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ML4100 을 구입하고 리뷰을 올리며 시작한 키보드매니아 생활이 벌써 5개월째로 접어 듭니다.
길다면 길고 여러 고수 분들에 비하면 턱없이 짧은 기간이긴 합니다만,
그동안 제 손길을 거쳐 간 아이들이 적잖군요.

ML4100
페이튼 FC100R 클릭
DAS3 무각 넌클릭
필코 마제 텐키리스 클릭
필코 제로 텐키리스
리얼포스 86UK

항상 그 때 그 때마다 좋았던 점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이 생활을 끊을 수가 없는 것이죠. ㅋ
이건 이 나름대로 좋고, 저건 또 저 나름대로 좋더라구요.
그래도 최고의 키보드는 운운- 하는 말들이 제게는 모두 다 쓸 데 없는 이야기였습니다.
오로지 하나, 아직 못 쳐 본 걸 쳐 보고 싶다는 욕망에 휘둘린, 질풍노도의 다섯달이지요. ㅋㅋ

그러나 역시 제 손에 가장 잘 맞았던 건 청축이었습니다.
CS 공학도인 제게, 마치 기계와 호흡하는 듯이 재잘거려 화답해주는 클릭.
터미널 창을 두고 클릭을 두드릴 때의 기분은 진짜 말로 표현이 잘 안 되는 것 같습니다.

아주 잠시 알청과 커스텀을 기웃거렸으나, 지갑 사정도 있고 해서 최종 마지노선으로 선택해 본 아이가 리얼이었습니다.
리얼로 두드리는 코드도 나름의 굉장한 맛(구름 사탕 맛- 쯤으로 표현하면 될까요? ㅋ)이 있더군요.
하지만 결국 이 녀석도 클릭을 넘을 수는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그래서 기성품으론 두개가 남았지요.

클릭 + 이색사출 / 리니어 입니다.
아주 정말 정확히 우연히도, 키보드조아님의 리니어/이색사출 화이트/ML4100 판매글이 올라왔고,
이것이야 말로 제가 기다리고 기다리던 매물임을 간파했습니다.
곧바로 예약하고 리얼86UK 판매글 올려 새벽3시에 예약을 받아내는 기염도 토하고,

어쨌거나 우여곡절 끝에 친인척 승부수보다 강력하다는 일괄/직거래 신공으로 세 녀석들을 득템하는데 성공했지요.
늦은 시각 잠실역에서 만나, 때마침 키보드조아님과 저 모두 저녁 식사를 못한 상황- 롯데리아에서 햄버거를 먹으며
그동안 제 주변의 그 누구에게도 맘껏 하지 못했던 키보드 이야기를 양껏 하며 즐겁게 거래를 마쳤습니다.

할 일이 쌓여있었지만,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문서 집게로 급조해 키캡 리무버를 제작하고 곧바로 키캡 교체에 들어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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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스트 겸 원래 쓰던 마제 텐키리스 클릭에 이색사출 화이트를 다섯개만 끼워 보았습니다.
눈에 확 들어올 정도로 키캡 높이가 낮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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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건 반대로 이색사출 키캡이 끼워져있던 리니어에 원래 키캡을 넣어 본 사진입니다.
역시 뿔쑥 튀어나온게 눈에 잘 들어오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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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캡 리무버 구입하면 해야지- 라는 핑계로 구매 후 한번도 청소하지 않았던 녀석;
상태가 자못 심각해서 뽁뽁이와 젖은 수건과 기타 등등을 모두 동원하여 깨끗하게 청소했습니다.
역시 궁하면 통하는군요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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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색사출 화이트를 적용한 마제 텐키리스 클릭입니다.
검은색 하우징에 하얀색 키캡은 정말 보면 볼 수록 마음에 드네요.

하지만 아무리 이뻐도 결국, 가장 중요한 건 키감이겠죠?
일단 결과부터 말씀드리면,
너무너무너무너무 만족입니다.

기존의 마제 텐키리스 클릭이 내던 묵직하고 걸리적거리는 듯한 느낌이 대폭 줄어들었습니다.
꾹꾹 눌러 치면 별로 큰 차이가 없는 듯 하지만, (그래도 차이는 있습니다만ㅋ)
코딩하듯 구름타법으로 가볍게 칠 때 진정 얇은 이색사출 키캡의 진가가 드러나네요.
짤깍-턱 의 느낌에서,
사삭-짤깍-틱 정도로 느낌이 변했습니다. (말로 표현하니 왠지 좀 웃기군요 ㅋ)

재잘거리기 전에 사삭 하는 묘하게 기분 좋은 느낌이 더해졌고,
그 소리 때문에 짤깍 소리도 좀 더 선명해진 듯 하고,
'턱'하던 둔탁함이 줄어들었습니다.
그야말로 제가 바라마지 않던 키감입니다.

한가지 놀라웠던 점 중 하나는, 클릭인가 싶을 정도로 굉장히 둔탁했던 스페이스바/시프트/백스페이스 등 스테빌라이저를 사용하는 키들의 키감이
완전 확 바뀌었네요
둔탁함이 보다 크게 감소하고 사삭거리는 느낌이 굉장히 커졌습니다.
문자열 키보다 이 녀석들의 소리가 더 좋아서 계속 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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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이색사출을 벗고 원래 영문 키캡으로 돌아온 마제 텐키리스 리니어입니다.
영문 키캡의 정갈함이 매력적이네요.

그간 클릭/넌클릭/정전식만 써오면서 대체 리니어는 무슨 느낌일까- 하고 굉장히 궁금했었는데,
이것도 참 묘합니다.
걸림이 없는 것은 정전식 같기도 한데 이 묵직함은.. 또 하나의 신세계로군요. ㅋ
이 녀석은 한참 질리도록 써보다가 변흑으로 바꿔볼 생각입니다.
변흑도 궁금해 죽을 것 같거든요?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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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돌아온, 저의 첫 기계식 키보드 서막을 장식했던,
체리 ML4100 입니다.

이전에 쓰던 녀석보다 키캡 인쇄 상태가 훨씬 좋음에도 불구하고,
자연 윤활은 더 돼서 아주 그냥 부들부들 하네요. (쳐보고 엄청 놀랐습니다; 승화라 그런건가요?)
사자마자 하루만에 적응 끝냈던 미니 배열, 잠깐 떠나있었다고 백스페이스 대신 홈키를, 한영 전환을 위한 오른쪽 알트 대신 스페이스바를 마구 누르고 있군요.
이번엔 얼마만에 적응을 할 수 있을지 두고봐야 알겠습니다

자연윤활 잘 된, 서걱임 없는 ML4100 은 정말 키보드 매니아에 거래 되는 모든 모델을 통털어 최고의 가성비를 가진 녀석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클릭처럼 재잘대고(짤깍이는 재잘거림과는 엄청 거리가 멀긴 하지만요ㅋ),
넌클릭처럼 도각거리고
리니어처럼 묵직한.
ML4100 같은 녀석이 풀배열을 구하기 힘들다는 것은 정말 슬픈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ㅠ



리얼86UK 를 하나 포기함으로써 너무나 많은 것을 얻었습니다.
사삭이는 클릭(게다가 블랙 하우징에 화이트 키캡), 묵직한 리니어(그토록 바라던 영문 키캡), 돌아온 ML 스위치(자연윤활 엄청 잘 된)
어느 것 하나 만족스럽지 않은 녀석이 없네요.

이 자리를 빌어, 선릉역까지 와 주셔서 거래해주신 윈디님.
좋은 물건들에 좋은 인상에 좋은 이야기까지 남겨주신 키보드조아님.
모두모두 감사드립니다. ^^


와우, 난 이래서 키보드매니아가 너무 좋아효-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