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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프레 계열 키보드는 써드파티 키캡이 전무하다싶이 하기에 키캡놀이가 거의 불가능합니다. 설상가상 레오폴드는 토프레 계열 키보드의 순정 키캡을 별도로 판매하고 있지 않고, 리얼포스의 경우는 순정 키캡을 값비싼 가격에, 그것도 매우 제한적인 수량으로 판매하기 때문에 품귀 현상에 웃돈까지 부르게 되는 것은 기본이고, 태양을 일정한 주기로 공전하는 별들을 관측하듯이 "마지막으로 리얼포스 키캡 물량이 풀린 것이 ~년이고, 그 전은 ~년이었으니 이제 올해에 물량이 풀릴 것입니다!"라고 예측하는 글까지 봤습니다. 웃기면서 웃지못할 상황이 벌어지는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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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웃긴 듯 웃기지 않은 상황에, 예상치도 못한 3가지 부분에서 저는 놀라게 되었습니다.
첫째로, 독자적인 레이아웃과 키감을 선사하며 도도한 매력으로 충성심 넘치는 팬층을 가진 해피해킹 시리즈의 키캡이 별도로 일본 아마존에서 판매되고 있다는 사실은, 처음부터 기대조차 하지 않았기 때문인지 충격으로 다가왔습니다. 


두번째로 놀랐던 점은 모든 종류에 걸쳐서 재고수급 문제 없이 키캡이 판매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리얼포스의 곁다리식 옐로우/오렌지 컬러키캡 세트가 아닌 백각/백먹각/먹각/먹무각 전 모델을 안정적인 재고로 구매할 수 있었습니다.


세번째는 가격입니다. 체리 계열에서 PBT 먹각 + 염료승화 한 세트를 구매하려면 하한선으로 7만원은 줘야하는게 중론이며, 토프레의 특수성을 감안하면 더욱 더 비싸져야 인지상정이고 실제로 리얼포스 키캡은 10만원을 훌쩍 넘기는 가격을 보여줍니다. 하지만 놀랍게도 해피해킹 키캡세트는 (배대지 이용 시) 한화로 5만원 안쪽으로 구매할 수 있으며, 저는 장터에서 미사용품을 5만5천원에 구할 수 있었고 편의점택배로 하루만에 수령했습니다.


불운으로 키캡을 하나라도 분실하게 된다면 "내 돈을 가져가 !!"라고 외치며 허공에 돈을 던져도 키캡을 구할 수 없는 토프레 계열이기에, 해피해킹 키캡 전모델을 합리적인 가격에 구매할 수 있다는 사실은 크게 칭찬받아 마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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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번달에 제가 구매한 FC660C는 참 독특한 매물이었습니다. 3세대 그레이 PBT승화 모델이었음에도 불구하고 Ctrl-Caps 교체 키캡은 분실된 상태였고, 설상가상 WASD키와 방향키는 포인트 키캡으로 교체된 채 원본 키캡은 역시 분실된 상태였습니다. 그나마 볼만한 점은 좌Alt를 제외한 모디열이 다이론 염료로 염색되어 있는 상태였다는 점이겠지요. 오늘은 위에서 보여드린 해피해킹 키캡을 이 FC660C에 적용시켜볼 예정입니다.

(하우징 역시 우여곡절이 많았지만 이는 다음 포스트를 위해 아껴두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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겉면에서 보이는 패키징의 로고. 간단한 한 쪽짜리 설명서의 레이아웃, 폰트 및 아트워크. 키캡 리무버가 거치되도록 설계된 상자의 구조만 보더라도 "일본 회사가 신경쓰고 만든 물건임이 틀림없다"는 것을 알 수 있을만큼, 디테일에 소소한 기쁨을 느끼시는 분이라면 감상할 만한 가치가 있는 구성이라고 생각됩니다.

따지고보면 별 것도 아닌 물건이고, 크게 비싸지도 않은 물건인데도 뜯어보는 재미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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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의 목적은 FC660C에 적용시키는 목적이었으므로. 원본 키캡과 비교를 해봤습니다.

체리 계열에선 DSA 프로파일 < DCS (체리) 프로파일 < OEM (마제스터치) 프로파일 < SA 프로파일 순으로 키캡의 두께가 증가하지만, LED는 커녕 써드파티 키캡의 사치를 부릴 겨늘이 없는 토프레 계열은 단 하나의 프로파일만을 공유하는 듯 싶었습니다. (리얼포스는 접해본 경험이 없어 확답은 못하겠군요) 

FC660C와 해피해킹은 동일한 높이와 모양의 키캡을 공유하며, 서로 완벽히 호환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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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디열만 적용시킨 모습입니다. 좌Ctrl과 윈키는 전 주인분이 하신 자가염색, 좌Alt는 660C 순정, 그 위로 보이는 키들은 해피해킹 먹각입니다. 자가염색보다 프린팅이 훨씬 선명하게 보이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둘은 동일한 PBT 염료승화 키캡임에도 불구하고 해피해킹의 그것은 PBT스러운 오돌토돌하고 매트한 질감이 살아있으며, 660C의 키캡은 더욱 가공을 한듯한 맨들맨들하고 부드러운 질감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해피해킹의 매트한 느낌을 선호합니다만, 개인 취향에 따라 갈릴 수 있는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레오폴드와 PFU가 PBT라는 소재를 다루는 시각차가 흥미롭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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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디열을 적용시킨 뒤 만족할 것이라는 확신이 들어 전체적으로 해피해킹 키캡을 FC660C에 적용시킨 모습입니다. 교체 전과 비교하면 훨씬 더 스텔스한 느낌이 강해져 마음에 드는군요. 

해피해킹의 독특한 레이아웃 덕분에 백스페이스, 우측 쉬프트, 하단 1.5U 모디열 6개 키, 방향키와 Delete 키를 커버할 수는 없었지만, 역슬래쉬 키는 해피해킹의 Delete로 대체할 수 있어 다행입니다.


확실히 ABS 재질의 스페이스바는 시각적으로 그리고 청각적으로 이질감이 있습니다. 스페이스바의 내부는 보강 처리가 되어있어 한성의 ABS 스페이스바처럼 누른다고 찌그러지거나 휘진 않습니다. 익히 알고계시다시피 소음 억제작업 시 지우개나 폼을 네모 모양으로 재단해서 잘라넣기 편하게(...) 되어있다는 점은 우연치 않은 보너스겠지요.


전 주인분께서 자가염색을 하신 덕분에 주의깊게 보지 않는다면 먹각과 자가염색을 크게 알아차리지 힘들 정도로 나름 균일한 색상을 보여줍니다. 이렇게 키캡을 장착한 뒤 저는 그 자리에서 다이론 염료를 주문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염료가 도착하는대로 염색이 채 되지 않은 좌Alt와 방향키를 염색해보려고 합니다. 

해피 키캡은 대만족이며, 다음 목적지는 자가염색입니다만, 그 전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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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을 뽑은 김에 미루고 미루던 660C의 정비도 끝내버려야겠다는 생각으로 기판을 들어내 봤습니다. 

첫번째로 살필 부분은 스테빌라이저의 잘못된 윤활 교정, 두번째로 살필 부분은 스프링 윤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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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타이핑 습관 상 우측 쉬프트만을 자주 사용하는데, 어느 날부터 서걱서걱거리는 소리와 함께 쉬프트가 뻑뻑하게 들어가는 증상이 생겨서 크라이톡스 107로 슬라이더와 하우징이 만나는 측면을 윤활한 적이 얼마전에 있었습니다. 

결과는 참담했고. 키감이 안좋은 느낌으로 찐득찐득해져 매우 불쾌한 키감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107의 점도가 슬라이더 마찰면에 쓰기에는 너무 높다라는 결론으로 다시 분해를 시작했습니다. 

슬라이더와 하우징을 탈착한 뒤 안에 남아있는 크톡107을 비누칠로 닦아낸 뒤 면봉으로 남아있는 물기를 제거한 후 처음부터 윤활을 다시 진행했습니다. 스테빌라이저 철심이 하우징과 만나는 부분은 크톡 107로, 슬라이더와 하우징이 만나는 부분은 저번의 실수를 교훈삼아 점도가 낮은 103으로 윤활했습니다. (아쉽게도 크톡 205는 아직 구하지 못했습니다)


결과적으로 전처럼 찐득거리지 않고 반응성있게 키캡이 다시 리턴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아무래도 기본 윤활을 제거한다는 것은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넌다는 심리적인 압박감이 있습니다. 그래서 슬라이더 2개는 비누로 모든 윤활을 제거하고 윤활했지만 시험삼아 나머지 2개는 기본 윤활이 되어있는 상태에서 추가로 작업을 했는데, 모든 윤활을 비누로 제거한 뒤 크라이톡스를 재도포하는 편이 훨씬 깔끔하다고 느껴져서 다음 분해할 일이 생긴다면 그 부분까지 같이 진행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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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접점 키보드는 특성상 스프링이 접하지 않기 때문에 이론적으로는 소음이 발생하지 않는 구조입니다만, 대구촌놈님이 쓰신 여러 글들을 읽어보면 금색 도금이 되어있는 스프링이 아닌 은스프링의 경우 스프링 소음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는 내용이 있습니다. FC660C는 전량 은색 스프링이 적용되어 있으며, 스프링 소음의 발생 여부는 복불복으로 알려져있습니다.

기판 위에 얹어진 러버돔을 누르며 "내 FC660C도 혹시나...?" 싶었는데, 역시나였습니다.


스프링 윤활에 관한 가이드는 팁&테크 게시판에 이미 많이 올라와있지만 저는 저만의 효율적인 방법을 찾게되어 공유 차 올려봅니다. 먼저 많은 분들이 하시는 봉지 윤활은 봉지의 표면적이 넓기 때문에 아까운 크라이톡스를 필요 이상으로 넣게되고, 윤활 후에 비닐봉지를 버리기에도 아까운 상황이 됩니다. 또한 스프링이 겹칠 수 밖에 없기에 그것을 분리해내는 것도 번거롭고, 스프링을 하나하나 분리하다가 손에 윤활유가 묻으면 그것도 아깝고, 무엇보다 그렇게 분해하다가 스프링을 잘못해서 늘어트릴 수 있다는 위험이 있어서 저는 일회용 접시에다가 하나하나 윤활하는 방법을 택했습니다.


접시의 빈 부분에다가 크라이톡스 103과 107을 3:1로 섞은 윤활액을 두 방울정도만 올려둔 뒤, 넓은머리 핀셋이나 면봉으로 스위치를 아랫 방향으로 누른 다음에 빈 부분을 두어번 왔다갔다 해주면 스프링에 고르게 윤활이 적용됩니다. 간단하고 빠르고 효율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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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앱코 무접점에서 넘어온 막귀에 막손인지라 "이정도만 해도 충분히 만족이다", "토프레 무접점이 원래 이런 소리를 내는게 아닐까?" 싶어서 660C에 스프링 소음이 있는지 없는지 구분하기가 힘들었습니다. 

그래서 스프링 윤활을 하는 도중에도 많은 고민을 했는데, 마치 구름에 가려진 산을 등반하는 느낌이었습니다. 내가 가고있는 길이 맞는건지, 산의 정상에는 무엇이 있는지 전혀 알수가 없었고, 무접점 스프링 윤활의 특성상 원상복귀가 불가능함은 그 부담감을 더하는 요소였습니다. 하지만 윤활을 마친 지금은 너무나도 또렷해진 타건감정갈해진 소리에 크게 만족하고 있습니다. 

스프링 윤활을 고민하고 계시는 분이라면 추천드리고 싶지만, 심사숙고하여 진행하셔야 할 것입니다



마지막은 지금 저에게 남아있는 키보드 세 대와, 지금 깨작깨작 만들어보고 있는 66% 하우징을 같이 가족사진처럼 담아봤습니다. 66%는 개인적으로 애착이 많이 가는 레이아웃이라서 레오폴드가 조금 더 힘을 써줬으면 하는 바램이 있네요.


다음 포스트는 "FC660C 하우징 도색 및 OHP 스텐실"이나 "PBT 키캡 다이론 자가염색"이 될 것 같네요. 처음 써본 글인데 재밌게 읽으셨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