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리얼포스 101의 스펙이나 사진 등은 리뷰란이나 다른 사용기에 많이 있기 때문에,
제 경험만을 적도록 하겠습니다.

4-5년째 아론의 106S 클릭을 써오다 손가락 통증에 따른 사용상 한계를 느끼고 있던 중,
옆에서 키보드 교체를 충동질 하는 바람에 이곳 "질문과 답변"란에 다음과 같은 질문을 올렸습니다.
http://www.kbdmania.net/board/zboard.php?id=qna&page=1&sn1=&divpage=1&sn=on&ss=on&sc=on&keyword=%B7%F9%C5%C2%C1%DF&select_arrange=headnum&desc=asc&no=2618
질문의 요점은 이렇습니다.
"키에 손가락을 올리는 것 만으로도 부드럽게 눌리고 바닥에 닿더라도 퉁하고 튕기는
느낌 보다는 푹신한 느낌의 키보드가 있을까요?"

답변으로 대부분(몇분 안되긴 하지만) 리얼포스를 추천하시더군요.
사용기나 리뷰를 통해 접한 키감은 "구름을 노니는 듯한" 가볍고 무른 키감이라는 것이었습니다.

15년 이상 혹사시키는 바람에 이젠 조금만 타이핑을 해도 통증을 느끼는 손가락들을 위로할수 있는
바로 그 키보드구나라는 생각에 거금을 들여 구매대행으로 일본에서 리얼포스 101을 구매했습니다.

약 3주만에 도착한 키보드를 설치하고 손가락을 올리는 순간... (ㅠ.ㅠ)
키하나 눌러보지 않았음에도 바로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이게 아니야!!!

제가 원하는 건 "손가락을 올리는 것 만으로도 부드럽게 눌리는 것"이었는데,
손가락을 올리는 것만으로는 조금도 눌리지 않습니다.
아시다시피 리얼포스 101은 각 키가 55/45/35g으로 서로 다른 키압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중 35g 키압을 가지는 키들이 제가 원하는 수준에 조금 가깝고(70% 정도)
55/45g 키압을 가지는 키들은 전혀 기대이하입니다.

운전하시는 분들은 "유격"이라는 것을 잘 아실겁니다.
브레이크의 경우 발을 얹어놓기만 해도 발의 무게 때문에 살짝 눌리게 되는데,
이때 무조건 브레이크가 작동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기 때문에 처음 어느 정도 눌리는 것으로는
브레이크가 걸리지 않도록 합니다.

이렇게 실제로 브레이크가 작동하기 까지의 여유를 "유격"이라고 하는데,
제가 원하는 키감은 이런 유격이 약간(0.5 ~ 1mm) 존재하면서,
브레이크에 발만 올려도 유격의 범위에서 브레이크가 살짝 눌리는 것처럼
손가락을 올려놓기만 해도 키가 유격까지 눌리며,
유격이 끝나는 순간부터 바닥에 닿을 때까지의 어느 부분에서 손을 떼어도 키가 입력되는
그런 것입니다.
그야말로 손끝이 키에 닿기만 하면 입력이 될 정도의 깃털같은 키감인 것이죠.
좋은(일반적으로 좋다고들 하는) 기계식 키보드가 주는 키감과는 거리가 아~~~주 멀지만
손가락 통증이 관심사의 99%인 제게는 정확한 키 입력의 감지나 가볍게 튕겨주는 것 같은
일반적인 명품 키보드의 키감은 채 1%의 관심도 안되는 상황입니다.

그런데 리얼포스 101에는 그런 가벼운 유격이 존재하지 않을 뿐더러 약간이라도 눌러지려면
55/45/35g의 압력이 확실히 가해져야만 합니다.
55/45/35g의 압력이라는 것이 비교적 가벼운 압력이고, 일단 그 압력이 가해진 다음에는
가볍게 눌려지므로 확실한 키 입력을 구분할 수 있으며, 손가락의 힘에 따라 다양한
압력으로 분류해 놓았다라는 장점 때문에 대부분의 사용자들이 "구름을 노니는 듯한"
키감을 느끼면서 즐겁게 타이핑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제게는 55/45/35g 조차 무거운 압력이고,  일정한 수준의 타수를 얻기위해(300타 정도에 만족)
키를 약간 무겁게 두드려야 하기 때문에 (바닥에 닿지 않을 정도로 최대한 가볍게 누르더라도)
여전히 손가락이 아픈 상황을 초래하는 별볼일 없는 키보드인 셈입니다.
다른 사람들이 타이핑을 해보고 감탄하는 것으로 봐서 불량으로 보이지도 않습니다.

아직 1주일도 사용해 보지 못한 상태라 조금 더 사용하면 자동차나 음향기기처럼
에이징이 되면서 뭔가 달라질지 모르겠지만, 지금 상태로는 오히려 전에 사용하던
아론 106S가 손가락을 덜 아프게 하는 것 같습니다.
장시간 사용시 집에서 사용하는 컴팩 키보드보다 통증이 심할 것이 확실해 보입니다.
1주일 쯤 사용해 본 후에도 여전히 같은 느낌이라면 아론으로 돌아가야 할지도 모르겠네요.

이번 일을 겪으면서 새삼 느낀 것은 역시 키보드처럼 개인편차가 큰 종류는 돈들이기 전에
한번쯤 경험해보고 사야한다는 것입니다.
리뷰나 사용기는 개인적인 감정이 이입되거나 자신에게 적용해서 평가하기 힘든
객관적 자료의 나열이기 쉽기 때문에 (저처럼 35g이라는 수치에 혹한다든지... )
제대로된 평가를 내리지 못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저도 한번만 눌러볼 수 있었으면 절대 사지 않았을 겁니다.

일반적으로 많은 사람들이 가치를 인정하는 리얼포스 101은 확실히 좋은 키보드일 것입니다.
하지만 제 글을 읽으시는 분들은 남들에게 좋다는 것이 자신에게도 좋은 것은
아닐 수 있다는 것을 다시 한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저처럼 20만원을 훌쩍 넘기는 비용을 키보드에 투자해서 1-2만원의 효과만 보기에는 너무
큰 부담이기 때문입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