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입 인사 드립니다! 키보드에 본격적으로 관심을 보인 지 얼마 안 된 초보입니다.

 반 년쯤 전에 신용산 매장에 한 번 들려서 기계식 키보드를 쳐본 뒤 '이런 신세계를 모르고 있었다니.' 라고 생각했었습니다. 치는 맛을 알아버린 저는 그 후 남은 장학금으로 큰맘 먹고 기계식 키보드(레오폴드 FC750R 갈축을 쓰고 있습니다. 측각 네이비 디자인에 빠져서 사버렸어요.)를 지른 뒤, 그럼에도 벌써 더 좋은 키감과 얌전한 타건음에 대한 욕심이 나서 기계식 키보드를 너머 무접점 키보드에 관심을 보이고 있습니다.



 일단 가격 부담이 '상대적으로' 적은 한성 무접점 키보드(Gtune 시리즈 - CHF4, CHL5, CHF7 전부 경험해보고 왔어요.)에 관심이 있어서 그 녀석들을 위주로 체험해보고 왔습니다. CHF4는 풀 배열에 색상은 블랙, LED가 들어오고 키압 수치가 62g입니다. 직접 쳐보니 무접점 키보드계의 흑축이었습니다. 반발감이 만만치 않아서 장시간 타이핑은 부담스럽다고 판단하고 일찌감치 단념했습니다. CHL5는 전자와 비슷한 사양이지만 텐키리스에 키압이 55g이어서 부담이 덜하고, CHF7은 사무용으로 제작되어 클래식한 느낌의 키보드였습니다. 이 녀석도 키압은 55g인데 체감상 텐키리스 녀석과 구별될 만큼 달랐고 오히려 62g인 CHF4에 좀 더 가까웠습니다. 왜 그런 건지는 모르겠습니다. 이 녀석만 키캡이 PBT인데 이게 키압에 영향을 준 걸까요?



 무접점 키보드의 키감을 의성어로 표현하실 때 '도각도각' '포각포각'이라고 하시는 걸 눈팅으로 종종 봤는데 제가 느낀 키감은 '도독도독' 혹은 부드러운 느낌의 '두둑두둑'이었습니다. 기계식이나 멤브레인의 경우 타건을 하면 소리가 바깥으로 튀어나가 울리는 느낌인데 이 녀석들은 소리가 안으로 파묻혀 사라지더라고요. 손가락을 발로 비유한다면, 구름 위를 뛰어다니는 느낌이었습니다. 이 점도 꽤 마음에 들었습니다. 소음이 큰 걸 선호하는 편은 아니었거든요. 내친 김에 먹지 못할 음식, 냄새나 맡아보자는 마음으로 리얼포스 106 저소음도 쳐봤는데 정말 의외로 키압이 손에 잘 맞지는 않았습니다. 물론 키보드계의 롤스로이스답게 그 자체로 흠잡을 구석은 없었고 소리가 거의 안 나는 점 역시 매혹적이었지만요. 리얼포스는 아무리 좋더라도 가격 자체가 너무 부담스러워서 세일 행사라도 하지 않는 한 차마 집어들지 못할 것 같습니다.



 멤브레인의 경우 자판을 누르면 어느 정도까지는 안 내려가고 버티다가 힘이 꽤 들어가는 지점에서 푹 하고 자판이 꺼지는 느낌을 받습니다. 엎어놓은 밥공기 모양의 러버돔이 버티고 있다가 무너지기 때문이겠지요. 무접점 키보드 역시 러버돔을 사용하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만 재질 자체가 상당히 부드러운 재질이라고 익히 들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멤브레인과는 다르게 누를 때의 저항감이 없이 리니어 키보드처럼 정확히 힘이 들어가는 정도로만 자판이 들어가더라고요. 자판 한두 개를 눌러보면 이게 큰 차이인가 싶은데 두 손으로 빠르게 시간을 들여가며 치다보니 확실히 일상적으로 쓰다보면 손에 들어가는 부담이 다를 거라고 확신했습니다. 쉽게 말해서, 손이 편했습니다. 소설 쓰는 게 일상이라서 키보드와 같이 사는 꼴이기 때문에 옷이나 신발을 고르는 것보다 더 신중한 마음으로 두드려보고 비교했습니다.



 다시 키보드 앞으로 돌아와서, 키의 무게감과 반발감을 높은 순으로 나열해보자면 CHF4 - CHF7 - CHL5 순이었고 제가 지금 점찍어 둔 녀석은 XRGB 텐키리스 키보드인 CHL5입니다. 숫자 패드를 쓸 일도 없고(더군다나 왼손잡이라 그런지 키 패드 자체를 다뤄본 적도 거의 없었습니다.) 가격은 올려 잡으면 대략 14만원이었기에 리얼포스의 압도적인 가격을 생각하면 나름 감당할만 한 것 같습니다. 하지만 차후에 이 아이를 지른다고 해도 약간 맨들맨들하고 광택이 나는 키캡이 불만이라서 다른 키캡으로 바꾸고 싶은데, LED 기능과 키캡 선택을 생각하면 머리가 좀 아픕니다(부디 저 키보드를 사용해보셨던 분이 계시다면 궁합이 잘 맞는 키캡 추천을 부탁드립니다.). 키캡을 바꿨을 때 키압이 크게 변동되지 않을까 하는 걱정도 들고요. 12만원대에 무난한 디자인인 CHF7도 끌렸지만 순전히 키압 때문에 다른 선택을 했거든요. 어찌 되었든 제가 직접 쳐본 시점에서 편하다고 느낀 키보드는 CHL5였습니다.



 여담으로 26000원 하던 SOMIC GX16 모델도 나름 탐이 나서 충동구매를 참느라 고생했습니다. 멤브레인치고는 타건의 감각이 제법 폭신폭신하고 타건음도 적당하고 반발감도 좋았습니다. 디자인도 노란색 하우징에 레인보우 키캡이라 아기자기했지요. 키캡의 질감이 거칠어서 더 마음에 들었습니다. 러버돔이 조금만 더 부드러웠더라면 무접점 방식과 큰 차이를 못 느꼈을 거라고까지 생각하니까 지갑에 손이 왔다갔다 했어요. 그래서 멤브레인도 무접점 부럽지 않게 편하고 만족스러운 모델이 있지 않을까 싶어 되도록이면 여러 가지로 쳐봤는데 손이 이미 고급 키보드에 맛들린 나머지, 치는 모델마다 약간의 아쉬움을 느꼈습니다. 이젠 돌아갈 수 없어요...



 직접 가서 여러 키보드들을 쳐보니까 제 키보드 취향이 어떤지 대략 감을 잡을 수 있었습니다. 작은 소음, 걸리지 않는 키감, 광택이 없고 거친 재질의 키캡 등... 어쩜 이렇게 까다로운지 모르겠습니다. 아무튼 이렇게 해서 제 오늘의 키보드 체험기는 끝이 났고 머스트 헤브까진 아니더라도 마음에 드는 키보드는 고를 수 있었습니다. CHL5 모델을 사용해보신 분들이 계시다면 다시 한 번 조언 부탁드립니다. 꾸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