득템을 위해서라면!!

저는 작은 사무실에서 실장님 한분과 오붓하게 책을 만드는 일을 하기 때문에 업무 분위기는 그야말로 자유롭습니다. 주중이라도 약속이 생기면 일찍 나갔다 밤에 다시 들어와 일을 할 수도 있고 늦게 출근해도 늦게 퇴근하면 모든게 용서되는 곳이죠.

일요일날 출근해서 밤을 새고 어제 낮 3시쯤 퇴근을 했습니다.
집까지 40분 정도 걸어가면 되는 거리이기 때문에 어제는 약간 독특한 경로로 걸어갔습니다.
예전에 수거를 하시는 할아버지의 리어카를 같이 밀어드린 적이 있었는데, 그 어르신께서 키보드 구하게 되면 잘 쟁여놓겠다고 하셔서 오랜만에 그 길로 갔던 것입니다.

마당에 널부러진 잡동사니를 정리하시던 할아버지께서 저를 보시더니 (알아보시네요!)
"키보드 하나 어제 구했다."며 잘 찾아보면 있을 거라면서 이곳저곳 손으로 가리키시더군요.
마대자루, 쓰레기들을 뒤집고 엎어가며 찾아봤지만 키보드 비슷한 것도 없었습니다;;
마당에 울타리가 없어서 가끔 사람들이 집어간다고 하시던데 아마도 누가 가져간 것 같았습니다.

(미안해하실 것은 전혀 없었는데) 미안하셨는지 제게 좋은게 있다며 자꾸 집으로 같이 들어가자고 하셔서 따라갔는데,
'앗! 혹시 빈티지스러운 멋진 물건을 제게 주실려고?'하는게 솔직한 마음이었습니다.

...
인삼주를 마셨습니다.
커다란 컵에 가득 담아주셨는데
"제가 술을 잘 못 마십니다."라고 처음엔 거절을 해봤으나
"한번 따른 술은 다 마셔야한다."며 자꾸 권하시길래 마셨습니다.
검은색 비닐봉다리에서 뭘 꺼내시더니 제 손에 쥐어주시는데,
반쯤 검게 그을린 양념된 닭발이었습니다. 아주 쓰더군요-_-

할아버지 세 아드님 자랑도 좀 듣고, 교회를 다니라는 조언도 얻고...
어찌어찌 술 다 마시고나서, 키보드 주우시면 꼭 연락해주시겠다며 제 핸펀 번호도 따가셨습니다.

한강 자전거길을 따라 걸어가는데 눈이 아주 핑핑 돌더군요.
가뜩이나 술이 약한데 (밤새고 빈 속에다가) 인삼을 잘 숙성시킨 소주는 제게 무리였나 봅니다.
앉았다 걸었다 반복하면서 집에 도착해서 밥도 안 먹고 바로 드러누웠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득템을 위해서라면!!"
이전 댓글 9
해령 2007-05-15 03:16
눈물겹습니다!!! 와.... ㅋ 인삼주는 몸을 따뜻하게 하는데에 최고입니다. ㅎㅎㅎ
vintagelsa 2007-05-15 05:17
제가 손발이 아주 차가운 편인데, 좋은 거 마셨던 것이군요! 혹시 제가 장터에 멤브 무료분양하게 되면 99% 할아버지께서 주신 것입니다. ㅎㅎ
CHANY 2007-05-15 08:04
ㅎㅎㅎㅎ 무슨 소설속의 한장면 같습니다 ^^;;
류개발 2007-05-15 09:07
완전 읽으며 감동받기는 처음입니다... ^^;
wang701 2007-05-15 09:30
오옷... 득템을 위해서!! 더불어 수족냉혈증 치료까지....T_T (저도 손발이 차가워서...) 저도 몇번 밀어드린적 있는데... 너무 젊은 분이라 그런지 지류만 잔뜩이던걸요 ^^;
ZeroCool™ 2007-05-15 09:48
"득템을 위해서라면!!" !!! 완전 눈물나는군효 ㅜ_ㅠ
오늘은 Oops! 2007-05-15 09:49
"득템을 위해서라면!!" !!! 완전 눈물나는군효 ㅜ_ㅠ (2)
열혈강사 2007-05-15 09:59
득템은 그냥오는건 아니더군요. 그만큼 정성을 들여야 하는게 아닐지..... 장터에서건, 쪽지로건, 아니면 님처럼....ㅎㅎㅎ
서기옵빠 2007-05-15 11:11
"득템을 위해서라면!!" !!! 완전 눈물나는군효 ㅜ_ㅠ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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