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져본 키보드가 열손가락을 넘지 않는 초보 키보드 애호가입니다. 잠깐 짬을 내서 epson의 q203a(일본산) 버전 키보드 체험기를 적어 보았습니다.

전체적인 키감은 IBM M키보드보다는 좀 뻑뻑한 세진 SKM-1080 같은 느낌입니다. 투캉투캉대진 않고, '잘그락잘그락'보다는 '쩔끄럭쩔끄럭'하는.. 좀 많이 찰진 느낌. 또한 키 모두가 골고루 짤그락 거리지 않습니다. 그래서 키보드칠때마다 타다다닥 이어지지 않고 한번씩 이질감에 멈칫거리게 됩니다.

알파벳 키부분은 잘그락거리며 칠 수 있지만 백스페이스나 엔터키는 잘그락거리지 않고 바닥에 닿을 때 좀 먹먹하고 둔한 느낌입니다. 엔터키나 백스페이스, 쉬프트키, 숫자판의 '0'키와 '.'키의 경우 키 하나를 신중하고 천천히 눌렀다 떼면 약간 짤깍임이 느껴지지만, 세게 치거나 연이어 칠땐 무거운 느낌만 들고  짤깍임은 느껴지지 않습니다.

특히 스페이스바의 체감 키압이 상당한 편입니다.
때문에 알파벳부분을 두드리다가 엔터키나 스페이스바를 칠 땐 갑자기 바닥치는 맛이 뚝 떨어집니다.
개인적인 느낌으로는 기계식 키보드를 치다가 갑자기 무거운 멤브레인 키보드를 치는 기분이었습니다.

그렇다면 판매 게시글의 댓글에 달린 '최고급 키감'이라는 찬사는 어떻게 된 것일까요? 해답은 키보드를 치는 강도에 있는게 아닐까 추측해 봅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파워있게 치는 분들에겐 강추, 소프트하게 치는 분들에겐 비추입니다.

저는 상당히 부드럽게 키보드를 칩니다. 한키한키 신중하고 부드럽게 키보드를 치며, 타건속도도 분당 250~300타 정도로 상당히 느린 편입니다. 헌데 이러한 키보딩 습관이 결국 q203a에 대한 안좋은 선입견을 낳을 위험이 있었습니다. 키에서 거의 스치듯이 찬찬히 치는 입장에선 알파벳자판부와 엔터키, 스페이스바의 이질감을 극복하기 힘들었던 것이지요. 

그러나 파워 키보딩을 즐기는 속타수들에겐 이 키보드는 최고의 선택이 될듯합니다. 실제로 다다다닥하고 강하고 빠르게 치면서 중간중간 쾅하고 스페이스바와 엔터키를 호쾌하게 찍어 치면 키감이 썩 좋게 느껴졌습니다. 엔터키의 먹먹함과 스페이스바의 묵직함도 그다지 신경을 건드리지 않았습니다.

여담이지만 위와 같은 뻑뻑한 스페이스바 문제는 주로 예전 키보드들에게서 많이 느꼈습니다. 주옥션표 체리갈축 키보드나 EMR2, IBM 5150 같은 것들 말이죠. 80-90년대 올드모델을 구입하시는 분들은 참고하기 바랍니다. 

이외에 제품 마감상태는 최고입니다. 단단하고 믿음직스럽습니다.  키보드글씨와 같은 방식으로 인쇄된듯한 왼편 상단의 EPSON 로고, ALT키의 녹색글씨, 숫자판의 파란색 글씨 등 2색인쇄키는 과거의 향수를 불러일으킴과 동시에 최근 나오는 키보드들보다 훨씬 세련된 느낌까지 주네요.
ps->ps/2컨버터에 USB컨버터까지 물려 노트북에 연결해보니 이상없이 잘 동작합니다.

끝으로 점수를 매겨보자면 100점 만점에 키감은 (파워 터치시) 90점, 마감상태 100점 되겠습니다. 부족한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P.S. 스페이스바 지탱하는 작은 스프링을 빼는 것도 키압 낮추기 위한 좋은 방법입니다만,, 키 흔들림이 심해져서요.. 스프링을 더 구부려서 반발력을 약하게 하는 방식으로 키압을 낮추는 것도 추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