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형 타건샵 '키덕투어'

수도권이 아닌 이른바 지방에 사는 키덕들은 마음에 드는 키보드 사는 것도 여러모로 번거롭습니다. 마음에 드는 제품이 생기면 리뷰 영상을 보고, 타건음 녹음을 찾아 듣고, 커뮤니티 후기를 읽다가 주문합니다. 받아 보고 손에 안 맞으면 당근에 내놓는 수밖에 없는데, 그마저 쉽지 않습니다. 키보드를 직접 눌러보고 싶으면 서울 갈 일이 있을 때 타건샵 일정을 끼워 넣어야 합니다.
그런 입장에서 터치플래닛이 지난해부터 진행하고 있는 키덕투어는 참 반가운 행사입니다.
이번 광주 키덕투어는 광주신세계 본관 지하 1층 이벤트홀에서 열리고 있습니다. 16개 브랜드가 참여했고 키보드와 액세서리 250여 종이 나와 있습니다. 오는 15일까지입니다.
키덕투어는 작년 9월 신촌현대백화점에서 138종 규모로 첫 팝업을 연 뒤 영등포, 잠실, 부산, 대구, 일산, 전주, 대전, 수원을 거쳐 광주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요즘은 한 번에 250종 안팎의 제품을 가지고 다니며, 한 도시에 2주쯤 머물다 다음 도시로 옮기는 방식이라 단순한 팝업스토어라기보다 이동형 타건샵에 가깝습니다.
참가 브랜드 목록에서 눈에 띄는 게 하나 있습니다. 브랜드는 16개인데 회사는 12곳입니다. 앱코 한 곳이 ABKO, COX, 그리고 작년부터 수입을 맡은 칠키까지 세 브랜드를 내놓고, 제이웍스 한 곳이 체리, 에포메이커, 키붐 세 브랜드를 가지고 나오기 때문입니다. 8BitDo와 로얄클루지도 제조사가 아니라 국내 수입사인 프론티어텍과 에스엔제이가 가져온 제품입니다. 나머지 SPM, 한성, 프리플로우, 주연테크, 씽크웨이, 큐센, 샌던아트, 키케이션은 자기 브랜드를 직접 들고 나온 회사들입니다.
브랜드 수를 부풀리는 것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구조가 아니면 250종을 들고 전국을 도는 일 자체가 어렵습니다. 회사마다 따로 섭외하고 따로 계약하면 거래처가 수십 곳으로 늘어납니다. 유통사 몇 곳이 자기 브랜드를 몰아서 내놓으면 주최 측은 열두 곳만 챙겨도 매대가 찹니다.
방문자에게는 결과적으로 이득입니다. 평소에는 앱코 스토어, 제이웍스 스토어, 각 브랜드 스마트스토어를 따로 돌며 봐야 했던 제품이 한 자리에 모여 있습니다. 체리 옆에서 에포메이커를, ABKO 옆에서 칠키를 바로 비교해볼 수 있습니다.
구성이 해외 대형 제조사 제품 위주가 아니라는 점도 좋게 보는 부분입니다. 키보드를 사려고 보면 선택지가 양 끝으로 갈라져 있을 때가 많습니다. 한쪽에는 해외 대형 브랜드의 플래그십이 있는데, 2-30만 원을 훌쩍 넘는 가격이라 처음 기계식을 써보려는 사람이 덜컥 사기는 어렵습니다.
다른 쪽에는 알리에서 몇만 원에 파는 키보드가 있는데, 가격은 좋지만 어떤 물건이 올지 받아보기 전에는 모르고, 문제가 생겨도 물어볼 데가 없습니다. 그 사이를 채우는 제품이 정작 눈에 잘 안 띕니다.
키덕투어 매대는 그 중간 가격대가 두텁습니다. SPM, 한성, 큐센, 프리플로우, 주연테크처럼 국내에서 직접 키보드를 만들거나 기획하는 회사들이 한 축을 이룹니다. 다른 축은 에포메이커, 키붐, 칠키, 로얄클루지 같은 해외 브랜드인데, 알리에서 직구하던 것과 같은 브랜드를 국내 유통사가 들여와 KC 인증과 A/S를 붙인 제품입니다.
직구와 가격 차이는 있지만 눌러보고 살 수 있고, 고장 나면 국내에서 고칠 수 있습니다. 여기에 아티산 키캡을 만드는 샌던아트, 키링과 키캡을 내는 키케이션도 한 자리씩 차지하고 있어서, 키보드 본체만 늘어놓은 매장과는 구성이 다릅니다.
브랜드 입장에서도 득이 됩니다. 단독 팝업을 열려면 자리를 빌리고, 집기를 짜고, 사람을 쓰고, 물건을 나르고, 홍보까지 직접 해야 합니다. 작은 회사나 국내 쇼룸이 없는 해외 브랜드는 엄두를 내기 어렵습니다. 하지만 이미 운영 중인 투어에 제품 몇 종만 넣으면 부산, 대구, 광주 손님을 차례로 만날 수 있습니다. COX, SPM, 주연테크는 이 팝업에서 신제품을 먼저 공개하기도 했습니다.
개인적으로 가장 반가운 건 장소가 백화점이라는 점입니다. 키보드에 관심이 없던 사람도 장 보러 왔다가 한번 눌러볼 수 있습니다. 회사에서 쓰던 멤브레인 키보드와 느낌이 전혀 다르다는 걸 그렇게 처음 알게 되는 사람이 분명 있을 겁니다. 마니아끼리 사고파는 것만으로는 시장이 커지지 않습니다. 처음 눌러보는 사람이 계속 생겨야 합니다.
바라는 점이 있다면, 같은 도시를 다시 찾을수록 새로운 브랜드가 더 들어왔으면 합니다. 개인 제작자나 소규모 커스텀 브랜드, 스위치 제작사까지 참여한다면 키보드를 오래 써 온 사람들도 다시 찾아갈 이유가 생깁니다. 물론 이런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것도 행사가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았기 때문입니다.
한 번 열고 끝난 게 아니라 1년 넘게 전국을 돌고 있다는 점이 제일 좋게 보입니다. 서울 갈 일을 기다리지 않아도 집 근처에서 키보드를 눌러보고 고를 수 있게 됐다는 것, 지방 키덕에게는 그게 제일 큰 변화입니다. 광주 분들은 15일 전에 한번 들러 보시길 권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