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00HFU를 보내면서..





오늘 야근후에 1800HFU를 판매하기로 했습니다.
역시 키보드메냐 회원님들은 대단하십니다. 내일 만나셔도 될 것을..
이도령 춘향이 만나는 것도 아닌데 야밤에 강남에서 분당끝까지 오시겠다는.. --;;

★첫번째 IBM키보드 시기
몇년전 기계식 키보드를 모아봐야 겠다고 맘 먹고, 아니 어느새 자연스럽게
수집을 하게 된것이 Model M이었습니다. 당시만 해도 지금 M의 이베이나
메냐 장터의 헐값에 비교하면 상당히 고가의 가격에 빈티지급의 신동품을
구입하곤 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지금 체리와 알프스의 인기가 엄청나지만, 여전히
3대 키보드를 뽑으라고 하면 주저없이 Model M을 선택하겠습니다.

IBM의 키보드 중 M15와 몇가지를 제외하곤 거의 다 모았었는데, 어느날
우연히 얻게된 체리키보드를 맞보면서 정리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역시 총알이..
몇몇 제품 중 메탈로고의 M(1390120, 1390131등..), 그 중에서도 특히 5170은
사고팔고를 무려 3번이나 거듭하면서도 그 키감을 잊을 수가 없었습니다.
"도대체 또 팔거면서 왜 사는거야?"하고 자문을 해봐도.. 결국은 키감때문이었다는..
(얼마전 분당에서의 키보드 모임에서의 5170 3대가 눈앞에 아른거리는군요)

5170, 그때만 해도 5170이라는 이름보다는 IBM AT KEYBOARD라는 이름을 더 많이
사용했던거 같습니다만, 그 엄청난 키감에도 불구하고 저에게 큰 제약이 되는 것은
표준배열의 101이 아니었다는 점이었습니다.

습관은 무섭고 사람은 적응하는 동물이라고 하지만, 양보하기 싫은 부분도 있죠.
국내에 최초의 개인용 컴퓨터라는 298,000원짜리 (확실치 않지만 그정도 가격이었던듯)
MSX부터 시작한 컴생활은 아무리 좋은 키감이라도 일문배열이나 미니키보드는 적응이 되지
않았습니다. ^^;; (물론 그 후에도 일문레이아웃이나 미니키보드를 구매하지 않은 건 아닙니다만..)

IBM의 키보드에 익숙해서인지 한가지 더 용납이 되지 않는 부분이 있었습니다.
바로 윈도우키죠.. 대다수의 MS OS사용자의 한 사람으로서 윈도우키의 편리함은
저도 인지하고 있지만, 왜 MS의 그림자가 키보드까지 드리워져 있는지..
별로 기분좋은 일은 아닌거 같습니다..

하긴 어느분이 MS가 "마우스"의 약자라고 우스게 소리를 하시던데, MS가 마우스도
유명하니까 하신 얘기했지만, 흔희 글로벌기업이라는 기업들이 나중에 어느 영역까지
손을 뻗치게 될지 걱정이 됩니다. 그런 의미에서 FireFox나 해피해킹 쓰시는분들께
경의를 표합니다. ^^;;

★ 두번째의 키보드 시기, 체리... 스위치를 분해해 보고 나서야, 독일인의
장인정신(넘 거창한가요?)과 체리스위치의 고급스러움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청,백,흑,갈색의 멋진 슬라이더와 독특한 키감, 재미있는 소리까지..
아직도 일본말은 사요나라밖에 모르지만, 우리보다 먼저 체리의 맛에 빠져있던
일본의 키보드 오타쿠들의 사이트를 드나들기 시작한 것도 이 무렵입니다.
(체리키보드의 유행이 일본이 먼저인지 한국이 먼저인지는 모르겠습니다.
제가 체리에 늦게 눈을 떠서인지도..)

흔히 부실한 하우징과 철판의 부재.. 라고 꼽던 체리의 단점은 digipen님의
1800갈색 대량방출사건(?)과 보라카이님의 구형청색개조 및 철판보강 이벤트로,
그리고 지금의 또각또각님의 보강판에 이르기까지 일대 체리혁명이 시작되었습니다.

정말 별로 오래된 일이 아닌거 같은데, 대단한 사건들이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파격적인 가격의 갈색 1800 박스신품과, 납땜질을 해보신분들은 아시겠지만 거의
무료봉사에 가까웠던 보라카이님의 개조/보강 이벤트..

지금은 물론 목재키캡이나 기판의 제작, 터미널 키보드 개조, 계산기 키패드까지
고수님들의 열정을 느낄 수 있지만, 많은 회원님들께서 손수 보강판 키보드 개조를
하실 수 있게 된 시점까지 이른 것은 실로 체리키보드 사용자로서는 대단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외국에서도 유래를 찾아보기 힘든, 국내 키보드메냐의 자랑입니다.^^;;

★지금.. 세번째 알프스의 시기입니다. 사실 세번째 시기라고 부르기도 좀 뭣한것이
예전부터 알게 모르게 사용해 온 키보드가 바로 알프스 스위치의 키보드였습니다.

물론, 최근에 알프스 하우징의 최고라면 저는 주저없이 Northgate와 Zenith를
뽑겠습니다만, 수많은 치코니 제조의 키보드들.. 하다 못해 처음 컴을 접하던
시절의 기계식 키보드들도 지나고 나서 생각해보니, 구형백색 알프스 정도였던
거 같습니다.

때문에 알프스 키보드의 존재라는 것은 80년대 이후에 컴퓨터를 사용해오신 분들이라면
모르시는 분들이 없을 정도였고, 한 두개쯤은 알게 모르게 손을 거쳐갔을 것입니다.
대우나 금성의 옛키보드들처럼 말이죠..

알프스 키보드의 슬라이더 색이 체리보다 더 다양한 것은 더욱 호기심을 불러 일으키기
충분했습니다. 흰색, 유색(크림), 노랑, 흑색, 오랜지, 블루, 핑크(살구), 녹색..
더 있던가요? ^^;;  다양한 슬라이더의 키보드들은 체리보다 다양한 느낌과 깊은 맛을
보여주었습니다.  쉽게 구경하지 못했던 최근의 핑크와 블루의 키감은 정말 황홀할
정도였죠.. 올드 델 핑크와 썬터치, 리딩 엣지 블루의 맛은 가히 손에 쫙쫙 달라붙는..

그러나 지금까지의 키보드에 비해 알프스의 체험은 너무나 광범위하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사용여부와 열화에 따른 키감차이도 분명 존재하지만, 대윤님의 말씀처럼 여러 제조회사와
다양한 레이아웃, 그리고 무엇보다도 수많은 하우징과 키캡의 재질, 이색사출방식만 보더라도
각 제조사마다 각기 다른 방식을 가지고 있다는 점을 생각한다면, 가장 넓고 경험해야할
부분이 많은 것이 바로 알프스인거 같습니다.

간간히 구해들여온 제니스, 리딩 엣지, 썬터치, 올드 델, 노스게이트 등으로 알프스는
오렌지 슬라이더를 제외한 키감은 모두 느껴보았지만, 아직도 갈 길이 멀다는 느낌은 여전합니다.

특히나 녹색, 블루, 핑크는 같은 슬라이더라도 키캡이나 하우징에 따라 무척이나 다양한
키감을 선사하는 제품들이 존재하므로 키보드메냐의 정모를 통해 서로를 비교해 보던가,
그것이 어렵다면 지름신의 도움을 받아 지르는 수 밖에 없을 듯 합니다. --;;

레어한 제품은 구하기도 어렵지만 팔기도 어렵습니다. 오늘 1800HFU를 거래하기전까지
정말로 이것을 팔아야 하는지 말아야 하는지 수없이 고민을 했더랬습니다. 50만원?
작은 돈은 아니지만 솔직히 100만원이 있어도 구하기 힘든건 힘든거니까.. 팔지말자..
레어는 리얼포스나 해피해킹처럼 돈이 있으면 살 수 있는게 아니라는 생각^^;;

(참, 해피해킹은 아직 만져보지 못했지만, 리얼포스 이거 메인으로 삼을뻔 했습니다.
보드라운 키감과 아름다운 백색의.. "수밀도의 가슴"이라는 싯구가 생각나는 키보드입니다.
차등키압때문에 너무 가벼운 키압이 적용된 부분만 없었더라면.. 때로는 장점으로 만든
것이 단점이 되기도 하는거 같습니다. 차등키압하니까 키트로닉이 생각나는군요.)

그러나 소장하는 기쁨도 있지만, 사용해보고 더 새로운 것들을 경험해 보고 싶은 호기심도
어쩔 수가 없습니다. 예전부터 걸어온 그러나 아직도 많이 가야할 알프스의 탐험을
다시 시작해 보고자 합니다.(뭐 이렇게 쓰니 거창하지만, 총알을 모으는 수 밖엔.. -..-;;)

아직도 수많은 키보드.. 옴론스위치, NMB, NEC..  과연 더 나가야 할지 고민입니다.
취미생활로의 키보드.. 예전에 누가 상상이나 했겠습니까? ^^;;

어쩌다 보니 제가 쓰는 구글메일 계정이..
ib****@gm***.com
ch****@gm***.com
al****@gm***.com

3개가 되어버렸습니다. 마치 갈길을 이미 알았다는 듯..

주절주절 써버린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__);;
이전 댓글 10
대윤 2005-08-23 22:17
우기님의 항해일지 잘 보았습니다...^&^ 우기님과 항해 하면서 참으로 다양한 키보드의 맛에 취하는 것 같습니다...즐겁습니다...^&^
우기 2005-08-23 22:20
질러대고 팔아버리고, 때로는 얕고 변덕스러움이 부끄럽습니다. 대윤님처럼 천천히 쉬엄쉬엄 음미하는 자세가 부럽습니다. ^^;;
initial D 2005-08-23 22:35
체리산의 하산과 함께 알프스의 등정에 나서시는 군요. 앞으로의 행보도 훔쳐보겠습니다. ^^;;
體利萬萬歲 2005-08-23 22:56
헉~ 체리매니아 계정까지...-_-;; 제가 만들려고 했는데 중복되었다고 해서 못만들었는데 우기님꺼였군요... 좀 놀랬었습니다 그때...^^; 하산하시는건 아니시겠죠...ㅎㅎ
우기 2005-08-24 01:18
아직 하산할 시기는 아닌듯 합니다.^^;; 체리마루에서 바라보는 알프스는 정상이 보이지 않습니다.--;; 알프스 너머에는 뭐가 있을지..
로니 2005-08-24 03:14
잔잔한 한편의 영화 잘 보았습니다.
이환진 2005-08-24 03:18
저도 뭔가 짠~한 기분이 듭니다. 얼마 되지 않았지만 그동안의 키보드에의 여행이 로니님 말씀처럼 정말 필름같이 스쳐 지나가네요. 이렇게도 감상에 젖을 수 있는 것이군요... ^^;
體利萬萬歲 2005-08-24 03:39
우기님 알프스 산등성이에 자라고있는 체리나무를 보았습니다...-_-;;
로니 2005-08-24 04:37
허영만님이 키보드 이야기를 만화로 만들어 주시면 좋겠습니다. 워낙 다양한 소재로 창작하시는분이라 충분한 소재거리가 될꺼 같습니다.
재롱스 2005-08-24 08:55
정말 잘 읽었습니다. 진정한 고수의 풍모가 느껴집니다. ~~ 첫부분에서도 쓰셨지만 저도 표준배열이 제 몸에 깊이 익숙해져 있다는 생각을 합니다. 참 적응하기 어렵더군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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