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rry는 왜 새 시대를 열지 못하나

인덕션 IK의 실종과 Cherry의 위기
작년 컴퓨텍스에서 Cherry 프로덕트 매니저 군나르 슈렉은 "30년간의 MX는 우리의 내연기관이었다. IK가 새로운 시대다."고 말한바 있습니다.
그런데 그후 10개월.. IK 키보드 어디 갔나요?
두 번 약속, 두 번 연기
사실 Cherry가 인덕션을 처음 보여준 건 2024년 컴퓨텍스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 그때는 "MX Multipoint"라는 이름이었고, 2025년 초에 나온다고 발표했습니다.
(Ducky가 이걸 넣은 One X를 같이 발표했습니다.)
1년 뒤 2025년 컴퓨텍스에서 이름만 "IK"로 바꿔서 다시 발표합니다.
이번에는 "가을에 나온다"고.
그런데 올해 1월 CES에서는 IK 얘기가 아예 없었습니다.
TMR 키보드 두 개만 들고 나왔습니다.
지금 Cherry 사이트에 들어가 보면 IK 스위치 스펙 페이지는 살아 있는데 그걸 쓴 키보드는 존재하지 않는 상태.
돈이 없다
원인은 의외로 단순합니다. Cherry에 돈이 없어요.
2025년 9개월간 순손실이 2,040만 유로, 우리 돈 280억 원 정도. 부채가 자본보다 많은 자본잠식이고, 연간 EBITDA 마진 전망은 0~2%. 주가는 2026년 2월 기준 $0.62입니다.
인덕션 스위치는 기존 키보드와 달리, PCB에 코일을 직접 깔아야 합니다. 그래서 기존 MX 라인이나 홀이펙트 보드를 재활용할 수가 없습니다.
따라서 새 설계, 새 생산라인이 필요한데 그게 돈입니다. 그리고 지금 Cherry에는 그 돈이 없습니다.
아우어바흐의 불이 꺼지다
어느정도로 심각한 상황이냐면, Cherry의 본거지인 독일 아우어바흐 공장에서 스위치 생산이 완전히 중단됐습니다. 생산은 중국이랑 슬로바키아 외주로 넘어갔고, 아우어바흐는 물류 창고랑 웹숍 운영만 합니다.
더 무서운 건 사업부 매각 얘기입니다.
Cherry가 작년 11월에 "주변기기 사업부" 아니면 "디지털헬스 사업부" 둘 중 하나를 판다고 발표했습니다. 주변기기 사업부에 키보드랑 마우스가 다 들어가 있으니, 이게 팔리면 "Cherry 키보드"라는 브랜드가 다른 회사 손에 넘어가는 겁니다.
스위치는 별도 사업부(Components)라 살아남긴 하는데, 키보드 없는 Cherry 스위치가 무슨 의미가 있을지...
Ducky One X가 찬물을 끼얹었다
사실 IK 기술 자체가 안 되는 건 아닙니다. Ducky One X라는 실물이 나왔으니까요. 근데 이게 PC Gamer에서 60점을 맞았어요. "흥미롭지만 설득력 부족."
첫 번째 레퍼런스 제품이 이렇게 나오면 후속 개발에 힘이 빠질 수밖에 없죠.

Wooting 이 한방 날린것도 있습니다. Wooting 리드 엔지니어 Simon Whyte가 Cherry의 "가장 정밀한 스위치" 주장에 대해 "최초 감지점이 0.3mm면 그건 가장 정밀한 게 아니다"라고 딱 잘라 말했거든요. 홀이펙트가 0.1mm, TMR이 0.01mm인 걸 생각하면 맞는 말이긴 합니다.
커스텀 씬 관점에서도 걸리는 게 있는데, 인덕션은 코일이 PCB에 박혀 있어서 스위치 호환이 안 됩니다. 같은 보드에서 스위치 바꿔 끼우는 게 핵심인 시장에서 이건 좀 치명적으로 보입니다. 게다가 구조상 리니어밖에 못 만들어요. 택타일이나 클릭을 원하는 사람은 처음부터 대상이 아닌 거죠.
그래서 TMR로 방향을 틀었다
IK에 쓸 돈도 없고, 첫 제품 반응도 안 좋고, 게이밍 시장은 홀이펙트/TMR로 쏠리고 있으니 선택지가 별로 없었을 겁니다. Cherry는 CES에서 TMR 키보드를 들고 나왔습니다.
Cherry XTRFY MX 8.2 Pro TMR Wireless가 $249.99, K5 Pro TMR이 올봄 출시 예정.
둘 다 TMR 센싱에 8000Hz 폴링, "DualMaster" 핫스왑으로 같은 보드에서 자석축이랑 기계식 MX를 교체할 수 있게 했습니다.
Cherry가 MX 레거시를 버리지 않으면서 넘어가려는 의도가 보여요.
근데 $249.99가... MonsGeek이 $64.99에 TMR 핫스왑을 파는 판에 쉬운 가격은 아닙니다.
개인적으로
올해 상반기에 M&A 결론이 나옵니다. 어떤 사업부가 팔리느냐에 따라 Cherry의 정체성이 완전히 달라지겠죠.
IK는 분명 맞는 방향이었을 겁니다. 근데 양산할 돈이 없으면 아무 소용 없는 거고.
키보드 시장이 바뀌는 건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홀이펙트가 오고, TMR이 오고, 또 다른 뭔가 새로운 기술이 등장하겠죠. 근데 그 변화의 한가운데서 Cherry가 IK라는 걸 들고 나왔을 때, 아 이 회사가 아직 뭔가 하려는 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었습니다.
72년 된 키보드의 근본 회사가 "내연기관 시대는 끝났다"고 직접 말하는 게 쉬운 건 아니니까요.
근데 결국 돈이 발목을 잡는거 같은 느낌인게 많이 안타깝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