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보드 매니아 사이트를 알게 된것도 1년이 훨씬 넘은 것 같다. 그동안 많은 키보드 사용기를 보고 고민하여 나만의 취향과 용도에 맞는 키보드를 선택하기 위해 노력하였다. ‘절대 키감은 없다’ 등의 교훈 같은 얘기도 있지만 자신만의 절대 키감은 있다고 생각하며 이 글을 시작하려 한다.

사실 체리의 흑색 리니어 스위치(이하 흑축)는 키보드를 처음 접하는 사람이라면 모를까 그다지 밋밋하고 인기가 없는 편에 속한다. 뭔가 특색을 느끼기 힘들며 철판이 대어져 있는 경우라면 또각또각 밑바닥을 치는 느낌이 깨끗하게 손가락 끝에 전해져 온다. 키압이 일정하게 계속 유지되며 구분감은 바닥치는 느낌을 빼곤 알아차리기 힘들며 실제로 구분되는 압력의 변화도 없다. 즉 일정한 속도로 리듬을 개개인의 개성 맞추기에 최적이라고 할 수도 있는 것이다. 어느정도 익숙해진다면 바닥을 내리치는 소리와 느낌이 리드미컬 하게 전해져 온다. ‘다다다닥’하는 느낌이다. 하지만 단순히 키보드를 취미로 생각하지 않고 생업에 사용하여 보다 많은 양의 타이핑을 해보면 흑축의 리듬감은 개인의 특성에 맞춰 상당히 넓은 폭으로 조절이 가능하다. 바닥을 세게 치지 않고 살짝 닿는 정도로 사용중인데 거의 소리나지 않게 사용도 가능하다. 소음이 없게 사용하거나 힘있게 바닥치는 소리를 내며 사용해도 되는 것이다. 이것은 넌클릭 스위치의 미묘한 구분감 또는 클릭에서는 조절하기 힘든 흑축 나름대로의 장점이라고 생각된다.

개인적으로 흑축 키보드를 세가지 사용해 보았다. 두드려 본 것은 좀더 되지만 장시간 사용하여 이정도면 내 생각을 말할 수 있겠구나 하는 정도로 사용해 본 것이 세 가지다. 일명 빨간불 키보드와 필코의 91JU, 체리 1800 흑축이다. 체리를 제외하고는 전부 철판이 대어진 키보드이다. 철판의 장단점은 이후에 이야기 하겠다.

1. 빨간불 키보드
  이 키보드를 처음 접하고 나면 그 미려한 자태에 눈을 뗄수 없다. 외부 하우징 뿐만이 아니라 키캡도 상당히 고급스럽다. 키캡을 빼서 살펴보면 그 재질이 연약해 보이지만 사용해보면 일종의 레이져 각인 키캡의 재질과 비슷하여 기스나 닳아짐에 상당히 강하다. 불빛이 통과하여 키의 종류를 표시하기 때문에 그 부분만 반투명하여 언제까지나 선명한 글자를 볼 수 있다. 하지만 발광을 끈다면 가독성이 약간 떨어지는 단점도 있다. 이 키보드를 구입할 때 어느 정도 조명이 어두운 악조건에서 사용하는 키보드란 설명이 있었는데 쉽게 공감하긴 힘들지만 자동차나 기타 어두운 장소에서 어느정도 도움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큰 장점이라고 할 수는 없다.
  이 키보드에 익숙해지면서 미니 키보드가 가진 장점에 감탄하게 되었다. 미니 키보드중 키캡의 면적이 풀사이즈 키보드와 별반 차이나지 않으면서 어느정도 US배열을 유지한 경우 이 장점이 적용된다. 나의 경우 익숙해지는데 약 2주정도 걸렸지만 익숙해진 이후 풀사이즈 키보드를 사용하면 작업 효율이 떨어짐을 느낄 수 있다. 즉 타이핑의 동선이 길어지며 거추장 스럽다는 느낌이 드는 것이다. 개인차가 있겠지만 오밀조밀한 미니 키보드에 익숙해지면 작업 효율이 커진다고 생각한다.
  키보드는 키 스위치를 잡아주는 철판 이외에 밑판도 엄청나게 두꺼운 철판으로 덧대어져 있다. 그래서 키보드 무게가 여느 철판이 덧대어진 풀사이즈 키보드 보다 무겁다. 단지 밑에 고무발이 없기 때문에 따로 붙여줘야 하는 것이 단점이다. 아마 미니 키보드 중에 최고로 무겁지 않을까 예상해 본다. 처음 만져본 흑축이었지만 지금 비교하자면 흑축이 무겁다고 하는데 이정도면 생각보다 상당히 가볍지 않은가 생각되었다. 필코의 마제스터치 갈축도 만져봤지만 키압이 대동소이한 정도였다고 생각하며 굳이 높고 낮음을 비교하면 당연히 갈축이 더 가볍다고 할 수 있지만 그래도 무겁다고 할 정도는 아니였다. 또각또각 바닥치는 맛이 있는 키보드이며 키배열이며 그 위치또한 미니키보드로서 상급이다.
  마지막으로 얘기할 이 키보드의 유일한 단점은 그 높이다. 팔목 받침이 없다면 밑판의 고무발 높이에 더해진 그 높이가 손목에 부담이 많이 된다. 이후에 키보드 높이에 대한 편견이 생기게 되었다. 팔목 받침이 꼭 필요한 키보드이다. 키보드를 사용하는 시간이 늘어날수록 이것은 굉장히 중요한 사항중에 하나이다. 이것을 제외하고는 단점을 찾아보기 힘든 키보드라 생각된다.


2. 필코 91JU
  단종되었다는 얘기와 흑축 + 철판 + USB라는 얘기를 듣고 덜컥 구입해버린 이 키보드는 키보드 배열이 상당히 이쁘고 외부 하우징도 이쁘다. USB 허브도 두개가 달려 있어 주변기기를 사용하기 좋다. 컴퓨터에 연결하면서 중간에 허브를 통해서 연결했는데 전원 부족 경고가 뜨면서 작동이 안되는 것을 보니 허브의 전원 공급부분도 충실한 것을 짐작해 볼 수 있다. 아마 중간 허브가 유전원 허브였으면 되었을 것 같다.(허브를 빼고 직접 연결함)
  배열이 일본 제품 답게 JS 배열이라 오른쪽 중요 키 몇 개가 오른쪽으로 좀더 밀려나 있고 US 배열 사용시 필요가 없는 키 몇 개가 사이사이 끼어 있는 것을 빼고는 나무랄 것이 없는 키배열이다. 미니 키보드에 익숙해져 있다면 적응하기 어렵지는 않지만 나는 1주일의 시간이 걸렸다. 키감/키압은 빨간불과 비슷하고 키 스트로크가 짧은 것은 체감하기 힘들다. 하지만 장시간 타이핑 해보면 뭔가 좀 덜 들어간다는 느낌이 전해져 온다. 하지만 이것이 어중간한 느낌을 지우기 힘들다. 개인 취향이 반영되는 부분이지만 도움이 될 때도 있고 반대가 될 때도 있다. 검정색 키캡이라(빨간불과는 다른 일반적인) 오랜기간 사용하면 키캡이 쉽게 번들거릴 것 같다.
  이제 단점을 얘기해야 하는데 공교롭게도 배열에 관련된 문제다. 사실 JS배열을 사용해 보기 전에는 어떤 키보드든지 적응하기 나름이라고 생각했는데 JS배열은 한글 타이핑이 길어질때 치명적인 문제점이 있다. 바로 오른쪽 시프트키와 엔터키의 사용이 오른손을 너무 혹사시킨다. 시프트를 사용하고 엔터로 줄바꿈을 하는 것이 키보드 사용이 길어질수록 새끼 손가락에 상당한 부담으로 다가온다. 즉 오른쪽 시프트와 엔터를 사용할 때 보통 US배열 키보드 보다 한키 정도 더 오른쪽으로 움직여 줘야 하는데 이것이 익숙해지는 문제를 떠나서 한글이나 영문 타이핑시 손가락에 더하는 부담이 상당하다. 키보드를 주기적으로 바꿔가며 정녕 이것이 적응을 못한 것 때문인지 테스트를 해봤지만 JS배열은 장시간 타이핑시 오른손에 부담을 주는 것이 확실하다고 생각한다. 사실 이것 때문에 유일하게 방출한 흑색축 키보드가 91JU 이다.
  키보드의 높이는 낮지는 않지만 일반적인 키보드보다 약간 높은 정도로 무난하다고 생각된다. 하지만 키 스트로크 때문에 어느정도 보상이 된다고 생각한다.
  US배열이 출시된다면 구매 1순위가 되는 키보드가 되지 않을까 조심스레 예상해 본다.


3. 체리 1800
  어떤 키보드든지 장시간 작업하면 손가락과 손목 심지어 잘못된 자세로 작업하면 목과 어깨 가슴까지 통증이 생긴다. 자세가 바르고 키보드 높이와 손목과 손의 각도가 적당하다면 이런 통증을 예방하고 줄일 수 있다. 그런데 줄이기 힘든 피로감이 손가락에 생긴다. 이것은 정말 작업 시간과 관련이 있는 어쩔수 없는 문제인 것 같다. 지금까지 사용해본 키보드가 대부분 철판 보강 흑축이었고 더불어 가장 많이 사용한 키보드 중 하나가(서걱거림을 없애버릴 정도로 사용) 체리 4100 이었는데 손가락의 피로감이 다르게 느껴졌다.
  그래서 철판이 없는 1800 흑축을 분양받아 사용해보게 되었다. 손가락의 피로감과 흑축의 철판과의 관계를 알아보고 싶었다. 이전에 손가락이 피로하여 게임용으로 자주 사용하는 세진 1032 멤브레인 키보드를 바꿔 사용해보기도 하였는데 손가락의 누적되는 피로는 덜지만 누르는 힘이 더 들어가고 어느정도 누름의 세기를 일정하게 고정하기가 힘들어서 결과적으로 손가락이 더 힘들었다. 결국 이 멤브레인은 대안이 아니였고, 지금은 마지막으로 1800 흑축을 테스트하며 메인으로 사용하고 있다. (리얼포스나 기타 고급 멤브레인은 어떨지 궁금하다.)
  결론을 얘기하자면 장시간 타이핑시 흑축과 스위치를 잡아주는 철판의 조합은 손가락의 부담을 가중시킨다. 정확한 타이핑이나 신선한 키감으로 취미 생활 수준의 키감을 느끼기에는 어떨지 모르겠으나 장시간 작업에 철판은 그다지 좋은 선택은 아닌 것 같다. 적절한 비유가 될지는 모르겠으나 스포츠카의 타이어 휠을 16~17인치로 바꾸면 승차감에 도움이 되고 19인치로 바꾸면 드라이빙 성능은 올라가지만 승차감은 버려야 하는 것과 비슷하다. 물론 그런 단단하고 노면의 상황이 온몸으로 느껴지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도 있듯이 키보드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이 부분은 요점만 비교를 한 것이니 서스펜션등의 다른 요소는 거론하지 않겠다)
  1800은 배열이 상당히 매력적이다. 하지만 직접 접해 보면 배열만큼 컴팩트하지는 않다. 일반 풀사이즈 키보드보다는 당연히 사이즈가 작지만 폭이 약간 짧을 뿐이고 아래위 넓이는 약간 길다. 그래서 펑션키가 조금 위쪽에 위치한다. 펑션키를 자주 쓴다면 불편할 수도 있다. 그래서 펑션키를 자주 사용하는 게임용으로는 부적합하다고 생각한다. Insert, Delete, Home, End, PgUp, PgDn등의 기능키는 그 배열을 유지한채 위치만 숫자키 위로 옮겨가 있다. 오른손이 좀더 오른쪽 위로 올라가는 적응만 한다면 그다지 나쁘지는 않지만 사용이 빈번하다면 풀사이즈 키보드가 났다. 숫자키패드의 ‘0’버튼이 그 크기가 반으로 줄었는데 이부분에 대해서는 별다른 어려움이 없다. 별다른 적응과정 없이 손가락이 위치를 잘 찾아간다.
  손의 피로에 대한 의견은 주관적인 것이니 철판이 단단하게 스위치를 잡아주는 것이 더 났다는 의견도 일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비교해본 바로는 키감의 문제가 아니라 장시간 작업시에는 철판이 없는 경우가 더 나았다.


  나에게 타이핑 작업에 가장 편한 키보드를 고르라면 4100을 고를 것이다. 납작한 높이가 손목에 전혀 부담이 없으며 배열 또한 환상적이다. 키캡의 넓이 또한 풀사이즈 키보드와 별반 다를 바가 없다. 키스트로크가 낮아서 굉장한 고속 타이핑이 가능하다. 간혹 오른쪽 시프트키가 작다고 불평하는 분이 계시지만 조금만 노력해 보면 여타 다른 미니 키보드에 비해서 오른쪽 시프트 키의 크기와 그 위치가 정말 절묘한 위치에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이 부분에 있어서 빨간불이 높은 점수를 가지는 이유가 있다.) 게다가 처음의 서걱거림은 사용함에 따라 개인이 자주 사용하는 스타일에 따라 맞춤으로 적용되어 서걱거림이 없어진다. 4100을 6개월 정도 꾸준히 사용했는데 지금은 정말 그 어느 키스위치 못지 않은 월등하고 편안한 키감을 자랑한다. 여담으로 4100의 키캡은 레이저 각인이 아닌 경우 상당히 잘 지워진다고 알려져 있는데 이것은 예방이 가능하다. 오랜기간 사용했는데 아직 지워지지 않았다. 4100이나 기타 키캡이 지워지는 것은 손톱이 키캡을 때리기 때문이다. 손톱을 자주 정리해 준다면 지워짐을 예방할 수 있다.
  ML 스위치는 오랜시간 사용했을때 그 진가가 드러나는 것 같다. 제목과 다르게 얘기가 좀 샛길로 새었지만 지금은 4100을 잠시 넣어두고 1800 흑축을 사용중이다. 이것 또한 매력이 만만치 않다. 아마 오랜시간 나의 주력으로 자리 잡지 않을까 생각한다.

덧/ 긴글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키보드 선택에 도움이 되는 많은 리플 부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