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배인데 댁에 안 계신가요?'
'네. 경비실에 맡겨주세요.'

'택배인데 댁에 안 계신가요?'
'골목 끝에 슈퍼에 맡겨주세요.'

'택배 왔습니다'
'이 놈의 지지배는 뭘 이렇게 맨날 사나 몰라.'
...........

가게를 하기 바로 전 8~9월 동안 택배일을 했었습니다.
물건 1개 당 600원을 받았습니다.
주로 부피가 크지 않은 제품들이긴 했지만 부피가 크고 무거운 물품을 다루는 타 업체도 대부분 7,800원 선이었고 월급제로 일을 시키는 곳도 있었습니다.

1건 당 600원을 받으니 사람이 굉장히 쪼잔해지더군요.
목이 말라도 음료수 1캔을 사먹지 못했습니다.
힘들게 배송한 택배 1건이 사라지니까요.
3,000원 짜리 짜장면 한 그릇은 택배 5건이나 되니 너무 큰 사치였습니다.

수 많은 사람을 상대하나보니 별 일이 다 생깁니다.
고객이 시킨대로 경비실에 맡기러 가면 내가 택배 맡아주는 사람이냐며 화내는 경비 아저씨.
슈퍼에 맡기러 가면 장은 홈플러에서 보는데 왜 택배를 맡아줘야되냐고 화내는 주인 아줌마.
예전 전화번호라 연락이 안되는 사람.
예전 주소로 물건을 주문한 사람.
택배 왜 안가져오냐며 욕하는 중학생.
배송요청에 '공주님 나와주세요'라고 적는 사람.
일찍 와라. 늦게 와라...

시간이 어느정도 지난 뒤에는 경비아저씨도, 슈퍼아줌마도 모두 내 편으로 만드는 데 성공해서 어느정도 편해지긴 했었습니다만 100건을 배송해야 60,000원인 일을 계속 하기는 힘들더군요.
소득세 3.4%는 정확히 떼였지만 4대 보험 같은 건 꿈도 못 꿨습니다.
그냥 운동 삼아 좋은 경험이었다고 생각하고 일을 그만뒀습니다.

날씨도 추운데 고생하시는 택배 기사님들 이해 좀 해드리자고 쓰려던 글이 엄청 길어졌네요.
고객의 입장에서는 조금 답답할 수도 있지만 어쩔 수 없는 부분들이 몇 가지 있습니다.
그리고 조심하셔야 할 것들도 있고요.
앞으로 택배 주문시 참고하시라고 적어봅니다.

1. 대부분의 택배기사는 담당 구역에서 자기만의 방식으로 동선을 만들고 순차적으로 배송합니다.
하루에 배송하는 택배물량은 평균 100개 이상입니다. 일대일 퀵서비스가 아니기에 애초에 원하는 시간에 받기가 힘든 서비스라는 것을 아셔야합니다.

2. 부재중이거나 특이사항이 발생할 수 있기에 전화번호를 적는 것이고 그래서 전화번호는 정확해야합니다. 전화 연락이 어차피 안될 거라면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3. 입주자 앞에서는 내색하지 않겠지만 경비 아저씨들이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경비실이 택배로 가득 차면 쉴 공간도 부족할 뿐더러 택배 때문에 다른 업무에 지장이 있기도 합니다.
종종 도난, 분실 사건도 발생하니 스트레스가 많으실 겁니다. 참고하시고 평소에 인사라도 자주 하시고 간식이라도 챙겨드리세요.

4. 택배 맡아주는 거 좋아하는 동네 슈퍼 단 한집도 못봤습니다. 어쩔 수 없이 받아주는 거고 명절 전후로는 영업에 방해 될 정도입니다.
동네 슈퍼에 택배를 맡길 거면 미리 인사도 나누시면서 얼굴 터 놓으시길 바랍니다. 평소에 물건도 자주 구매하시구요.

5. 집에 사람이 없으면 시키지 않는 게 맞는 겁니다. 다른 곳에 맡겨달라고 하는 것은 원래의 택배 서비스라고 보기엔 어렵고 부탁에 가까운 겁니다.
사람이 있는 곳으로 시키는 게 당연한 거구요. 부재 중에 연락까지 안되면 반송처리 될 수 있습니다.

6. 얼굴 안 보인다고 함부로 말하지 마세요. 싸웠던 집 언젠간 또 갑니다. 얼굴 보면 서로 민망합니다. 좋게 좋게 지내야죠.

7. 여자분들 특히 조심하세요. 현관 비밀번호 알려주면서 문 열고 놓고 가라고 하는 분도 있었는데 그거 굉장히 위험한 겁니다.
가끔 물건 받으러 나오실 때 정돈되지 못한 야릇한 복장이 정말 감사했지만... 어떤 사람인지도 모르는데 조심하셔야죠.
같은 지역을 한 동안 계속 다니다보면 CCTV 위치, 중앙 현관 비밀번호, 창문이 열린 집, 비밀 문, 몇 시에 사람이 없는 지.. 등
자연스럽게 외우게 됩니다. 나쁜 생각을 하게 되면 한도 끝도 없습니다. 미리 알아서 최대한 조심하세요.

물론 대충 일하는 택배기사들도 많을 겁니다.
그런 불편사항은 고객센터에 접수해서 정식으로 항의하시기 바랍니다.

사실 택배비 2,500원 중 일정 금액은 인터넷 쇼핑몰 판매자가 갖습니다.
택배 업체의 과도한 경쟁 때문에 거래 물량에 따라 판매자와의 실제 계약 금액은 2,000원 미만으로 떨어지게 됩니다.
최초에 수거하는 기사가 일정 부분을 갖게 되고 그후 여러 과정을 거쳐가며 여러분이 대면하게 되는 택배 기사에게는 최종적으로 남는 금액이 지급되는 거죠.
택배비가 오르면 최종 기사한테 얼마나 더 갈지 모르겠네요. 그게 가장 중요하다고 보는데...

눈이 엄청 많이 오던 날 밤 11시가 다 되서 까지 배송을 한 적이 있었는데 한 신혼부부가 고맙다면서 직접 만든 샌드위치를 싸주시더군요. 울 뻔 했습니다. 날이 추우니까 그 때 생각이 나네요.

뭐 다들 웃으며 지내자고 써본거에요.
다.. 서로 잘 모르고 오해해서 말다툼하고 그러는 거니까요.
마지막으로 당시 택배할 때 그 자체 만으로도 제게 큰 힘을 줬던 보건대 미녀, 수많은 가양동 미녀, 비래동 미녀께 깊은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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