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엔 인생 키보드야! -> 어 이게 아닌데... 루트를 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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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저에게 남은 FC660M 흑축 키보드입니다.



1 처음으로 손에 들어온 기계식 키보드는 제닉스의 10TFL 흑축 키보드였습니다 -_-;; 지금 생각해보면 좀 첫 발을 잘못 디딘 게 아닌가... 싶습니다. 그 때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방황이.


2 처음 그 녀석을 만져봤을 땐 어딘가 아니다 싶었습니다. 키는 너무 무겁고 키캡은 손가락에 달라붙고 말이에요. 한동안 그 녀석을 쳐보다가 결국 예전에 쓰던 보급형 멤브레인 키보드를 다시 책상 위로 불러냈습니다. '흑축은 너무 무거운 것 같아. 다른 가벼운 축을 찾아봐야지' 하고 찾은 게 레오폴드 FC750R 갈축이었습니다. 이 녀석은 마음에 들었습니다. 한동안 썼네요.


3 적당히 자글자글하고 부담 없는 키압에 빠져서 소설을 한 권 분량 썼습니다. 이래저래 부대끼면서 반 년을 같이 지냈었죠. 이대로 그 녀석과 평생 함께할 수 있을 것만 같았습니다. 하지만, 저는 제가 생각하던 것보다 훨씬 욕심쟁이였습니다. 전 제가 그렇게 욕심이 많을 줄은 몰랐습니다. 그 자글자글한 느낌과 소리가 언제부터인지, 소음으로 변하기 시작하더군요. 그 녀석한테 질리고, 바람기가 돌기 시작한 겁니다.


4 저는 그 때부터 무접점 키보드에도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습니다. 인터넷 문서에서 낮은 소음과 키감을 가진 또다른 타입의 키보드가 있다는 글을 발견했습니다. 리얼포스와 해피해킹으로 대표되는 고급 키보드에 이끌리기 시작했습니다. 매장에 직접 가서 온갖 키보드를 타건해보기 시작했지요. 그리고 저는 용산의 한 매장에서 리얼포스의 가격표를 봤고, 이내 생각하는 걸 그만두었습니다.


5 왜 옷이나 먹는 것에는 별 관심이 없으면서 이런 키보드에는 미친 듯이 빠져드는 걸까요. 어떻게든 무접점 키보드로 한 권의 책을 꼭 써보고 싶다는 생각이 제 목을 꽉 물고 놓아주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때마침 발견했습니다. 10만원 언저리의 가격으로 구할 수 있는 무접점 키보드를 말이에요. 한성 키보드였습니다.


6 정신을 차리고 보니 제닉스 키보드는 택배 상자에 포장돼서 멀리 멀리 떠났고, 제 앞엔 CHL5 키보드가 놓여 있었습니다. LED가 반짝거리는 게 나름 볼만했습니다. 그렇게 선호하는 편은 아니었지만. 직접 쳐보니까 물방을 떨어지는 타건음이 납니다. 도로록 도로록하고 재밌는 소리가 났어요. 재밌었습니다. 근데, 그게 신형이더라고요. 알고 보니까 CHL5 키보드는 신형과 구형이 있는데, 구형은 55g라는 표기에 비해 체감상 낮은 키압을 갖고 있었고(매장의 것이 구형이었습니다) 제 앞에 놓여 있는 키보드는 신형이었습니다. 멤브레인과 기계식 흑축을 적당히 섞어놓은 느낌이 났습니다. 좀 오래 쳐보니까 손가락에 부담이 가기 시작했습니다. 어느 순간 이 키보드는 고급 멤브레인과 '체감상' 큰 차이가 없는 것 같다. 고 생각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생각하니까 참을 수가 없게 됐습니다.


7 자괴감이 피어오르기 시작했습니다. 나는 뭘 하고 있는 걸까. 고급 키보드라는 덫에 빠져버린 게 아닐까. 하지만 되돌릴 수 없어. 나에게 꼭 맞는 키보드를 찾고 싶어. 더 좋은 키보드가 있을 거야...! 그 때부터 저는 '이렇게 된 거 '하이엔드'인 리얼포스를 사서 끝장을 보자.' 고 생각하게 됐습니다. 이렇게 가다간 이 세상의 모든 기성품 키보드를 사고 팔아볼 것 같아서 두려웠습니다. 진심으로요.


8 일단 리얼포스 45g 저소음에 관심이 많이 있었습니다. 이게 제게 있어선 최적의 키보드가 아닐까 생각했거든요. 오랜 시간동안 손을 바쁘게 놀려 고속 타이핑을 하는데, 부담 없는 키압을 원하면서도 동시에 아예 소음이 거의 나지 않기를 원했습니다. 그렇게 용산 매장에 리얼포스를 시험 타건해보러 갔습니다. 그럴 겸 다른 키보드들도 이것저것 만져봤습니다.


9 그리고 제 책상 위에는 저 녀석이 올라와 있습니다. 그리고 지금 그 녀석으로 이 글을 쓰고 있지요. 처음 키보드를 건드려봤을 때, 이 쿠션감과 나쁘지 않은 소음, 그리고 10만원 언저리 하는 가격에 반했습니다. 그렇게 저는 한성 무접점 키보드를 팔았습니다. 산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결국 FC660M 모델을 사고 나서, 포장을 뜯고, 직접 쳐보면서 저는 깨달았습니다. 좋긴 좋은데, 조용한 집에서 조심조심 애쓰며 타건하지 않으면 소리가 적잖이 나기는 한다. 구름 타법이라는 것도 직접 해보니까 속도도 느려지고 여러모로 불편했습니다. 타건음을 최대한 줄이기 위해 손가락으로 키를 조심조심 누르다보니, 이 무거운 키압에 오히려 손이 더 피곤해지더라고요. 쿠션감은 좋은데... 참 좋은데... 그래도 키가 무겁다. 내가 오래 쓰기엔 영 부담스러운 물건이구나.


10 자신이 한심하더군요. 돌이켜보니 눈이 멀어 구매한 후 후회하는 일이 반복되고 있었습니다. 한두 푼 하는 물건도 아닌데 말이에요...


11 그리고 지금 적축 키보드와 리얼포스 키보드 중 하나를 선택하려고 합니다. 적축 키보드를 산다면 소음을 최소화하기 위해 어떤 방법을 마련해야겠지요. 리얼포스는 가격이 상당하다는 점만 빼면 참 괜찮은 것 같습니다. 하아, 어쩌다가 이렇게 된 걸까요. 제게 맞는 키보드는 어디 있는 걸까요. 이번 선택이 마지막 선택이 될 수 있을까요. 그리고 소설은 언제쯤 편하게 다 쓸 수 있을까요... ㅠㅠ 차라리 기계식 키보드를 몰랐더라면...

이전 댓글 6
유다희 2015-12-13 20:06
구름타법을 사용하실수 있다면 적축이 가장 조용한 키보드가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카카로토 2015-12-13 20:38
리얼포스 사세요 그냥....
아스라한 2015-12-13 21:22
큰일 나셨네요 제가 볼땐 리얼포스에서 안끝나실 것 같은데
아스라한 2015-12-13 21:28
일단 리얼포스 45균등이나 차등제품을 무조건 써보셔야 될 것 같네요 글을 쓰시는 것 같은데 약지와 새끼손가락을 사용하시는 정타법을 쓰시면 리얼포스 차등저소음제품을 한번 써보세요
조준기 2015-12-14 09:44
전 2005년부터 그러고 사는걸요.
관찰하고알아차림 2015-12-15 09:03
마치, 나라는 존재의 실체를 찾는 구도자의 수행기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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