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어쩌다 키보드매니아를 알게된지 6시간만에 "해피해킹은 반드시 사야한다"라고 인셉션이 되어버린 1인 입니다. 따라서 저의 얇아진 지갑은 다 여러분 때문입니다. 절대 제 잘못이 아니예요. 일본 직구로 관세 등등 포함 21만원 정도 들었습니다.


저는 프로그래밍은 딱 한학기 듣고나서 "내가 아니더라도 프로그래밍을 잘할 사람들은 많아" 하고 포기를 했습니다. 다만 글쓰기를 참 좋아하는데, 지금은 마케터로서 카피라이팅을 하고, 일이 끝나면 영화 각본을 쓰고 있습니다. 


해피해킹이 프로그래머를 위해서 만들어 졌다고는 하나, "분명 글쓰기에도 좋을 것이다" 라는 생각이었습니다. 물론 이건 이미 지르고 난 뒤의 자기 합리화였고, 봄날 카페 테라스에 앉아 멋지게 타자기를 도각도각 두드리며 글을 써내려가는 자신의 모습을 상상했던 것이 가장 큰 구매이유 입니다.


여기서 사진 들어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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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에 저 포스있는 놈은 커세어 K70 갈축입니다. 대학생때 롤에 빠져 살았었는데, 실버를 벗어나지 못하는 제가 펜타그래프 키보드 탓을 하자 여자친구가 사줬습니다. 롤은 지금 접었습니다. 실버로요.)


어제 해피해킹 키보드를 받아서, 오늘 처음으로 카페에 나가 각본을 써봤습니다.


결론을 말하자면, 정말 최고입니다. 타건감과 그에 어울리는 도각도각 소리에 염통이 쫄깃해지는 느낌입니다. 그 표현이 정확히 무슨말인지 오늘 처음 알았습니다. 그리고, 이 키보드는 정말 뭔가 있어보입니다. 전 개인적으로 현대 사회에서 뭔가 있어보이는건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글을 쓸때 머리속에서 스토리와 구조를 완벽하게 생각하고 그것을 옮겨적는 타입입니다. 사실 이건 글을 쓰는데 상당히 도움이 안될 때가 많습니다. 생각이 안나면 글도 안나오기 때문이죠. 그래서 일단 쓰면서 글이 알아서 생각하게 하는것을 연습중인데, 오늘 해피해킹을 쓰면서는 정말 끊임없이 글을 썼습니다. 실제 페이지가 아니더라도, 아웃라인, 캐릭터, 스토리 등을 오가면서 끊임없이 썼습니다. 일단 당장 키보드를 두드리고 글을 쓰고싶게 만드는 키보드 때문입니다.


물론 변태배열 때문에 처음엔 좀 헷갈렸지만, 저도 변태이기 때문인지 금방 적응했습니다. 제가 모디열을 정말 많이 쓰는 편인데, 새로운 배열 때문에 가끔 스트레스 받은 거미처럼 손이 꼬일때가 있었습니다.


키보드는 나름 양품을 받은것 같습니다. 가장 염려한건 스페이스바 소리인데, 오히려 몇몇 키보다 더 듣기좋은 소리를 내주었습니다. (제조일 2017년 1월 제품인데, 혹시 해피해킹에서 이제 스페이스바도 PBT로 제작을 하나요? 스페이스바랑 다른키랑 재질 차이가 없어 보였습니다.) 


결점이랄건 거의 없었는데, 굳이 말하자면:


키압은 생각보다는 무거웠는데, 왼쪽 키들보다 오른쪽으로 갈 수록 키압이 아주 미세하게 가벼운 느낌이 들었습니다. 키캡도 마찬가지로 오른쪽 애들은 단단히 고정이 안되어 있는지 손가락을 뗄 때 짤깍하고 흔들리는 소리가 더 났습니다. 비유를 하자면, 왼쪽이 검은 바둑알 이라면 오른쪽은 하얀 바둑알 느낌입니다. 그런데 기분나쁜 소리가 아닐 뿐더러, 오히려 고속으로 타자를 치다보면 다양한 소리가 나서 단조롭지 않고 좋기도 합니다. (집에와서 조용히 하나하나 눌러보니, 오른쪽 키 몇개에서 미세하게 스프링 소리가 들립니다. 귀 기울여 듣지 않으면 안들리기 때문에 무시하기로 했습니다.) 


또, 키보드 아래에 고무 한쪽이 마찰력이 거의 없어서, 키보드를 밀면 한쪽만 휙 밀리는 현상이 발생합니다. 다만 타자를 칠때는 밀리지 않기 때문에 뭐 크게 신경쓰이진 않습니다. 


그리고, 키캡이 몇개 삐뚤삐뚤한건 ㅋㅋㅋ 충분히 각오했기 때문에 괜찮았습니다. 너무 예쁜데 치열이 좀 고르지 않은 여자랄까... 



더럽게 비싼 멤브레인 아닐까 하고 염려했었는데, 똑같은 걱정 하고계신 분들이라면, 쓸데없는 걱정이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이 키보드, 진짜 좋습니다. 심지어 작고 가볍기까지 한 이 키보드, 저는 사무실과 집, 카페 오가며 글 쓸때마다 쓸 작정입니다. 


사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