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들어 팬더그래프 키보드(중에서도 미니타입)을 모으는 취미에 몰두하던 중, 어차피 팬더의 키감은 좋건 나쁘건 다 비슷비슷하니 특이한 것이나 모아보자는 생각에 장터를 뒤져봤습니다.

마침 Typematrix의 2020과 2030 모델이 장터에 나와있는 상태인데, 2030은 가격이 좀 세고 이 모델들이 중고 회전율이 높다(사람들이 전혀 적응을 못한다)는 인상을 받게 되더군요.

그래서 일단 2020을 사서 써 보았는데... 제가 산 2020은 사진에 나온 것 과는 달리 좀 더 초기형 키배열로, 차이를 보자면 중앙의 큰 키 두개가 다 엔터(후기형은 하나가 탭이죠), 딜리트는 F8 자리에 있고 후기형의 딜리트 자리에는 캡스락이 있습니다. (쓸모도 없는 캡스락이 두개 --) 좌하단 키배열도 캡스, 컨트롤, 알트라는 황당한 순서를 자랑합니다. 가장 골치아픈건 F1~F12를 쓰려면 펑션키를 눌러줘야하는데, Alt+F4 누르기가 참 힘들다는 것이었죠. -_- (후기형에서는 딜리트, 컨트롤, 펑션키 문제가 해결되었더군요)

초반에는 엄청나게 적응에 애를 먹었습니다. 격자 키배열로 인해서 sdf jkl 키 부분을 기준으로 이전 습관을 따라 치면 tybn qpz\에서 오타가 쏟아지더군요. 키 사이의 거리가 틀리다보니 어쩔 수 없는 것이라고 생각하며 일주일 정도 계속 쓰니 생각외로 손도 어느정도 편해지는 것 같고 타이핑 속도도 정상 수준으로 되돌아 왔습니다. 분리된 스페이스바와 키보드 중앙에 있어 양손 검지로 각각 칠 수 있는 엔터, 백스페이스가 생각보다 훨씬 편한 느낌을 주더군요.

...여기까지는 괜찮았는데 한참 typematrix를 쓰다가 일반 키보드를 다시 붙잡으니 일반->2020 수준은 아니지만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의 오타가 나기 시작합니다. 아, 사람들이 왜 오래 못쓰고 파는지 이유를 알겠구나 싶은 순간이었죠. 양쪽을 자주 번갈아가며 쓰려고 하지만 어느 한 쪽에 치우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것 같습니다. 2020이 제 손에 잘 맞아서 이쪽 중심으로 치고 싶어지는 감도 있고..

typematrix를 쓸거면 이 종류 말고는 못쓰겠구나 싶은 생각이 들어 이번에는 장터에서 2030을 7만원에 입양하였습니다. 이 자리를 빌어 싼 가격에 양도해주신 주영표님께 감사드립니다.

2030은 일단 2020 후기형의 키 배치를 계승하면서 컴팩트한 사이즈와 디자인이 강조된 모델입니다.
주요 키에 돌기가 잘 만들어져 있어 2020에서 2030으로 옮기는 것은 상당히 수월했습니다.
다만 2030의 키감은 2020에 비하면 좀 더 떨어지더군요. 2020의 키감이 IBM ThinkPad와 상당히 비슷한 탄력을 주는데 비해 2030은 키감이 약간 떨어집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키의 감촉보다는, 키를 완전히 눌렀다 뗄 때 "찌꺽찌꺽" 하는 잡스러운 소리가 나는 키와 그렇지 않은 키가 섞여있더군요.
날 잡아서 다 뜯어낸 다음 윤활유 바르고 줄로 갈아주면 괜찮아질 것 같긴 한데 팬더그래프 특성상 분해하기가 상당히 꺼려져서 아직 손을 못대고 있습니다. (키캡 뜯다가 부러질까봐...)

타이핑의 편의성에 있어서도 2030은 2020보다 조금 떨어집니다. 키 배치를 보면 오른손 4,5 손가락으로 엔터를 치는 것은 상당히 불편하다보니 중앙 엔터를 자주 활용하게 되는데 양손 손가락이 서로 겹쳐서 상당히 좁다는 느낌을 받게 됩니다. 오른쪽 Alt, 왼쪽 Ctrl 사이즈가 일반 키캡 사이즈라서 특수키 조합을 자주 쓴다면 꽤 스트레스를 받기도 하고...
하지만 2030의 컴팩트한 사이즈와 디자인은 편의성을 약간 희생해서라도 쓸만한 가치가 있는 것 같군요.

종합하자면, 2020 초기형은 불편한 키배치, 2020 후기형은 초기형에 비해 많이 개선되었지만 중앙의 엔터키 중 왼쪽을 탭으로 바꾼 것이 적절한 선택이었는지에 대한 의문, 2030은 디자인은 만점을 줄만하지만 키의 감촉이 좀 떨어지고 특수키 사이즈도 대부분 줄여버린 만큼 쓰기에 좀 피곤하다는 단점이 각각 있는 것 같습니다. 가격도 비싼 편인데 2020은 싸구려 느낌이 나는 디자인에 소재라는 점, 2030은 가격에(신품으로 구한다면 나브 트래블과 맞먹는 가격인데) 걸맞지 않는 키감이라는 점이 각각 마이너스 요소군요.

일단 격자 배열에 익숙해지면 일반 키보드를 쓰는게 힘들어지니 새로운 체험(?)을 하려면 확실한 결심이 필요해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