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에 우연히 구한 아론 키보드 KB-A103S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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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보드 뒤에 94년이란 숫자가 10년의 세월을 말해 주고 있습니다.

그 10년이란 세월이 키보드를 엉망으로 만들어 놓았습니다.
엄청난 먼지와 각종 오염물들로 인해 처음 키를 눌렀을 땐 키보드의 키가 아니라
무슨 뻑뻑한 버튼들을 누르는 것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큰 맘을 먹고 키보드의 키감을 모두 되살려 보자 결심하고 작업에 착수 했습니다.
작업 순서는
1. 분해-> 2. 세정 -> 3. 루빙(윤활) -> 4. 조립
으로 정하고 분해를 했습니다.

역시나 어마어마한 먼지와 세월의 때가 키보드 곳곳에 뭉쳐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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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의 알코올 램프 비슷하게 생긴건 정량인출기라는 것입니다. 머리 부분을 지긋이 누르면 정량의 알코올이 나와 티슈에 묻게 되는 겁니다.)

알코올을 이용해서 키하나하나를 깨끗하게 세정했습니다.
아무리 닦아도 10년의 세월은 다 닦아낼 수 없었습니다.

깨끗하게 세정된 키보드 본체와 키들을 보면서 정말 흐믓했습니다.
이제 조금만 있으면 10년전의 느낌과 만날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감......

가장 중요한 부분이 루빙공정이라 생각되었습니다.
축부분의 먼지는 모두 털어냈지만 아무래도 뻑뻑했습니다.

그래서 윤활유를 발라야 했죠. 중요한 건 윤활유의 선택이었습니다.
* 윤활유의 필요조건
1. 방청(도포 후 먼지 등이 잘 묻지 않아야 한다.)
2. 방습(도포 후 습기로 부터 도포 부분을 잘 보호 해야 한다.)
3. 접점 부활 및 전기적 충돌 방지(기판의 전기적 흐름을 방해하지 않는 오일이어야 한다.)
4. 점도(낮은 점도를 가지고 있어야 만 축 부분의 움직임을 최대한 방해하지 않고
        원할하게 할 수 있다.)
5. 윤활(높은 코팅력으로 잦은 움직임에도 도포한 오일의 수명이 길어야 한다.)

제가 가지고 있는 수많은 오일들 중(초정밀 반도체 장비 엔지니어 입니다.)
위의 목적과 기능을 충분히 만족시키는 오일을 선택했습니다.
바로 라스페네 입니다.

(초정밀 반도체 기기의 정밀한 움직임을 환상적으로 컨트롤 해주는 오일입니다.
뛰어난 코팅윤활 성능때문에 인라인 타시는 분들에게 소개 했었는데, 현재는
인라인 계에서도 그 성능을 인정받아 많은 분들이 사용하고 계시는 오일입니다.
좋은 제품인데 일반인들이 쉽게 구하지 못하는 것이라 제가 운영하고 있는 클럽요맨
에서http://kr.club.yahoo.com/yoyomania 정비용품구매대행을 해드리고 있기도 합니다.

라스페네를 면봉에 찍어서 축부분에 골고루 도포를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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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슈를 손에 감고 축부분을 여러번 눌러서 오일이 축부분 전체에 고루 묻을 수 있도록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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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작업을 마치고, 마지막 공정인 조립공정을 서둘렀습니다. 더러운 키들을 닦아내느라 너무 오랜 시간이 흘러 버린 후여서 달라진 키보드의 느낌을 느끼고 싶어서 안달이 났기 때문입니다.
서둘러 조립을 끝내고 젠더를(AT->PS2)이용해 키보드를 컴퓨터에 연결했습니다.

찰칵(오우 귓가를 깔끔하게 때리는 경쾌한 소리).
정비전의 키보드의 느낌은 쩔꺼덕, 찔꺽, 찔꺽, 하는 느낌이었습니다.
이것이 기계식 키보드인가? 하는 의문이 들 정도로 말이죠, 먼지와 세월의 때로 인해
거의 키감이 상실된 상태였으니까요.

깨끗해진 키가 손끝에 닿고 라스페네로 잘 윤활된 축의 움직임은 그야 말로 환상이었습니다. 10년의 묶은 때와 낡은 축의 움직임을 거의 회복시킨 듯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점도가 높은 오일이나 구리스를 도포하게 되면 오일이나 구리스가 윤활작용은 약간 하지만 축의 움직임을 방해하는 역활도 하기 때문에 키감이 살짝 죽는 경우가 있는데 라스페네는 점도가 거의 물과 같은 오일이면서도 코팅력이 강하기 때문에 기계식 키보드의 느낌을 그대로 살려주면서도 윤활작용으로 인해 낡은 축의 움직임을 완벽하게 보강해 주었습니다.

찰칵, 찰칵, 차카,차카,차칵,차그르르르를르르차가닥,
오호 멋진 느낌입니다. 10년이나 된 아론 키보드, 지금은 구할 수 없는 추억의 키보드가 멋지게 되살아 났습니다.
현재 제가 사용하고 있는 넌클릭 기계식 키보드의 키감보다 굉장히 가벼우면서
손가락이 달리는 느낌이 납니다.
너무너무 기분이 좋았습니다. 오래된 키보드를 만지는 느낌이란, 멋진 일인 것 같습니다. 금상첨화로 키감또한 마음에 들다니......오랫동안 이 오래된 키보드를 사용할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 DJ.HAN님에 의해서 게시물 이동되었습니다 (2004-03-08 09: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