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일, 93년산 모델 M을 구하고 오늘까지 집에서 쓰고 있습니다. 적축에서 느끼지 못한 경쾌한 타건감, 무접점에서 느끼지 못한 청량감 등을 한꺼번에 겪으며, 새로운 맛을 알아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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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키보드를 쓰면서, 저절로 키보드를 친구라고 부르게 되었습니다. 키보드 연식이 저와 동갑이기도 하고, 제 집에 있는 전자제품 중 이 친구가 가장 오래 됐어요. 그런데도 최신 컴에서도 멀쩡히 작동되는 걸 보면 신기하기까지 합니다. 그리고 레트로한 디자인을 보니 자연스레 컴퓨터란 걸 처음 본 어린 시절이 생각나, 친구라는 말이 자연스럽습니다.


다만 제가 손 힘이 약해서인지, 파워타건을 선호하는데도 때론 이 친구의 육중함에 기가 눌릴 때가 있습니다. 타이핑하면서 수담을 즐기다가도 제 손이 지쳐서 무접점을 꺼내들고, 그렇게 무접점에서 쉬어가다가 다시 딸깍거리는 맛을 잊지 못해 이 친구를 물려서 쓰고...


더불러 엄청난 소리에도 가끔은 주저하게 됩니다. 사실 이 글도 지금 집에서 쓰는데 가족들이 한소리 할까봐 조마조마... 한동안은 이 친구와 수담을 즐기겠지만, 집에 있는 무접점도 조용히 있고 싶을 때 꺼낼 생각입니다.


그래도 한 가지 확실한 건 '이 키보드는 정말 명품이구나'라는 걸 느낍니다. '방금 샀어도 10년 된 듯한 물건, 10년 됐어도 방금 산 듯한 물건'이란 말이 있는데, 이 키보드는 개인적으로 후자라고 생각해요. 덩치가 크긴 하지만 키캡도 예쁘고, 조금만 잡아보니 단단하게 잘 만들어졌다는 걸 느낄 수 있었습니다.


다른 키보드는 바꿀 일이 종종 있겠지만, 이 친구와는 앞으로도 수담을 계속 즐기고 싶네요.


P.S. 이 키보드 타이핑 영상을 찍어서 여친에게 보내줬더니 '깔쨕이'란 별명을 붙여주더군요.


별명 하나에 이 육중한 친구가 귀여워 보일 줄은 몰랐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