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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거품

30만원이 넘는 키보드는 일반의 관점에서는 존재 자체가 경악스러울 겁니다. 1만원 내외의 저가 키보드들이 시장을 장악하고 있는 걸 생각하면 리얼포스의 거품론은 필연이라고 할 수 있죠. 저 역시도 당이벤트를 통해 리얼포스를 깊이 접하기 이전에는 거품론에 동조하던 사람입니다.

키보드에 대한 평가는 여타 PC 구성품과는 달리 주관적인 요소가 강합니다. 스펙으로 표기되는 부분은 한계가 있습니다. PC에서 유일하게 아날로그적 감성이 강하게 작용하는 영역입니다. 따라서 리뷰어들은 키보드에 대한 호감을 문학적으로, 시적으로 표현하게 마련이죠. 이 같은 표현들은 타인이 보기엔 다소 과장된, 오버하는 듯한 인상을 주기 쉽습니다.
'구름 위를 걷는 듯한 느낌' 이라는 유명한 문구가 있습니다. 이제는 리얼포스를 수사하는 관용구에 다름 아닌 문구인데... 리얼포스를 접하지 못했거나 접했지만 만족하지 못한 이들에게는 지나치게 관념적이고 과장된 표현이라 느껴질 수 있습니다. 이런 부분에서 두번째 거품론이 제기됩니다. 세간의 과장된 평가에 대한 거품론.

이처럼 보급형 키보드의 서른배가 넘는 고가키보드가 그 가격을 어떻게든 증명하기라도 하듯 '구름 위를 걷는', '바삭바삭한 크래커' 등의 현란한 수사로 무장하고 있으니 리얼포스를 접해 보지 못한 이들에게 경외심 혹은 거부감의... 극단적인 갈림길을 제시합니다.

사실 뭐가 됐든 그것은 강력한 오라입니다. 리얼포스를 접한 이들의 평가가 극단적으로 엇갈리는 이유는 높은 가격에도 원인이 있겠습니다만 리얼포스만이 누리고 있는 고유한 포지션과 포스 때문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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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첫인상

매장에서 잠시 사용해 봤을 때나 사진으로 볼 때... 리얼포스는 시각적 만족감을 주지는 못합니다. 삼십만원 짜리 고가 키보드... 라는 생각을 하지 않더라도 디자인은 사실 별 볼 일 없습니다. 리얼포스에 대한 호감 내지는 편견을 가지게 할만한 사전지식이 전혀 없다고 가정했을 때 그냥 흔해 빠진 키보드 모양입니다.

그러나 택배 상자를 건내받았을 때부터 느낌이 다르더군요. 그 육중함에 압도됩니다. 리얼포스의 중량감을 느끼고 포장을 풀어 보니 이전과는 뭔가 달라보입니다. 한정된 시간이지만 내꺼다 생각하고 차근히 살펴봤습니다.
 
만듦새는 단연 일품입니다. 공산품으로서의 완성도는 최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특히 키캡의 재질과 촉감은 최근 생산되는 제품들과는 비교를 불허합니다. 진짜 포스라는 과격한 이름답게 여려 부분에서 하이엔드를 느끼게 해줍니다.
키캡 교체에 있어서도 체리스위치는 그냥 홈대로 꼽는 반면 리얼포스는 딸깍하고 걸리는 구조라서 키캡 높이의 편차가 발생하거나 삽입 중 파손될 여지가 없습니다.

3. 키감

리얼포스 키감의 핵심은 독특한 구분감에 있는 것 같습니다. 이름은 기억나지 않지만 어렸을 적 가지고 놀던 반구형 고무 장난감 있잖습니까. 외관을 누르면 뽈각하는 소리와 함께 뒤집어지는... 흔히 도각도각이라고 표현하는데 저는 뽈깍이라는 표현이 적당하다고 생각합니다. 반구형의 러버돔이 눌리면서 접히는 그 순간 뽈각하는 부드럽지만 명확한 파열감이 들고 그 직후에 보강판을 살짝 때리는 구조입니다. 이의 연속으로서 거칠진 않지만 명징하고, 가벼우면서 두터운 구분감을 느끼게 되는 것 같습니다. 여타의 멤브레인이(리버터치 포함) 러버돔을 단순히 누른다면 리얼포스는 러버돔을 눌러 뒤집는 것까지 계산되어 만들어진 것 같습니다.

중요한 것은 이 과정에 있어서 군더더기란 없다는 점입니다. 마치 일본식 정원을 보는 느낌입니다. 발생가능한 모든 변수가 고려된, 완벽하게 통제된 극도의 인공성.
치면 칠수록 느껴지는 것이... 어쩌다 보니 나온 키감이 아니라는 겁니다. 러버돔이 최초 눌려지는 순간 압력, 접혀지기 직전에 찾아오는 빨려들어가는 느낌, 접히는 순간 발생하는 신묘한 파열감, 그 직후 발생하는 보강판 때리는 느낌, 이를 가능케 하는 접점방식.... 이 모든 것들이 완벽하게 계산되어져 기승전결이 뚜렷한 하나의 이야기를 창초해 내었습니다.
 
4. 소감

단순 타이핑 속도를 놓고 보면 청축과 비슷하고 갈축 보다 조금 빠른 수준입니다. 허나 오타 빈도에 있어서는 리얼포스가 단연 으뜸입니다. 눈에 띄게 오타가 줄어듭니다. 이유는 위에 언급한 구분감에 있습니다. 리얼포스의 구분감은 청각에 의지하지 않습니다. 파열음이라 표현하지 않고 파열감이라 표현한 것이 이런 연유입니다.

기계식의 아날로그적 특성은 아날로그적 자유분방함이 있으나 산만합니다. 허나 리얼포스는 위에서 표현했듯 인위적인 가지런함이 있습니다. 타자시 소리로 전달되는 리듬과 손으로 느끼는 리듬이 조화를 이룹니다. 어느 쪽이 앞서가거나 뒤쳐지지 않은 채 조화를 이루기 때문에 안정적인 편안한 타자가 가능합니다.

 

제가 릴레이 이벤트 5번째 주자인 것으로 알고 있는데 키캡의 상태는 상당히 양호합니다. 네 사람을 거쳤음에도 사용감이 거의 느껴지지 않습니다. 레이져 인쇄키캡의 경우 며칠만 사용해도 자주 쓰는 키에 발자욱을 남깁니다. 자판을 보고 있노라면 각키의 사용도 통계를 보는 듯한 기분이 듭니다.

승화.... 이거 정말 물건입니다. 이곳 회원님들께서 왜 승화에 집착하시는 줄 이유를 알겠더군요. 시각적인 면은 물론 촉감에 있어서도 압도적입니다.

 

단점도 있습니다. 가장 여실히 드러나는 단점은 차등키간의 이질감입니다. 사용빈도에 따른 이질감인지 원천적인 이질감인지는 모르겠습니다만 Q와 A간의 이질감은 극명합니다. Enter와 Back Space 간의 이질감도 심한 편입니다.

저는 비교적 신품을 사용하기 때문에 판단할 수 없습니다만 이런 문제가 사용빈도에 따른 고무의 경화도 때문이라면 이건 매우 치명적인 부분이 아닐 수 없습니다. 내구성이란 얼마나 오래 사용할 수 있냐라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리얼포스 같은 하이엔드 제품에 있어선 최상의 품질을 유지하는 기간이 얼마냐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30g과 45g 키간의 키감 차이도 납득이 안가는 부분이 있습니다. 이는 단지 키압의 차이가 아닙니다. 45g의 경우 뽈깍하는 특유의 구분감이 넘치는 반면... 30g의 경우 이러한 구분감이 전혀 느껴지지 않습니다. 키보드에 손을 얹고 있으면 aaaaaaaaaaaa가 화면 가득한 경우가 있다는 분들이 많은데, 전 사실 이게 말이 되나 싶기는 하지만... 이런 현상이 벌어진다면 그것은 낮은 키압이 문제가 아닌 구분감의 부재가 원인일 거라 생각합니다.

리얼포스 러버돔의 경우 45g 이상의 키압이 있어야 리얼포스로서의 정체성을 가질 수 있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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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의 Q 와 A

 

 

 

토프레사에 아쉬운 점도 있습니다. 이 정도 가격의 키보드는 절대 소모품이라 할 수 없습니다. 소모품은 러버돔이겠죠. 고무의 경화 문제, 이질감 문제 등의 문제도 있기 때문에 토프레사는 유저에게 러버돔을 공급해야 마땅하다고 생각합니다.

 

 

5. 먹튀

 

일주일간 REAL한 FORCE를 체험하면서... 리얼포스를 누리면서... 그 유한함에 가슴저렸습니다. 먹고 튈까라는 유혹을 느낀 것이 한두번이 아닙니다. 그만큼 리얼포스가 주는 즐거움은 거대했습니다. 단언컨데 제가 여지껏 쳐본 키보드 중에 가장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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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튀계의 전설 - LG 홍모선수

 

 

이 위대한 이벤트의 시조이신 베어스팬님과 미천한 저를 선정해 주신 릴리아님, 온전한 키보드가 오게끔 아껴 사용해 주신 모든 참여자 분들에게 빚진 입장이라...  잔뜩 늘려놓긴 했습니다만... 한마디로 표현하면 그 어느 키보드 보다 좋다! 입니다.

 

베어스팬님, 릴리아님께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 전하며 잡문을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금요일 즈음에 다음 주자 선정할 예정입니다. 하루 전에 자유게시판을 통해 고지하겠습니다. 이번에는 약속한 바대로 제비뽑기 갑니다. 사다리 그려서 영상으로 촬영하겠습니다. 인생은 쪼는 맛이 있어야죠. 다만 먹튀의 위험을 차단하기 위해 입찰 조건은 기존 보다 조금 까다롭게 할 수 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이점 양해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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