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과 추측을 기반으로 한 소설성이 다분한 글입니다. 실질을 알고 계신분의 지적을 겸허히 환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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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계기.

우연찮게 서울 갈 일이 생겨 용산 타건샵을 방문 해 봤습니다.

그리고 운 좋게도(?) 스틸시리즈 APEX M800을 잠깐(아주 잠깐!) 만져 봤고, 이전에 대구촌놈님의 그램 과 M800 비교리뷰도 생각이 나면서 어떻게 운 좋게 쿨엔 특가로 구한 그램에 대해서 모호하게 가지고 있던 생각이 정리가 되어 한번 글을 써 봅니다. 


외관이나 마감같은 부분은 이미 대구촌놈님의 훌륭한 결과물이 있는고로.. 저는 개인적으로 느낀 키감에 좀 더 집중을 하려 합니다. 


음.. 먼저 이야기를 해 두는 것이 좋을 것 같은데, 저는 그램에 대해서 좀 혹평을 할 예정입니다.^^;;


1. Tesoro Gram – Kailh Agile

소로 그램이 사용하는 스위치는 카일 브랜드에서 만든느 Agile(재빠른 뭐 그런 의미죠?) 스위치입니다. 요즘 게이밍 스위치의 대세에 맞게 낮은 스트로크(3.5mm)에 이른 입력점(1.5mm)를 가지고 있습니다. 현재로선 그램 외에 이 스위치를 사용한 모델이 없는데, 그래서 그런지 이 스위치는 시쳇말로 ‘컨셉질’을 좀 합니다.

Agile.jpg


 그램에서 사용한 Agile 스위치의 경우 줄어드는 스트로크에 맞추어서 스위치의 크기 자체를 줄여버렸습니다. 사실 체리 스위치를 열어보면 좀 빈공간이 있기는 있지요. 그램의 스위치는 그런 부분을 활용한 것이라 생각할 수 있겠습니다. 분해를 하진 않아서 보강판 아래는 모르겠으나 보강판 위 높이가 기존 체리스위치의 6mm에서 4mm로, 가로세로가 15.6mm에서 약 13mm로 줄어 있습니다. 구글링으로 찾은 PCB 사진을 보면 전극과 PCB고정용 발의 위치는 체리와 대충 유사해 보입니다만, 하우징 자체의 크기 문제로 혹 스위치 개별판매가 되더라도 체리 사이즈에 맞춘 보강판은 못쓸 듯 합니다. 내부 공간이 줄어 있으니 클릭스위치의 경우는 소리가 좀 달라지지 않을까? 합니다만, 클릭음은 키캡의 영향도 있으며, 이 다른 크기로 인해서 기존의 OEM프로파일 키캡은 못 쓰고, 체리 프로파일 키캡도 아슬아슬하고, 배열 때문에 어차피 그램 자체 키캡 외에는 답이 없는것도 생각하면 뭐... 하나마나한 이야기인 것 같습니다.(해외 리뷰에서 다른 청축 키보드에 비하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한 내용을 본 기억이 있습니다만, 어쨌든 그 리뷰어의 의견일 뿐이지요.)

 즉 Kailh Agile 스위치는 (현재로선) 그램을 위해서만 만들어졌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럼 이제부터 이 스위치가 그램 키보드에서 보여주는 키감에 대해서 요소별로 살펴보고, 다른 키보드(이를테면 M800)와의 비교를 해 봅시다.


2. 리니어?

 이 부분에서 그램에 대한, 정확히는 카일의 Agile 스위치에 대한 혹평을 하려고 합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스위치는 개발 도중의 테스트 샘플 수준입니다. 적어도 제가 체험한 레드 스위치는 그렇습니다.

 제가 감점을 주는 부분은 이 스위치의 키감이 절대 리니어가 아니란 것입니다. 이 스위치를 천천히 조금씩 힘을 늘려가면서 눌러가다 보면 어느 순간 키압이 ‘떨어지며’ 손가락에 남은 여력 때문에 ‘훅’하고 키가 들어가는 느낌을 줍니다. 마치 러버돔을 연상케 합니다만, 그 보다는 좀 더 기계식 스위치에 가까운 모습을 보입니다. 기존의 스위치 중에 가장 가까운 키감을 주는 스위치는 체리 ML스위치라고 느꼈습니다.

ml_force_forgram.gif


위 그림은 체리 ML스위치의 키압 그래프입니다. 저 그래프에서 키 스트록이 3.5mm로 늘어나면서 스프링에 의한 힘의 기울기가 좀 완만해지면 대충 Agile Red 스위치에서 얻을 수 있는 느낌입니다. 실제로 느껴지는것에는 좀 차이점이 있는데, tactile스위치류에서 느껴지는 촉각 구분점 이후의 ‘꺼짐’이 좀더 적다는 것입니다. 작동점 이후의 스프링에 의한 ‘리니어’한 부분을 왼쪽으로 연장시켜서 촉각 구분점 이후 떨어지는 그래프와 만나는 지점으로 내려오는 형상으로 느껴집니다. (빨간선)


왜 저런 키감이 느껴질까? 하고 좀 고민을 해 봤습니다. 솔직히 스위치를 분해할 수 있으면 그게 최고겠지만.... 디솔더링을 할 수 있는 장비도 기술도 없고, 따로 구하기도 힘든 스위치라 (실제로 위에서 언급한 크기의 다름 때문에 커스텀 키보드를 위해 스위치만 따로 판매할 가능성도 낮아보입니다.) 이후의 내용은 순전히 추측입니다. 능력자 혹은 용기있는 자의 검증이 필요합니다.ㅎㅎ


체리형 스위치의 tactile(솔직히 넌클릭이란 말이 부정확한 것 같아 좀 안좋아 합니다;;) 스위치의 접점부와 슬라이더의 움직임은 갈축을 검색해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이걸 갈축의 force diagram에 대비하면 아래와 같이 볼 수 있겠죠. (기본이미지는 구글링 했습니다.)


brown.png


(1)-(A) 의 상태를 지나 (2)-(B)구간에서 슬라이더의 ‘돌출부’에 의해 촉각점이 생깁니다. 그런 후 (3)-(C) 구간을 지나 (4)-(D)에서 입력후 더 내려가는 구간으로 이어지지요. 뭐, 이거야 다 아는 이야기겠지만, 여기서 주목할 점이 일반적인 tactile스위치에서 보이는 (3)-(C)부분이 Agile스위치에서 느껴지지 않은 점입니다. 


사실 그러한 스위치가 기존 체리 스위치에도 있습니다. 다름 아니라 청축이지요. 청축의 압력 그래프를 살펴보면 촉각점을 지난 후 스프링에 의한 압력의 기울기에 접하는 위치까지면 떨어지고 갈축에서 보이는 그 이하의 ‘계곡’이 형성되지 않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저는 이것을 (C) 단계에서 금속접점의 판스프링에 의한 압력을 갈축의 경우 슬라이더가 그대로 받지만 청축의 경우 접점과 닿는 플라스틱 구조물이 클릭음을 내면서 이미 밑으로 내려갔기 때문에 슬라이더 자체에 그 힘이 전달되지 않기 때문이라 생각합니다. 즉, 아래 그림에서 판스프링이 슬라이더에 주는 힘(빨간색 화살표)의 분력 중 수직 방향으로 작용하는 힘(초록색 화살표)에 의해 슬라이더에 가해지는 힘이 경감되는 것이지요. 


crypt.png


 이때 슬라이더의 경사구간과 수직구간이 존재하는 것은 리니어 스위치도 마찬가지임에도 리니어 스위치에선 압력 기울기의 변화를 잘 느끼지 못하는 것은 리니어 스위치나 갈축의 (A)부분의 경사와 돌출부의 경사가 다르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아래 구글링한 이미지를 자른 것을 참조해 주세요.) 이 경사도와 접점의 슬라이더와 붙는 부분의 금속판의 접힌 모양의 조합이 접점 판스프링의 힘이 유효한 영향을 미치는데 작용하지 않을까 하는 추측을 해 봅니다.


brown bump.png


여기서 구글링 해서 찾은 Agile Red스위치의 압력 그래프를 봅시다.


Kailh agile.png


보시다시피 제조사(?)는 이 스위치를 ‘리니어’로 이야기 합니다. 그럼 어쨌든, 슬라이더의 형상은 적축이나 흑축의 그것과 같을 것이라고 예상할 수 있습니다. 


위의 두 내용 즉, (1) 촉각적 구분감을 위해선 다른 각도로 접하는 부분(갈축에선 돌출부)이 필요하다. (2) Agile Red의 슬라이더는 리니어 스위치와 같을 것이다. -를 조합해서 제가 느낀 키감을 설명하려면 다음과 같은 그림이 결론으로 나옵니다. 


so.png




넵, 눈치 채셨겠지요? 즉, 접점 금속판과 슬라이더가 만나는 기본 위치가 일반 체리 스위치처럼 슬라이더의 경사부에 닿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그림처럼 아예 아래쪽에 위치해 버렸기 때문이라 봅니다. 그래서 처음 접점금속이 경사부로 가는 와중에 ‘걸리면서’(초록색 원) 더 큰 압력을 요구하게 되고 ‘경사부’로 넘어오는 순간 그 압력은 위에서 이야기 한 것처럼 일반적 리니어 스위치의 경우처럼 사라지기에 ‘촉각 구분감’이 생기는 것이라는 결론입니다. 


‘그러면 왜 이런 현상이 일어나게 되었는가?’를 생각 해 보았습니다. 비교로서 비슷하게 짧은 입력점을 가진 체리 은축을 생각 해 봅시다. 이 체리 은축이 어떻게 짧은 입력점을 달성하는가에 대한 것은 기존 키매냐에 올라온 글이 있어서 참고할 수 있습니다. 결론적으론 슬라이더의 경사부와 슬라이더 중심간의 거리가 짧아져서 판 스프링의 기본 위치가 각 접점이 더 가깝게 위치하게 되었기 때문이란 것입니다. 때문에 접점 이후, 즉 슬라이더의 경사부를 지난 ‘수직부’에 해당하는 길이의 변화가 없으므로 접점 이후 스트로크가 약 2mm로 기존 스위치와 같음을 알 수 있습니다. 

 여기에 힌트가 있습니다. Agile스위치의 경우도 접점 이후 스트로크가 2mm로 일반 체리형 스위치와 같습니다. 즉 위 그림에선 파란색 양쪽 화살표로 표시된 부분의 길이가 같을, 최소한 비슷할 것이라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Agile스위치는 스위치 자체의 높이가 체리형 스위치보다 낮을 것으로 짐작됩니다. 즉, 그만큼 슬라이더의 길이가 줄어들었는데, 스프링이 차지해야 하는 공간등을 생각하면 도저히 줄일 수 없는 부분도 있을 것이라 예상할 수 있고, 저는 그래서 이 줄어든 높이의 일부를 슬라이더의 경사부(위 그림에서 빨간색 양쪽 화살표)의 길이를 줄여서 달성했다고 생각합니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접점 금속부를 다시 잘 디자인 했으면 괜찮았을 텐데, PCB상 두 전극의 거리가 일반 체리형 스위치와 비슷해 보이는 것으로 볼 때 기존 금형을 그대로 쓰거나 아니면 높이만 약간 줄이는 등의 새로운 슬라이더를 고려하지 않는 디자인을 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을 해 봅니다. 그래서 이 차이가 위의 그림과 같은 위치관계를 만들게 되고 결과적으로 의도치 않은 구분감을 내게 되었으리라 생각합니다. 


 이 구분감이 사실 완전히 나쁜것만은 아닙니다. 대구촌놈님의 리뷰에서 언급했듯이 그 덕분에 그냥저냥 리니어 스위치였으면 좀 심심했을 수도 있었을 것이 오묘하게 바로 질리지 않게 해 주는 그런 느낌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 스위치는 기본적으로 ‘리니어’를 표방합니다. 소비자가 바로 알 수 있는 정보에 딱 ‘리니어’라고 이야기하지는 않는다고 해도 ‘청/갈/적/흑’이라는 기존 구분법이 이미 완성된 시점에서 나온 키보드이며, 패키지에도 보면 그러한 구분을 해 놓았는데, 그렇다면 당연 소비자는 ‘적’의 부분에서 ‘리니어’ 스위치를 기대하게 됩니다. 그럼에도 실제 스위치가 리니어가 아닌 넌클릭에 가까운 스위치라면? 그렇다면 아무리 장점이 있다고 해도 이 스위치는 나쁘게 말해 ‘하자품’입니다. 


 Blue 스위치의 경우는 잘 모르겠습니다. 괜찮은 경우라면 제조사가 주장하는 대로 일반 청축에 스트로크가 짧아진 경우겠고, Red 스위치와 같은 문제가 있다면 구분감이 두 번에 나누어서 느껴지는 정말 희한한 물건이겠지요.


 이미 여러 제조사에서 짧은 스트로크를 가지는 스위치를 개발하고 적용한 키보드들이 나와 있는 상황에서, Agile스위치와 그램의 강점은 기존 체리형 스위치로는 이룩할 수 없었던 얇은 형태의 디자인 정도밖엔 떠오르지 않습니다. (그것도 호환성 측면에선 대구촌놈님의 리뷰에서 밝힌대로 약점을 가집니다.) 상기했듯 키감 자체는 우연의 산물일 뿐이고 그 자체의 장점도 분명 존재하지만 게임을 위한 ‘빠른 입력’을 추구한 것이란 Agile스위치의 본질을 생각하면 이 의도치 않은 구분감과 그로인해 더 들어가는 힘은 아무리 생각해도 장점이라고 하기엔 어렵습니다. 

 물론, 일반 타자를 치는데는 꽤 괜찮습니다. 촉각에 의한 구분감은 정확한 타자를 치는데 장점으로 작용 하니깐요. 더해서 추가로 필요한 압력의 존재 덕분에 체리 은축 사용자에게서 보고되는 초기 적응시의 “손만 올려도 입력되는” 현상도 완화될 것이란 상상도 가능합니다.(음.. 사실 레이저사의 키보드나 M800의 스위치가 리니어에 1.5mm입력점인걸 생각하면 0.3mm의 차이 때문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지도요?) 실제로 이 리뷰도 그램 키보드를 이용하여 작성 중이며, 처음 적축등 리니어 키보드를 접했을 때 겪은 오타 발생시에 눈으로 확인하기 전에 느끼기 힘들었던 경험은 그램으로 글을 쓰는 중엔 거의 하지 못하였습니다. 


그 외 몇 가지 소소한 단점이 있습니다. (장점은 대구촌놈님의 리뷰를 보시면 잘 나와 있어요.)

먼저, LED 인디케이터에 스크롤락이 빠져있는 것이 저로선 단점으로 보입니다. 요즘엔 사용이 거의 안 되는 키라지만 엑셀 등을 쓸 때 은근히 불편할 때가 있습니다. 그리고 지속적으로 LED가 들어오는 모드를 사용할 때 고주파음이 납니다. 이 부분은 펌웨어로 고칠 수 있다고 하기도 하고 개인적으론 화려한 LED 효과를 싫어하기에 적용 해 봤자 누른 키를 잠시 표시해 주는 모드 정도를 씁니다만 사람에 따라선 거슬릴 수 있겠습니다. 마지막으론 장점인 디자인이 약점으로 작용하는 경우인데, 기본 높이 자체가 비교적 낮다 보니 일반 기계식 키보드를 대상으로 나오는 팜레스트를 활용하기가 좀 어색한 면이 있습니다. 하나 더, 이건 호불호의 영역인데 개인적으로 비키스타일+낮은 키캡에+기존 체리형과 다른 스위치의 공간구조가 만드는 이 Red 스위치의 바닥치는 소리가 좀 먹먹하게 들립니다.(비교군 : 레오폴드 fc750R 적축 및 660m 흑축)


 결론으로 테소로 그램 키보드는 최초 개발 목표를 달성했다고 보긴 힘들지만 우연히 개성있는 물건이 나온 그런 녀석입니다. 글쎄요? 앞으로 테소로나 Kaihua사가 이 Agile스위치를 더 발전시켜 나갈지, 아니면 다른 체리형의 ‘빠른입력’스위치의 개발로 전환할지가 문제가 될 듯합니다.(Kaihua사가 만드는 Razer사용 녹색축 클릭 스위치가 체리 클릭 비해서 이른 접점을 실현 했습니다만, 체리 은측과 비슷한 원리를 이용했는지는 미지수 이군요..) 전자라면 이 키보드는 테스트 상품이 그냥 시장에 나와버린 사고같은 물건이고, 후자라면 나름 희소성(?)의 수집품으로서의 의미는 있을 듯합니다. 물론 기존 팬터그래프 사용자가 기계식으로 바로 넘어가기 전에 적응점으로 삼을 수도 있겠지요. 


3. 스트로크와 키감의 상관관계 - 바닥치기

 계속 그램 이야기만 했지만 사실 이 글을 쓴 계기는 가장 먼저 이야기 했듯 M800에 있습니다. 그럼에도 M800의 키감에 대해선 딱히 할 말이 없군요. 아닌게 아니라 이녀석은 제조사에서 이야기하는 대로 그냥 리니어 스위치입니다. 다만 스트로크가 짧을 뿐이죠.

 결론적으론 대구촌놈님의 리뷰대로 심심한 키감을 줍니다. 별달리 걸릴 것도 없이 그냥 훅 들어가고 훅 나오며, 스트로크가 짧아 일반 키보드 보다 슬림형(펜타그래프)키보드의 느낌이 더 강하지요. 예상으론 스프링 키압범위가 30g-60g정도로 생각됩니다. 입력점 압력이 45이고, 위치가 딱 절반이니 35-55 아니면 30-60일거라 생각하는데, 바닥지점에서 반발력이 좀 나왔던 기억으로 미루어 짐작컨대 아마 후자일 것 같습니다. 

 결과적으로 손이 편한 키보드임은 분명합니다. 스페이스바도 각도가 잘 맞으면 엄지 끝이 아니라 한 마디 전체를 써서 누르는 느낌인데 이게 또 요상한 편안함이 있더군요. 다만 오래 쓰다보면 좀 질릴 듯 하기도 했어요. 그냥 매장에서 잠시 만져본 지라 제가 이 이상 이야기 할 만한건 없는 것 같습니다. 


 M800과 그램은 그램 스위치의 상기한 특성상 도저히 그냥 일률로 놓고 비교하기 힘듧니다. 그럼에도 약간 생각하게 하는 면이 있는데, 바로 키 스트로크와 키감의 관계입니다. 키 스트로크와 키감의 관계는 제 생각에 두 가지 큰 요소의 차이가 원인으로 작용합니다. 하나는 언제 바닥을 치는가? 란 것이고 다른 하나는 키압의 변화를 언제 느끼게 되느냐? 입니다.

 

 ‘바닥치기’에는 그 때 어떤 느낌을 손가락이 받는가?란 요소도 있습니다만, 이번에 이야기 하려는 내용은 손가락이 ‘움직였다’란 정보가 말초신경에서 뇌로 전달되어 촉각으로 느껴지는 것 뿐만 아니라 근육 자체가 얼마나 수축하였는가 하는 운동에 대한 내용 ‘느낄’ 수 있다는 사실과 관련 있습니다. 이러한 정보가 명확할수록 타자의 정확도를 올릴 수 있으니 손가락이 피곤해지거나 다음 타자에 영향을 주지 않는 범위에서 (개인의 호불호에 따른) 적절히 깊은 스트로크는 좋은 키감을 이루는 요소가 됩니다. 이에 예를 들 수 있는 것이 노트북 키보드입니다. (최근에 필요에 의해서 구매한 노트북의 키보드에 대한 감상도 남기고, 이 주제에 맞기도 해서 한 번 썰을 풀어볼까 합니다.)


 비교 대상은 일반적 팬터그래프와 요즘 노트북(특히 슬림형)에서 잘 쓰이는 치클릿 키보드입니다. (아래 그림)

 laptopkeyboard.jpg


엄밀히 이야기 하면 두 키보드 모두 구조 자체는 팬터그래프입니다. 일반 팬터그래프 키보드의 모델은 씽크패드 T23이고(음.. 과거 씽크패드 T시리즈가 노트북 키보드 중에서도 최고로 추앙받는 씽크패드600 모델의 후손이고, 형보단 못해도 기본적인 특성은 남아 있다는 이야기를 들어서 수집개념? 으로 중고로 구했습니다. 펜티엄3(!!)라는 연식에 비해 러버돔의 경화도 덜 된 듯 아직 쫄깃함이 괜찮은 아이지요.) 치클릿 쪽은 최근 구매한 MSI노트북입니다. 두 키보드 모두 딱 키캡의 높이만큼의 스트로크이며, 러버돔 방식이라 해당 스트로크가 곧 입력지점이기도 합니다. 아래 그림에서 보시듣 일반 팬터그래프의 스트로크는 (키캡의 오목함을 생각하면) 약 2mm,  치클릿 쪽은 약 1.5mm정도 됩니다. (여담으로 MSI쪽은 문자키에 대비한 숫자키 위치가 일반 키보드와 다릅니다.. ‘1’을 치려니 ‘`’가 쳐지는 등 정말 적응 안되더군요..)


laptophi.jpg


 실제론 바닥에 닿고, 러버돔 소재 자체의 탄성 때문에 더 눌리는 부분이 있는데 이 때 느낌은 상기한 바닥에 닿을때의 느낌이라 이번에 이야기 하려는 스트로크 깊이 자체와는 또 다른 요소입니다. 간단히 언급하자면, 치클릿 쪽이 높이가 낮은만큼 러버돔도 작을 것이여서 그런지 바닥을 친 이후(압력 고점을 넘어갈 때의 부드러운 정도로 판별하기에 현재 러버돔 재질 자체의 탄성은 큰 차이는 없을 것으로 예상됨에도) 손가락을 받쳐주는데 더 여유가 없고, 이는 짧은 스트로크와 더불어 이 키보드를 제가 안 좋아하는 이유인 ‘그냥 바닥을 치는 느낌’을 만드는데 일조합니다. (더불어 러버돔 혹은 멤브레인 키보드는 구조와 재질에 따라 이 바닥칠때의 느낌이 ‘딱딱한 바닥을 치는 느낌’/‘적절한 쫄깃함’/‘중간의 이도저도 아닌 느낌’ 등등 다양하게 느껴집니다.ㅎㅎ)

 

 잠시 삼천포로 빠졌는데, 다시 돌아옵시다. 두 키보드의 타건감을 비교하면서 저의 내면을 탐구하고 다음과 같은 결론을 냈습니다. 타자를 입력하면서 촉각/운동정도 에 따라 뇌가 감각적으로 다음과 같은 순서로 느끼고, 예측하고, 다음 행동을 미리 결정합니다. (ㄱ)타자 입력의 시작 = 키캡의 촉감과 키압을 느낌 (ㄴ) 키압의 최고점(러버돔)/촉각 구분점(tactile)/입력 전 지점의 키압(리니어)을 느끼면 이전 경험을 토대로 곧 입력될 것임을 예상 (ㄷ) 입력점 = 클릭음/촉감/모니터를 통해 결과를 확인 (ㄹ) 다음 입력을 위해 준비. 이 때 러버돔 방식이라면 ‘ㄷ’과 ‘ㄹ’ 사이 혹은 ‘ㄷ’ 시점에서 완전히 바닥에 닿게 되며, 기계식의 경우 입력 이후 더 내려가는 약 2mm에 대해서 타법에 따라 다른 예상을 합니다. 구름타법이라면 미리 적응된 적정 키압을 예상하고 이에 맞추어 손가락의 힘이 조절되며, 파워타건을 하거나 키압이 낮거나 하면 곧 바닥을 칠 것으로 예상하고 이 ‘충격?’을 각오하거나 대비하겠지요(이 단계는 ‘ㄹ’에 해당하겠습니다.). 그리고 ‘ㄹ’이후로 다음 타건을 위해 손가락이 올라가면서 키가 가지는 반발력을 기대하고 또 느끼게 됩니다. 

 위 내용을 토대로 비교를 해 보면, 일반 팬터그래프에 비해 슬림형 치클릿 키보드는 ‘ㄴ’과 ‘ㄷ’ 단계 사이가 더 짧습니다. 손가락이 움직이는 거리 자체도 그러하거니와, 특히 러버돔이나 tactile키보드처럼 키압의 고점이 있는 경우 그 지점을 넘어가기 위해 손가락에 준 힘의 여력이 있어 그 다음 스트로크가 비교적 빨리, 떨어지듯 지나가게 됩니다. 즉 손가락이 움직이는 속도도 어느 정도 있다는 이야기이지요. 따라서 슬림형 치클릿 키보드를 타건 할 때, 일반 키보드나 일반 팬터그래프 키보드에 익숙한 감각을 바탕으로 ‘ㄴ’ 단계에서 하는 예상보다 빨리 바닥을 치고 입력이 됩니다. 결국 미처 ‘바닥을 치는 충격’에 대비하기 전에 그 감각이 전달되고 이는 참 오묘하게도 불쾌감이 됩니다. 여기에 앞서 이야기한 바닥 칠 때의 느낌의 다름까지 가세하면 돌처럼 딱딱하진 않지만 그렇다고 안 딱딱하지도 않은 어중간한 바닥을 그냥 치는, 개인적으로 꽤 싫어하는 느낌이 듭니다. 

 

 0.5mm도 안될 스트로크의 차이가 오묘하게도 호불호를 가르는 결정적 차이를 만든다는게 참 신기합니다. 사실 대구촌놈님의 M800과 그램의 비교리뷰에서도 그램은 일반 기계식에 가까운 느낌이었다면 M800은 좀 더 팬터그래프에 가까운 느낌이었다고 평하였는데, 이것도 0.5mm의 차이가 만들어내는 마법이었죠. 그램도 키압이 높은편은 아니라서 그냥 타건을 하다보면 자연스럽게 바닥을 치게 되는데, M800과 그램 사이의 이 바닥을 칠 때 까지 손가락이 얼마나 움직였는가 하는 정보를 뇌가 받아들이고, 앞서 이야기한 ‘ㄱ’에서 ‘ㄹ’에 이르는 과정동안 손가락이 얼마나 움직이는가? 에 대한 예상과 비교하면서 판단하는 부분인 듯 합니다. 이 때 실제 감각과 비교의 대상이 되는 ‘예상’의 값은 제가 여지껏 겪어온 키보드들의 기억에 바탕을 두는 것일 겁니다. 결국 일반 기계식 키보드의 4mm와 일반적 팬터그래프의 약 2.5mm의 사이의 중간값이 3.25mm이니, 3mm의 M800은 팬터그래프에 더 가깝게 느껴지고, 3.5mm의 그램은 일반 기계식에 가깝게 느껴진 것이 아닐까요?


4. 스트로크와 키감의 상관관계 – 키압 느끼기


 언젠가 체리 은축의 감각을 이야기 한 글 중에서 손가락에서 느껴지는 키압이 어느순간 수직상승하는 듯하다.. 란 평가를 한 글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죄송스럽게도 어느분의 글인지는 기억나지 않는군요..) 저는 체리 은축을 써 본 적이 없습니다만, 저 감상에 관하여 키 스트로크와 키압을 느끼는것에도 상관관계가 있는 것 같아 썰을 더 풀어 봅니다. 제 기억에 M800의 경우도 처음 들어가는 힘에 비해 바닥에 닿을 즈음 해서 느껴지는 반발력이 어쩐지 예상보다 더 쫄깃함이 느껴졌었습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또한 줄어든 스트로크와 그에 맞추어서 만들어진 스프링의 차이 때문에 생긴 변화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 결과가 3.-바닥치기 에서도 주요하게 다룬 주제인 ‘학습된 예상값’사이의 차이를 만들기 때문이지 않을까 합니다. 

 먼저 체리 적축/흑축/은축의 압력 그래프를 비교해 보면...


cherrylinear.jpg


흑축은 약 40g에서 시작하여 약 80g까지 상승하며, 대략 10g/mm의 키압 상승률을 보입니다. 적축은 약 30g에서 시작하여 약 60g까지 올라가며, 대략 7.5g/mm의 키압 상승률을 보이며, 은축은 스펙상 1.2mm지점에서 45g에 약 30g에서 시작하므로 15g/1.2mm = 12.5g/mm의 상승률을 보입니다. (여기서 체리 은축이 적축보단 흑축에 더 가까울 것이란 예상을 합니다만, 실제 써 본적이 없어서..) 

 사실 타자를 칠 때 머릿속에서 염두에 두는 것은 입력되는데 얼마만한 힘이 필요한가 이며, 비교적 빠른 손가락의 움직임 상 거의 일정한 힘이 들어가게 됩니다. 다만 타건 과정에서 손가락에서 느껴지는 스프링의 압력 변화와 학습된 스트로크의 길이, 그리고 처음 타자를 칠 때 예상하는 바닥지점 혹은 (구름타법에서) 손가락을 땔 지점(이하 입력 종료점)에서의 압력 등의 정보가 함께 스위치의 ‘무게’와 ‘쫄깃함(=반발력)’에 대한 감각이 될 것입니다. 이 때 스트로크가 짧으면 기존 스위치에서 학습된 지점보다 먼저 입력종료점에 해당하는 정보를 얻게 되고, 이는 갑작스런 키압의 상승으로 느껴질 수 있습니다.


stop.png


 위 그림에서 파란 화살표는 타건시 손가락에 가해지는 힘이며, 노락색은 스프링의 반발력을 임의로 표시한 것입니다. 이 경우는 구름타법을 하는 경우를 상정한 그림인데, 스트로크 표시선 아래의 일반 스위치의 경우 입력점인 2mm를 지나 3mm주변(실제론 3-4mm 사이일 것 같습니다만)에서 처음 예상한 키압 지점에 이르고, 이는 학습에 의해 설정된 입력 종료점으로써 다음 타자로 넘어가게 됩니다. 이 지점을 지나 좀 더 누르게 되면(가장 오른쪽) 커진 반발력과 실제 손가락에 들어간 힘 의 차이(주황색)가 느껴지게 되고, 이는 키압의 상승으로 느껴지게 됩니다. 이 때 이 차이가 실제 압력의 증가분보다 크게 느껴질 수 있는데, 이것은 기본적으로 인간의 감각이 절대적인 수치보다 전후의 차이에 더 민감하기 때문입니다. 

 이에 대비하여 스트로크 표시선 위의 경우(그림을 그릴땐 체리 은축을 상정했습니다.), 전반적으로 키압 상승률이 높으며, 따라서 입력종료점에 대한 정보도 더 빨리 오고, 초기 설정된 손가락 힘보다 큰 반발력을 느끼는 지점도 더 이릅니다. 이 차이로 인해 아마 처음 은축을 접한 사용자가 ‘갑자기 키압이 상승한다’라고 했을 듯 합니다. 그리고 제가 느낀 그램과 M800의 바닥지점에서이 예상보다 큰? 괜찮은? 쫄깃함의 이유이기도 할 것 같습니다. 


 결국 짧은 스트로크의 스위치에서 스프링 상수값이 큰 스프링을 채용한 것이 이 파트 시작지점에서 이야기한 짧은 스트로크 스위치가 갖는 예상외의 반발력의 원인일 것입니다. 그럼, 제조사가 이런 스프링을 채용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사실 이건 좀 자연스러운 흐름인 듯 합니다. 이 짧은 스트로크의 스위치들은 마케팅상 “빠른 입력”을 강조하는데, 그럼에도 사용자의 기존 경험은 고려해야 하기에 입력점에서 기존 스위치의 일반적 키압인 45g을 맞추어야 합니다. 이에 1.5mm지점에서 45g을 맞추고, 다시 기존 경험을 토대로 입력 시작점에서의 키압도 기존 스위치 값인 30g언저리가 되도록 스프링을 설계, 사용하면 키압 상승률은 10g/mm가 되고, 이는 흑축과 같은 기울기가 됩니다. 결국 적축의 경험에 맞추어 스트로크를 줄이려니 스위치의 키압상승률 특성은 흑축이 되는 것이지요. 

 

 이 비교적 큰 값의 키압 기울기가 언 듯 처음 적응시점에서 거부감을 줄 듯 하나, 실제론 키 입력의 정보를 잘 전달해 준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손가락이 움직인 정도에 대한 감각이 비교적 적기 때문에 이를 보충하기 위한 입력점에 대한 정보가 필요한데, 기존 체리사의 짧은 스트로크 스위치인 ML의 경우 키 입력의 정보를 촉각 구분점을 두는 방식을 사용했습니다. 하지만 리니어 스위치는 이런 구분감이 없으므로 아예 바닥을 치는 파워타건을 하지 않는 이상 높은 키압의 상승률 덕에 빨리 느끼는 적정 수준의 반발력은 꽤 괜찮은 피드백으로 작용합니다. 이러한 입력유무에 대한 감각의 정확성은 입력의 정확성과 ‘재미’에 작용합니다. 만약 적축 스프링을 그대로 사용하면서 입력점만 바꾼 것이면 ‘손가락만 스쳐도 입력되겠다’나 ‘낮은 반발력 때문에 일반 타자에 별로일 것 같다’ 등의 은축에 대한 정보가 짧은 스트로크 정도로만 알려졌을 때 몇몇 분이 걱정하던 것이 현실이 되었을 것 같습니다. M800의 키감이 부드럽고 가벼우면서도 일정수준의 기계식스러운 쫄깃함을 보여준 이유가 여기에 있지 않을까 합니다.


 음.. 소설은 이쯤하고 실제 제 경험으로 돌아와서, 그램의 경우는 (의도치 않은)촉각 구분점 이후 떨어지는 키압 때문에 더 그렇게 느껴지는 것도 있습니다만, 키를 천천히 눌러서 촉각 구분점이후의 ‘리니어’한 부분을 위아래로 움직여 보면 키압이 좀 세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Agile Red의 제조사가 제공하는 압력 그래프를 보면 마지막 0.3mm정도 압력이 –아마 스프링의 형상 때문에- 급수그래프 처럼 증가하는 부분이 있는데 이건 너무 짧아서 거의 느껴지진 않습니다.) 이건 Agile Red의 경우 적축의 키압 그래프에서 뒷부분 3mm를 가져다 쓴 것처럼 약 40-60g의 범위를 가지면서 바닥 지점에서 절대적인 키압이 어느정도 되기 때문이며, 손가락은 키압의 변화 차이보다(촉각 구분점이 있단 사실도 한 몫 거들어서) 이 바닥 키압의 절대적 크기에서 기계식 스위치 스프링이 주는 쫄깃한 반발력을 느낍니다.


5. 정리 – 적응의 문제

 주절주절 너저분한 이야기를 했지만 결국 인간은 적응하는 동물이라 키보드도 뭘 쓰든 쓰다보면 그냥저냥 잘 쓰기 마련입니다. 물론, ‘가장 좋은 키보드는 본인에게 맞는 키보드’란 말도 있듯이 그 적응이 잘 되고 편안한 개개인의 ‘스윗 스팟’은 있습니다. 그리고 도저히 적응이 안되는 부분도 있지요. 3.과 4. 파트에서 이야기한 장황한 소설도 결론은 기존 키보드와의 차이점이 크게 느껴지기 마련이다.. 정도로 결국 자기가 쓰는 키보드에 적응하고 나면 딱히 신경쓰이지 않게 될 문제들입니다.(아.. 하지만 저 얇은 노트북 키보드는 도저히 좋아할 수 없어요.ㅠ) 사실 객관적/인체공학적으로 정말 별로인 물건이 아니라면(또한 대부분의 스위치/입력방식/키보드가 그렇지 않을 것이고) 각각의 차이가 주는 재미야 말로 키보드 애호가들이 그렇게 다양한 키보드를 찾아 헤매는 이유 아니겠습니까? 


사족. 그래서...

 이 글을 쓰다 보니 체리 은축이 어떤 느낌일지 정말 궁금해 집니다. 

 비슷한 ‘빠른입력’스위치이면서도 tactile인 Romer G도 아래 그림처럼 압력 그래프만 보면 좀 둥글둥글해진 ML인데(하필 키압 자체도 비슷한 범위네요..) 어떤 느낌일지 궁금하네요.

Omron romer-G(for logitech) compare to cherry brown.png



 더해서, 체리 뉴백축도 그래프를 보면 입력점에서 키압 자체는 높지만 압력의 기울기는 적축과 비슷하거나 오히려 완만한 것으로 보이는데, 절대적 키압과 키압의 상승률이 짧은 스트로크의 스위치와는 반대로 작용한 경우라 이 또한 궁금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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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는가 봅니다..허허...(하지만 저에겐 총알이 없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