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캐너
책을 스캔하는 방법엔 크게 두 가지가 있습니다.
첫 번째는 비파괴 스캔. 말 그대로 책을 자르지 않고 한 장 한 장 사진을 찍거나 플랫배드 스캐너로 스캔하는 겁니다. 오랜 시간에 걸쳐 끈기있게 힘과 노력을 들인 뒤에야 결과물을 얻을 수 있는 방법이죠. 책 자체가 굉장히 중요한 책이 아니라면 이렇게까지 힘들여 스캔할 이유는 없습니다.
두 번째가 파괴 스캔. 책을 싹둑 잘라 자동급지(ADF) 스캐너로 쓱삭 스캐닝해 버리는 방법입니다. 스캔을 하기 위해서 책을 잘라내야 한다는 단점이 있지만, 일단 그 속도에 맛을 들이면 헤어날 수 없죠.
문제는 책을 재단할 때입니다. 아무리 책을 똑바로 놔도 자르는 도중에 조금씩 미끄러지면서 비뚤어지게 잘리기 일쑤죠. 이렇게 되면 나중에 급지 장치에 넣을 때 일직선으로 들어가지 않고 왼쪽이나 오른쪽으로 기울어지면서 들어가는 바람에 후보정에 쓸데없는 시간이 소요됩니다.
그래서 제가 책을 똑바로 자르기 위해 궁리한 노하우는 다음과 같습니다.
1. 재단기에 미끄럼 방지 매트 부착
옥션 등지에서 많이 팔리는 YG-858 재단기입니다. A3 책까지 재단할 수 있는 물건입니다. 하지만 그 구조상 칼이 한쪽에서부터 내려오기 때문에, 나중에 힘을 받게 되는 부분이 점차 밀리면서 결과적으로 크게 비뚤어지는 결과가 나오게 됩니다.
이 현상을 최대한 없애려고 궁리한 끝에 미끄럼 방지 매트를 도입했습니다. 옥션 등지에선 1천 원 후반에 팔리고 있지만, 그 효과는 꽤 좋습니다. 일단 아랫쪽에 넓게 붙여주고, 책 밑단이 닿는 재단기 옆면에도 꼼꼼히 발라 줍니다. 책을 누르는 눌림판에도 붙이고 싶지만 구멍이 송송 뚫린 매트를 양면 테잎으로 붙였다가 나중에 접착제가 녹아서 흘러내리기라도 하면 대참사가 일어날 게 뻔하겠죠. 그래서 필요할 때 책과 눌림판 사이에 놓도록 적당한 크기로 여분의 매트를 잘라둡니다.
2. 위치 잡기
일단 칼을 내립니다. 그리고 책등을 칼 쪽으로 향하게 한 채 칼과 고정판 사이에 꽉 끼우고, 고정판의 잠금장치를 고정시킵니다. 절대로 움직이지 않을 정도로 확실하게요.
3. 위치 잡기 II
그러면 칼을 다시 올리고, 책 위에 여분의 미끄럼 방지 매트를 올려놓습니다. 그리고 고정판과 책 사이에 얇은 책이나 골판지 등을 끼워넣습니다. 그러면 그만큼 책등이 앞으로 튀어나가게 됩니다. 즉 끼워넣은 책의 두께가 절단면의 두께가 되는 거죠.
그 상태에서 눌림판을 내려서 고정시킵니다. 헤라클레스가 책을 빼내려고 해도 꼼짝달짝 하지 않을 정도로 확실하게요.
4. 절단
그런 다음엔 칼을 내립니다. 젖먹던 힘까지 동원해 최대한 한번에 잘라냅니다. 여러 번에 걸쳐 힘을 주면 절단면이 삐뚤빼뚤해집니다.
두꺼운 책을 절단하면 아무래도 균등하게 잘리지 않습니다. 지금 샘플로 재단한 책은 370여 페이지 짜리였는데, 윗쪽에 비해 아랫쪽이 좀 밀린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너무 두꺼운 책은 중간 부분을 잘라내서 두 번, 세 번에 나눠서 재단하는 것이 좋습니다.
이렇게 잘라낸 다음, 접착제가 여전히 붙어 있는 페이지는 없는지 확실하게 확인해야 합니다. 그런 다음 ADF 스캐너에 밀어넣으면 끝이죠.
마지막으로 드릴 말씀은, [베일에 가려진 스파이 이야기]는 정말 쓰레기 같은 책이라는 사실입니다. 절대 사 보지 마세요. 돈아까워요, 젠장!
3번 위치잡기에서 저는 책의 여백을 확인하고 가능하면 책의 양쪽여백이 동일하게 나오도록 자릅니다.
즉 책의 오른쪽 여백이 20mm 이고, 책 내용이 130mm이면 왼쪽여백까지 고려해서 170mm이 되도록 자릅니다.
그래야 기기로 볼때 책을 볼 때 홀짝수별로 이질감이 덜 생기거든요, 그런데 요즘 책들은 여백이 넉넉해서 그렇게 하기 편한데, 옛날책들은 참 여백을 많이 아낀 책들이 많아서 곤란할 때가 많이 있네요. ^^;;
scan본 만들면서 항상 느끼는 것은 원복을 잘 스캔해야 결과가 좋다는 사실을....ㅎㅎ
정말 처음 보는 테크닉입니다 ~ 정교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