, 철판보다는 부드러운 키감을 주기에 좋아합니다>

 

약 이틀정도의 시간을 가지고 작업을 하였습니 다.

처음 연결했을 때는 무척 떨리더군요.

과연 제대로 입력이 될까?

이런 숫자열 3키가 입력이 안됩니다.

왜....

뒤집어 보니 납땜이 안되어있네요.

사진 053.jpg

<최소한의 납땜, 저질 납땜.. 기판 상태로 보아 이제 절대 다른사람에게 분양하지 못합니다..>

 

땜질을 하고 보니 잘 됩니다.

모든 키가 잘 입력이 됩니다.

키감이 균일한지 아닌지는 사실 시간을 두고 타이핑을 해 봐야 압니다.

가장 좋은 방법은 장문의 글을 한번 써 보는 것이지요.

그래서 바로 지금 완성하자 마자 이 글을 쓰고 있습니다.

스위치가 원래 워낙 상태가 좋아서 더 손댈 부분이 없을 듯 합니다.

사진 045.jpg

<완성! 101배열, 이색사출 키캡, 알루미늄 보강, 부드러운 구형흑축>

 

오랫만에 느껴보는 키감의 황홀함이네요.

역시 이 맛에 아직 키보드 매니아를 들락거리나보다...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좋은 밤 보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